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1 05:01
수정 : 2018.03.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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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침드라마 <역류>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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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여자 차에 태우고
거부하는데도 신체 접촉 행동
“그만큼 널 사랑해”로 포장
“이혼녀는 놀기 쉬운 여자” 등
‘여성혐오’ 조성하는 대사 남발
방심위 경고에도 여전히 반복
민우회 드라마 3년치 모니터
TV 속 성폭력 실태 공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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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침드라마 <역류>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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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잘 것”이라며 라임의 호텔방에 쳐들어오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 속 주원은 ‘직진남’(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남자)의 대명사였다. 라임이 거부하는데도 기어코 들어와서는 침대에 쓰러뜨리기까지 했다. 그 저돌성에 2010년 시청자들은 설??嗤? 2018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강압적인 애정 행위는 명백한 ‘폭력’이다.
시청자의 성의식은 높아지고 사회적으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창인데도 티브이 드라마는 2010년에 멈춰 있다. 방영중인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살폈더니 손목 잡아끌기, 강제 키스 등 성폭력적인 장면들은 여전히 매력적인 남성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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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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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손끌기도 모자라 둘러업기?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왜 말을 못하냐”며 여자의 손목을 강제로 잡아끌던 2004년 <파리의 연인> 한기주는 2018년에도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강제 손 끌기는 강제 둘러업기로 진화하기도 한다. 라디오 작가와 톱스타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한국방송2)는 2회에서 남자가 여자를 어깨에 메고 걸어가 차에 태우는 장면이 등장했다. 톱스타 지수호가 데려다주겠다는데 막내 작가 송그림이 거절하자 돌발적으로 한 행동이다. 납치와 다름없는 행위이지만 신경쓰이는 여자를 향한 남자의 마음으로 그려졌다. <또 오해영> 등 로맨틱코미디에서 자주 등장했던 강제 키스는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의 행위로 활용된다. 아침드라마 <역류>(문화방송)는 2월1일 방송에서 남자 주인공이 “네가 나만큼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느낀다”며 여자 주인공의 손을 잡아끌어 강제 키스를 한다. 2013년 벌어진 실제 사건의 판결을 보면 강제 키스는 강제 추행으로 분류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엄연한 범죄 행위를 드라마는 여전히 멋진 남자의 사랑이라고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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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 콘서트>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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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이 친근함의 표시라고? 성추행적 행위도 친근함을 드러내는 장치로 활용한다. <라디오 로맨스>에서는 남자 피디가 여자 작가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장면이 수시로 등장한다. 지수호가 “어깨에 팔 두르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이 역시 송그림을 향한 질투심의 표현으로 묘사될 뿐이다. 예능에서는 강제 키스가 가벼운 웃음 소재다. <개그콘서트> ‘봉숭아학당’에 나오는 ‘송블리-추나미’ 커플은 입에서 입으로 종이 옮기기 게임을 한다. 오나미가 일부러 종이를 빼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뽀뽀했으니 책임져라”며 좋아하는 여자와 싫어하는 남자의 모습은 구시대적 발상의 반복인 동시에 여성혐오에 대한 혐의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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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리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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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조장 대사들이 일상적으로? 여성혐오를 조장하고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대사들도 부지기수다. 아침드라마 <해피시스터즈>(에스비에스)는 3월1일 방송에서 이혼한 여자를 두고 “막 가지고 놀긴 이혼녀가 쉽다”고 말한다. <리턴>(에스비에스)에서는 난 대체 뭐냐고 묻는 불륜 여성한테 남자가 “넌 변기야, 내가 싸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싸는 변기”라고 하는 대사까지 나왔다. 또 말 안듣는 여성의 머리를 유리컵으로 내려치고 돈을 주면서 “병원비하고 나머지로는 가방 사” 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다. 등장인물의 악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대사라기엔 여성혐오의 냄새가 더 강하다. 실제로 <리턴>은 대사와 폭력적인 장면 등이 문제가 돼 방송통신심의원회로부터 법정 제재인 ‘경고’를 받았다.
주말 가족드라마에서는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장면들이 잦았다. 높은 시청률 속에 지난 11일 끝난 <황금빛 내 인생>(한국방송2)에서는 양쪽 머리를 땋고 다니는 누나한테 남동생이 “이게 여자야? 초딩이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화장을 하고 머리를 풀자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더니 이제 좀 사람 같다”고 말한다. 여자의 외모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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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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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면 남자 벗기는 예능 성차별, 추행적 행위는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예능에서는 이야기 진행에 별 필요도 없이 남성의 상체를 노출시키는 장면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는 지난 18일 방송에서 김종국이 운동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매일 이렇게 운동하면 예쁜 힙라인 완성’이라는 자막과 함께 김종국의 엉덩이를 클로즈업했다. 운동을 마친 그가 샤워를 하고 스킨을 바르는 과정을 이어서 보여주며 ‘으르렁’이라는 배경음악까지 삽입했다.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에서 류근지는 늘 상체를 벗고 몸 자랑을 한다.
문제점 알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 문제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성폭력적 행위가 로맨스의 도구, 웃음의 장치로 등장하면서 이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도록 교육하는 악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성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지만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작가나 드라마 제작자들이 이것에 대한 문제 의식에 동의하는가에 물음표를 갖게 된다. 문제제기를 계속하지만 심층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드라마 피디는 “1주일에 70분짜리 2회를 내보내야 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잦은 갈등은 필수” 라며 “남녀간의 갈등하면 떠오르는 장치 가운데 반응이 좋았던 것을 습관적으로 가져다 쓰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미디어운동본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해 드라마 속 로맨스로 포장되어 있는 성폭력적 행위를 모니터하기로 했다. 최근 3년간 방영된 드라마를 분석해 제작진의 변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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