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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23 15:03 수정 : 2018.01.24 07:44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남한 현송월 심지연관현악단장이 21일 강원도 강릉아트센터를 둘러본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뉴스AS]
방남한 현송월 단장, 연예인처럼 신변잡기 보도 쏟아져
패션·헤어스타일· 음식 메뉴 등 세세한 보도
“과열된 취재 경쟁 때문”설명에 독자들 ‘싸늘’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방남한 현송월 심지연관현악단장이 21일 강원도 강릉아트센터를 둘러본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1일∼22일 이틀 간의 방남 일정을 마무리하고 복귀했습니다. 현송월 단장은 강원도 강릉의 황영조체육관과 강릉아트센터, 서울 중구 장충동의 국립극장과 잠실학생체육관, 장충체육관 등을 둘러봤습니다. 현송월 단장의 방남은 문재인 정부에서 첫 남북 인적 교류라는 점,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송월 단장의 방남을 둘러싼 보도를 보면 의아함 투성이입니다. 현 단장이 입은 코트는 무엇인지, 두른 목도리는 어떤 소재인지,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등 신변잡기식 보도가 앞다퉈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21일 “‘존재감’ 과시한 현송월 목도리는 '여우털' 추정...“국내선 보기힘든 스타일”이란 기사를 통해 현 단장의 패션을 분석했습니다. 짙은 색의 롱코트, 발목까지 올라오는 앵클부츠, 커다란 모피 목도리에 가죽가방을 들어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패션업계 관계자 말까지 인용해 “(현 단장의 여우털 목도리와 같은) 이런 스타일은 국내에서는 거의 판매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고도 전했습니다. ‘깻잎 앞머리’를 연출했다며 헤어 스타일까지 세세하게 분석했습니다.

짙은색의 모직 롱코트는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A라인 코트로 금속 장식 단추와 스티치 장식으로 포인트를 줬다. 코트 안에는 짙은 보라색 계열의 스커트를 입었고 연주황 타이츠를 신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앵클부츠에는 금색의 동그란 금속버클이 달려 있었고 굽이 꽤 높았다.

헤어스타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빗어내려 끝을 고정해 ‘깻잎 앞머리’를 연출했고, 뒷 머리를 집게핀으로 반만 묶었다. 머리 밑단은 살짝 말아 늘어뜨렸다.

-조선일보, 1월 21일, '존재감' 과시한 현송월 목도리는 '여우털' 추정..."국내선 보기힘든 스타일"

<조선일보>는 현 단장의 패션을 본 시민들의 반응을 담은 기사도 작성했습니다. “'모피, 하이힐' 현송월, 시민들은 "과하게 꾸민 이유 있나"”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서울역에서 현 단장을 직접 본 시민들 가운데 젊은이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며 “너무 과해서 촌스럽다”는 의견을 전합니다. 이 기사에도 현 단장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었는지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지난 15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실무접촉 당시와는 의상 분위기가 달랐다. 당시 그는 단정한 남색 치마정장 차림이었지만, 이번에는 약 1미터 길이의 ‘실버 폭스’ 모피 목도리를 걸쳤다. 굽이 약 10㎝ 정도인 부티힐(발목까지 감싸는 부츠), 큐빅이 박힌 머리핀 등 나름대로 화려한 느낌을 연출했다. 실버 폭스는 모피류 중에서도 고가로 취급된다.

-조선일보, 1월 21일, '모피, 하이힐' 현송월, 시민들은 "과하게 꾸민 이유 있나"

그런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조선일보>는 2013년 현송월 단장이 음란물 제작 등의 이유로 “총살됐다”는 오보를 낸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제목에 담았죠. 지금도 이 기사는 오보에 대한 어떤 언급이나 수정없이 버젓이 <조선일보> 누리집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2013년 8월29치 조선일보 기사 페이지 갈무리
다른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는 지난 14일 ‘단독’ 기사로 현 단장의 핸드백에 대해 언급하며 “초록색 악어가죽으로 만든 이 백은 프랑스 고급 패션 업체인 ‘에르메스’ 제품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관련 기사: [단독]2500만 원짜리 명품백 든 현송월)

<한국일보>는 “21일 서울역에 나타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의 패션 코드는 ‘부티’였다. 고급 아이템으로 온몸을 휘감았지만, 한국 유행과는 미묘하게 어긋났다”, “상당히 고가 목도리라는 얘기다. 다만 목도리 길이가 길어 젊고 경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보온 기능에 신경 쓴 듯한 스타킹의 소재와 색은 다소 나이 들어 보였다”, “발목 높이의 앵클 부츠를 신은 건 과감한 선택이었다”고 그의 패션을 평가했습니다. (▶관련 기사: 현송월의 패션 코드는...'한국과 2% 어긋난 부티')

현송월 단장의 패션을 평가한 기사. <한국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현 단장이 먹은 음식과 가격을 보도하는 기사도 쏟아집니다. <뉴시스>는 현 단장이 강릉에서 먹은 음식 메뉴와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먹은 음식 메뉴를 비교해 총정리했습니다. (▶관련 기사: [종합]北현송월 강릉서 삼시 세끼 메뉴는?)

현 단장 등 일행들은 씨마크 호텔 레스토랑에서 강릉의 유명 먹거리인 초당순두부 들깨탕과 자연송이를 곁들인 한우 갈비찜이 차려진 음식을 맛봤다.

이 외에도 강릉의 전통 음식인 감자전이 식탁에 올라왔다. 후식으로는 강릉의 멋과 맛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 전통차와 과일이 나왔다. 문 대통령도 당시에 차와 과일을 후식으로 먹었다.

-뉴시스, 1월 22일, [종합]北현송월 강릉서 삼시 세끼 메뉴는?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붙이기도 합니다. <중앙일보>는 ‘“짬뽕’주문한 현송월, “맵다”는 직원 말에” 기사에서 “(현 단장 일행이 선택한) 메뉴는 제비집 게살 수프와 어향소스 가지 새우, 두치소스 통 전복과 본 요리인 흑후추 한우 안심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가격은 1인 기준 13만8000원(부가세 포함)으로, 도림 코스 요리 가운데 중상급 수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전수진 기자의 강릉 스케치 이틀째] 北 현송월, 프렌치 만찬에 아메리칸 조식 기사’엔 현 단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롯데호텔 측에 따르면 현 단장 일행은 코스 요리와 함께 식사로 짬뽕·짜장을 골랐고, 디저트로는 망고 셔벳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단장은 식사를 주문받던 직원이 “짬뽕은 맵다”고 하자 괜찮다며 짬뽕을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비스로 짜장면도 제공됐다고 한다.

-중앙일보, 1월 23일, ‘짬뽕’주문한 현송월, “맵다”는 직원 말에

현 단장은 19층 스위트룸을 이용했다. 이 호텔의 26개의 스위트룸 중 하나로, 침실ㆍ거실ㆍ욕실을 각 1개씩 갖춘 약 15평 규모다. 지난 21일 저녁엔 최상층인 20층에 있는 스카이라운지에서 프렌치 코스 요리로 식사를 했다. 애피타이저와 수프, 스테이크와 디저트가 프랑스산 화이트ㆍ레드 와인과 함께 제공됐다고 한다. 현 단장 일행은 약 1시간30분 동안 식사를 했으며, 9시30분 경엔 객실로 돌아간 뒤 22일 아침까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방남 이틀째인 22일엔 뷔페식과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스카이베이 경포 호텔 1층 뷔페 레스토랑 ‘더 원’에 별도로 마련된 ‘바다’ 룸에서였다. 현 단장은 오전 7시54분 전날의 앵클부츠 대신 검은색 킬힐을 신고 원피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긴 머리를 큐빅 집게핀으로 반만 묶은 헤어스타일은 그대로였다. 원피스는 남색으로 앞섶은 V자 라인, 허리춤엔 단추 3쌍이 박힌 디자인이었다.

-중앙일보, 1월 22일, [전수진 기자의 강릉 스케치 이틀째] 北 현송월, 프렌치 만찬에 아메리칸 조식

<국민일보>는 현 단장이 “올블랙 패션으로 멋을 한껏 부리는가 하면, 믹스커피 대신 아메리카노를 요구하는 등 세련된 지도자임을 과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분히 ‘북한 사람인데 아메리카노도 마실 줄 아네?’라는 멸시적 시선을 담은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 : 모피 두른 ‘올블랙’ 현송월 “믹스 말고, 아메리카노로 달라”)

<미디어오늘>이 갈무리한 현송월 보도 기사.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은 “언론은 방한의 의미를 짚고 남북관계를 전망하기 보다는 기승전 ‘패션’ 기사를 쏟아냈다”며 “독자가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보도가 정확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관련 기사: 현송월 앞에서 ‘패션잡지’ 자임한 대한민국 언론)

이처럼 신변잡기식 보도가 쏟아지는 데 대해 “현장 취재 기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과열보도 배경엔 통일부 풀 취재 기자단과 통일부, 그리고 풀 취재 기자단과 현송월 단장 일행 일정을 따라다니는 사회부 현장 취재 기자와의 신경전이 자리 잡고 있다”며 “풀 취재단 운영이 원활하지 않고, 현장에서 마찰이 빚어지는 등 현장 취재가 이뤄지지 않자 어떻게든 기사를 만들어야 하는 언론이 신변잡기식으로 현 단장 개인이나 동정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관련 기사: ‘현송월 전복죽 먹었다’ 신변잡기식 보도 나오는 이유)

현송월 단장에 대한 보도를 다룬 AP통신 기사. AP누리집 갈무리
외신도 한국 언론의 과열된 보도 경쟁을 전했습니다. AP 통신은 “처형됐던 북한의 디바가 올림픽 스포트라이트를 받다”란 기사에서 현 단장에 대한 총살 보도가 나왔던 점을 언급하며 그의 방남을 두고 “남한 언론은 마치 그가 ‘케이팝’ 연예인이 된 것처럼 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CNN도 현 단장을 ‘팝 스타’라고 부르며 “북한의 팝스타가 남한 방문에서 명성을 찾다”란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CNN은 “현 단장의 사진이 많은 남한 신문·잡지의 1면을 장식했다. 방송국은 계속해서 그의 모습을 중계했다. 현 단장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에 그에 대한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기사까지 쏟아지고 있다”며 “YTN의 경우 그가 아침으로 황태해장국을 먹는다고 보도했다. 다른 방송국은 그의 커피 선택을 보도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YTN 뉴스 화면 갈무리.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저 사람이 뭘 입고 먹었는지 1도 안 궁금하다”, “내용이 중요하지 음식 나열이 무슨 의미가 있나”, “송월일보로 사명을 바꿔라”, “기레기라는 소리 듣기 싫으면 데스크에서 이런 기사 쓰라고 해도 반항도 하고 해봐라”, “박근혜 감옥 메뉴 읊어주는 수준과 뭐가 다른가”, “이런 기사를 쓸 거면 따라다니지 말라”, “겉모습 품평하면서 북한 인권 운운하는 것 너무 부끄럽지 않나”등의 비판이 제기됩니다.

현 단장의 기사에는 “눈빛, 눈웃음, 김정은의 ‘썸녀’, ‘내연녀’”등의 단어도 따라붙습니다. 현 단장이 ‘김정은의 내연녀’라는 말은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고, 심지어 현 단장이 ‘내연녀’ 지위로 일을 하려고 한국을 방문한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단순히 북한의 ‘연예인’으로서 서울과 강릉을 찾은 건 더더욱 아닐 겁니다. 현 단장이 무엇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하고, 어떤 가격의 음식을 먹었는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현 단장의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무지개빛 의상과 함께 ‘패션 외교’를 보도한 기사도 떠오릅니다. 여성 인사의 패션 분석 기사는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걸까요? “뭣이 중헌디?” 어쩐지 영화 대사가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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