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3 22:02
수정 : 2005.11.23 22:02
|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
미디어전망대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사설까지 할애해 <중앙일보>가 한껏 띄워준다. 그러면서 신문사로서는 방송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비난 레퍼토리를 되풀이할 기회를 갖는다. 텔레비전에서의 지난 아펙 관련 프로그램이 얼마나 홍보, 선전 일색이었는지 뻔히 알고 하는 소리다. 황우석 교수의 윤리논란에 관한 방송보도가 얼마나 민족주의, 애국주의로 왜곡되어 있고, 그래서 객관적이고 비판적이지 못한지 멀쩡히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하는 말이다.
소위 ‘국익’을 위해, ‘번영’과 ‘질서’를 위해, ‘국가적 대사’를 위해 일방 보도할 때는 전혀 문제 삼지 않던 신문이 엉뚱한 데서 편파성의 증거를 찾는다. “올 들어서도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던 청계천 복원 행사를 생중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방송도 아닌 전국방송인 <한국방송> <문화방송>이 왜 청계천 행사를 서울이 아닌 전국에 생방송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그게 그렇게 “전 국민적인 관심사”인가? 그럴 거라는 발상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건가? 서울의 일이 전국의 일이라는 자동화된 의식, 아니 그 무의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서울과 지역 사이의 강화된 비대칭 구조를 반영하는, 내부 식민지적 심성의 명백한 징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서구가 제3세계를 바라보던 시각과 너무나 흡사한 ‘내부 오리엔탈리즘’의 특권적 시선 속에 초발전한 서울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 부재의 공간, 즉 자연이다. 서울이 곧 대한민국이며, 지역은 그 이면 풍경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울의 문명화된 소식을 알리고 또 알린다. 청계천 행사를 전국에 생중계했어야 한다고 시비하는 신문에서 농촌 현실을 서울로 전하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빈한한 농민의 얼굴을, 그들의 슬픈 좌절을 ‘전 국민’에게 생생히 전하는 게 공익방송의 참 역할이라는 사설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편향성이 아니면 무엇인가?
저개발의 지역과 진지하게 면대하지 않는 중앙의 방송사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종속된 농촌의 구조 신호에 제대로 응대하지 않는 방송사들을 방조하고, 나아가 그 무관심의 코드와 적극 공모하는 서울 신문사들의 실패도 반드시 따져야 한다. 요컨대 방송과 신문이 최근 농민들의 집단 상경시위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계속 왜곡·억압될 때, 약자는 몸으로 직접 발언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기 신체를 언론매체로 내세우는 것이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경과 다투는 농민들은 사회적 대화 단절 상태에서 스스로 방송이 되고 신문이 되고 기자가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서울에, 전국에 뜻을 전하려는 농민들을 서울의 방송, 중앙의 신문은 아펙 분위기를 위해 다시 뭉개버린다.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억압한다.
이렇게 지역의 메시지를 매개하는 최소한의 역할조차 포기한 신문에게 과연 방송의 편향성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중앙의 오만함에 깊이 중독된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라. 세계는 서울을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고른 발전을 위해, 전국도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서는 결코 안 된다. 기계적 서울중심주의의에 빠져 청계천 전국 생중계 어쩌고 떠드는 것은 그래서 서울 일간지의 한가한 넋두리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지역의 살길을 가로막는 중심부의 이기적 욕심, 언어폭력이다.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