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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1 17:07 수정 : 2005.12.01 19:18

1920년 3월 5일 먼저 창간된 조선일보의 창간 주체는 친일 상공인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진태·예종석·민영기 등이었다.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보다 한달 늦은 4월1일 총독부 기관지 편집국장 출신 이상협을 발행인으로, 이른바 `한일합방‘의 공로로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박영효를 사장으로, 그리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20대의 지식인 김성수(1891~1955)를 주주대표로 하여 창간됐다.

[2심 판결 주목 부분] 동아 백지광고, 75년 해직사유, 김성수 친일행적, 사옥 특혜

1심 판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모두 불복하며 항소했고, 한겨레 역시 배상책임이 인정된 대목에 대해 항소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사는 재판 도중 항소를 취하했고 동아일보는 끝까지 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달 29일 선고를 하면서 동아일보사의 주장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에서의 3천만원 배상 판결도 깨고 한겨레가 하나도 물어줄 필요가 없다면서, 그동안 들어간 소송비용까지 모조리 동아일보가 물어내도록 했다. 그만큼 동아일보의 주장이 얼토당토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재판부는 몇가지 주목할 만한 내용을 판결문을 통해 밝혔다.

75년 동아일보 기자 대량해직
" ‘경영상 이유’ 아니다" 인정

(1) 우선 1975년 동아일보사가 자유언론실천운동을 벌이던 기자들을 130여명이나 대량해고한 것이 ‘경영상 이유’ 때문이라는 게 대법원 판례였으나 사실상 이를 부인한 대목이 눈에 띈다.

‘유신정권 하에서 동아일보사의 경영진은 정권의 광고탄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부족했을 뿐 아니라 경영개선이라는 명분하에 정권과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게 한 기자들을 집단해고 했다’는 기사내용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판결했다.

“1947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72년부터 77년까지 광고국장으로 근무했던 김인호는 ‘74년 12월경 광고탄압 사태가 발생하여 동아일보사는 광고란이 백지인 상태로 신문을 발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어 광고란에 독자들의 광고게재를 부탁하는 ‘동아일보 신문광고 PR’을 게재하게 되었으며, 이런 PR 광고가 나간 이후 당시 사장인 김상만은 자신을 불러 위 PR 광고게재에 대해 질책하면서 다음부터는 판매국장의 결재를 받아 PR 광고를 게재하라고 하였고, 만약 결재를 받지 않는다면 처벌하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겨레 기자에게 대답했던 사실이 있고…김인호는 광고탄압 사태를 전후해 동아일보사의 경영진과 일선 기자 사이의 갈등 등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관계자라고 판단되며…동아일보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최초 18명을 해고한 것은 일단 적법한 경영상의 판단이라 하더라도…한달여동안 무려 130여명의 직원에 대해 해고 또는 무기정직 처분을 내린 일련의 조치들은…극심한 경영난을 타개하고 제작거부·점거농성등에 대한 징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최초의 의도가 변질되어 종국에는 사내 질서와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하에 당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주도하며 유신정권과 긴장관계에 있던 기자들을 대량 해고하는 결과를 낳게 된 점과 이런 해고과정 및 당시 시대적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동아일보사의 당시 사장인 김상만이 유신정권의 광고탄압에 적극적으로 싸울 의지가 부족했고 나아가 동아일보사가 대량 해고 조치를 단행한 것은 단순한 사내분규 이상의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고 할 것이어서 이 사건 보도의 주요 내용은 객관적 진실에 부합한다고 할 것이다.”

법원, “일장기 말소에 당시 동아 사주·경영진 부정적…친일논설 자주 게재”
사주 인촌 김성수 친일행적 기사도 “진실에 부합”

(2) 동아일보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의 일제하 친일 행적을 다룬 기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사실상 인정했다.

1) 김성수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매일신보에 ‘대의에 죽을때-황민됨의 책무 크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는 등 여러편의 극렬한 친일 논설을 기고한 사실을 지적한 기사에 대해,

“원고들은 김성수 명의로 게재된 친일논설은 김병규가 대필한 것으로 김성수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고 주장하나, 원고들이 자인하는 바에 의하면 김병규가 친일논설들을 게재하기에 앞서 김성수에게 글의 내용을 보이고, 김성수가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한 이후에 이를 매일신보에 게재하였다는 것인바, 그런 경위로 게재된 글은 김성수 자신의 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여겨지므로 위 보도는 진실에 부합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결했다.

2)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해 “손기정 일장기 말소 기자 쫓아내고 친일 언론보국 서약”이란 제목 아래, “총독부의 분노를 촉발한 이 사건으로 이길용 기자등 8명이 구속되고 동아일보는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그러나 경영진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동아일보사는 이길용 기자와 관련자들을 쫓아낸 뒤 다음해 6월2일 속간과 함께 낸 사고에서 스스로 ‘일본 언론’임을 서약하였다”고 보도한 데 대해서는,

“일장기 말소 사건에 대해 일본 경찰은 이길용 기자등 8명을 구속했고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사의 책임을 물어 무기정간을 명하는 처분을 내렸는데, 그후 이길용 기자등은 앞으로 언론사에 근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경찰에 제출하고 구속에서 풀려났으며 이런 이유로 동아일보사에서 퇴직한 사실, 무기정간 처분을 받은 이후 동아일보사 당시 사장인 송진우는 조선총독부등을 찾아가 일장기 말소 사건은 기자의 독단으로 저질러진 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정간처분을 해제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 이후 동아일보사는 1937년 6월2일 동아일보를 속간하면서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고 조선통치의 익찬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속간사고를 게재한 사실등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의하면 일제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에 대하여 당시 동아일보사의 사주와 경영진들은 부정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고, 사주 및 경영진 등이 친일논설을 자주 게재하는 등 친일행각을 일삼은 사실이 있다는 이 사건 보도의 주요한 내용은 대부분 진실이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동아일보 사옥 때문에 지하철 1호선 급곡선 변경도 인정

(3) 동아일보 사옥 때문에 지하철 1호선 서울시청역~종각역 구간이 급하게 꺾어짐으로써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지하철 1호선의 설계기준상 곡선반경은 기술적으로 160m 이상이어야 함에도 시청역~종각역 구간의 곡선 반경은 140m의 급곡선으로 설계되어 1호선이 동아일보사의 사옥을 우회하도록 시공되었고, 이런 이유로 이 구간에서 과다한 소음이 발생하고 레일을 자주 교체하게 됨으로써 많은 비용이 소모되고 있으므로 위 급곡선의 설계 경위에 대한 피고들의 의혹제기는 상당하다 할 것인데,…각 증거와 증언등의 전체 취지를 종합하면 서울시지하철공사가 1989년 12월경에 발행한 <서울 지하철1호선 건설지>에 지하철 1호선의 선형 결정에 영향을 준 요소로 ‘광화문에서 동아일보 사옥을 피하기 위해 급곡선 삽입’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사실…등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이에 의하면 이 구간의 선형이 지하철 1호선의 설계기준에 못 미치는 급곡선으로 결정된 데에는 다른 여러 원인도 작용하였겠지만 동아일보사의 반대가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할 것이므로…동아일보사가 지하철 1호선의 노선이 자신의 사옥을 관통하는 것을 반대하여 현재와 같이 급곡선으로 설계되었다는 이 사건 보도의 주요내용은 객관적 진실에 부합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4) 세종로 광장 건설 계획이 동아일보사 때문에 무산됐다는 기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진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광장건설계획이 무산된 후 상당한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보도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취재를 거쳐 보도에 이른 경위 등에 비춰볼 때…보도의 주요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음에 있어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겨레> 이승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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