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 는 38년부터 40년 폐간되던 해까지 해마다 1월 1일치 1면 머리에 일왕 부부의 사진과 찬양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사진은 일왕을 `대원수 폐하‘라고 부르며 정무·군무에 부지런히 힘쓰신다고 찬양한 40년 1월 1일치 1면. (좌)37년 6월 2일 장기 정간 뒤 처음 나온 속간호 1면 하단에 실린 ‘사고‘.“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조선통치의 익찬을 기하려 하오니”라는 글귀가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아래)동아일보는 일제의 ‘지원병‘으로 끌려가 비명에 간 젊은이 이인석의 죽음을 “지원병 최초의 꽃”“조선인 지원병의 영예”라고 선전햇다.(39년 7월 8일치)또 이튿날에는 고향집을 찿아가 죽은 이의 처까지 끌어들여 침략전쟁의 선전도구로 만들었다.(7월 9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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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언론권력 보도 승소
한겨레 VS 조선·동아 4년 ‘법정 소송’의 전말
<한겨레>의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는 지난 2001년 3월6일 시작해 다음달 27일까지 3부작으로 모두 25회에 걸쳐 70건의 기사가 연재됐다. <한겨레>의 역대 시리즈 사상 가장 긴 장기 기획물이었다.
그동안 기존 언론들이 ‘성역’으로 남겨 놓았던 이른바 족벌언론과 그 사주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는 작업이었고 취재 과정에 편집국의 내로라 하는 기자들이 대거 투입됐다. 예상대로 첫날부터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시리즈가 게재되는 동안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자 웬만한 <한겨레>의 비판기사에도 꿈쩍 않던 조선일보사가 드디어 시리즈 게재 도중인 4월6일 소송을 걸어왔다. 무려 70억원을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고 인지대만 2505만5천원에 달했다. 형사고소도 같이 냈다. 그럼에도 시리즈는 계속됐다.
조선일보사, 언론권력 시리즈 게재되자 “70억 물어내라” 소송…형사고소도
그 내용을 다시 보면, ‘조·중·동’의 보도 태도와 사주와 사옥 등을 통해 나타난 언론권력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1부 ‘무한권력 횡포’에서는 조선일보 쪽의 △사주 일가의 편법상속과 각종 편법 의혹 △사옥을 둘러싼 특혜 의혹 △특정 정치세력을 노골적으로 지지해온 파행적 보도태도, 동아일보 쪽의 △동아마라톤재단 관련 의혹 △사주 일가의 정부를 상대로 한 횡포 등을 고발했다. 2부 ‘추악한 과거’에서는 ‘민족언론’, ‘항일언론’이라고 주장해온 조선·동아가 일제시대 어떻게 일제를 찬양하고, 우리 국민을 징병과 강제노역에 내몰았는지와 독재정권 시절 반민주적 정권을 미화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왜곡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가 일제시대 신년호에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린 사실을 일간지 가운데 최초로 발굴해 보도한 것은 이 신문의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3부 ‘언론개혁 해법’에서는 1부와 2부에서 지적한 문제들의 연장선에서 구체적인 언론개혁의 방안을 다뤘다. 친일 과거, 권언유착, 사옥 특혜 ‘적나라한 고발’에 언론권력 “충격” 시리즈가 끝난 뒤 특별취재팀은 언론의 성역을 파헤친 공로를 인정받아 언론단체에서 주는 상을 받았지만 소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노조 차원에서 한겨레 보도 내용의 진위에 대해 자체 조사까지 했으나, 결국 같은해 9월 10억원의 소송을 냈다. 이 바람에 한겨레는 조선·동아 양쪽을 따로따로 상대해야 했다. 한겨레 vs 조선·동아의 4년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조선일보는 자사와 관련된 32건의 기사 가운데 △사주일가의 편법상속 의혹 △사옥을 둘러싼 특혜와 횡포 의혹 등 13건의 기사를 소송 대상으로 삼았고, 동아일보는 23건 가운데 사옥과 동아마라톤 재단을 둘러싼 의혹, 일제 시대 친일 곡필 의혹 등 17건의 기사와 3건의 만평을 소송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조선일보는 노골적인 친일행적과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권력유착 의혹 등의 보도에 대해서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으나, 동아일보는 2부 ‘추악한 과거’의 일부 기사도 소송대상으로 삼았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1심 소송 과정에서는 모두 462쪽의 준비서면(한겨레 239쪽 조선 223쪽)과 2426쪽의 증거자료(한겨레 1695쪽 조선 731쪽)가 제출됐고 한겨레와 동아일보의 소송에서는 371쪽의 준비서면(한겨레166쪽 동아 205쪽)과 1044쪽의 증거자료(한겨레 900쪽 동아 144쪽)가 제시됐다. 당시 거물 정치인이 조선일보 사주에게 반말을 썼다가 나중에 사과방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동아일보 사주가 75년 광고탄압 사태 당시 어떤 행태를 보였는지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도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 그대로 법정에 제출됐다. 조선일보와의 소송 과정에서는, 사주일가의 편법 상속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을 제출해줄 것을 재판부가 공식 요청했으나 검찰이 “사생활 보호”등 석연찮은 이유로 내놓지 않아 수개월이나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거물정치인 조선 사주에 반말했다가 ‘사과’, 동아 광고탄압때 사주 행태 등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도 증언 그대로 법정에 제출 조선일보가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6개월 보름, 동아일보가 낸 때로부터 3년1개월여 만인 지난해 10월 22일 이 사건을 맡아온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는 조선일보사와 사장 방상훈씨가 낸 70억원 짜리 소송에 대해 “유수 언론사나 사주의 지난 행적을 밝혀내고 올바른 평가를 하여 언론의 사명을 일깨우려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고, (기사 내용을) 사실로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대부분의 청구를 기각했다. 동아일보사와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 인촌기념회 등이 낸 10억원 짜리 소송도 같은 취지로 대부분 기각했다. 조선일보사가 요구한 13건의 정정보도 청구와 동아일보사가 요구한 6건의 정정보도청구도 당연히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다만 조선일보사가 문제삼은 13건의 보도 가운데 ‘조선일보 사주 편법상속’과 ‘조선일보 상속권 다툼’등 2건의 기사와 외부 기고자의 칼럼 ‘사회적 흉기’ 등 3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근거없이 단정적 표현을 사용했다”는등의 이유로 조선일보사에 3천만원, 방상훈씨에게 5천만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이었으면 상당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단정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그를 바탕으로 추론까지 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였다. 법원, “(기사 내용을) 사실로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 조선 소송 대부분 기각 또 동아일보사가 문제삼은 20건의 보도 가운데 ‘언론권력 극복과 한겨레’라는 제목의 사설과 ‘족벌언론의 한겨레 뒷조사’를 묘사한 만평에 대해서는 “족벌언론이 기자를 동원해 한겨레를 뒷조사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동아일보사에 대해 3천만원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해당 족벌언론은 동아일보가 아니라 조선일보였다는 한겨레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물은 것이다. 다행히 1심의 이런 판단들은 2심에서 바로잡혔다. 사설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내용이 이 시리즈 기사에 대응해 족벌신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한겨레신문사나 소속 기자들의 비리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보도하려 하고 있지만 이런 대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보도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의견 표명 내지 논평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동아일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평에 대해서도 “그 내용이 희화적인 묘사나 풍자를 속성으로 하는 만평의 표현한계를 일탈하거나 동아일보사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언론권력시리즈’에 대해 “올바른 언론의 사명 내지 언론관을 일깨우고 바람직한 언론상을 세워보자는 열망이 그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법원, 동아가 문제삼은 사설과 만평도 ‘기각’…
“바람직한 언론상을 세워보자는 열망” 한겨레 보도목적 인정 하지만 1심 판결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3일 동아일보는 사회면 3단 기사에서 이렇게 취지를 왜곡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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