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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1 15:54 수정 : 2005.11.22 09:27

홍석현 전 주미대사가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으로 출두한 16일 오전 민주노동당 당원과 ‘엑스파일 공대위’ 회원들이 검찰청사 현관 앞에서 홍 전 대사를 가로막고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던 중 취재하던 중앙일보 기자가 시위자의 목을 잡아 젖히고 있다.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보디가드 기자, 대통령친구 기자, 전쟁원인 기자 국내외 잇따라


다음에 설명하는 OO은?

(설명 1) ‘회장님’을 위해서라면 현직 팽개치고 ‘경호원’이 되기도 한다. ‘그 분’을 언짢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목을 낚아채는 것도 하나의 ‘필살기’다. 탈세에 대한 적법한 세무조사를 ‘표적 세무조사’라고 얘기하고, 사주 검찰 소환은 “탄압이다”라고 비판한다.

(설명 2) 술 먹고 “대통령이 내 친구다”이라며 택시기사의 낭심을 걷어찬다.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업의 내부정보를 미리 알고, 해당사 주식매매로 부당이익을 챙기게 해준다. 유착관계의 정치인에게 각종 보고서를 올리고, 기업인을 정치인에게 소개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설명 3) 방송사 아나운서를 두고 “술집 접대부 같다”라고 막말을 한다. 벤처기업으로부터 ‘스톡옵션’을 받아 ‘축재’를 하기도 한다.

경호원기자·주가조작·언론문건…중앙일보 기자 ‘두각’

누굴까? 부끄럽지만 기자다. 기억에 생생한 한국의 ‘일부 기자’들이다. 남의 얘기를 쓰는 기자들 자신이 직접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뉴스가 된 사안들이다. ‘뉴스가 된 기자’는 비뚤어진 일부 기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최근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입국과 검찰 출두과정에서 <중앙일보> 일부 기자들이 보인 모습을 계기로 일부 기자들의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지난 16일 홍 전 대사가 검찰에 출두하는 과정에서 중앙일보의 김아무개 사진기자는 기습시위를 벌이던 민주노동당 당원의 목을 낚아채는 과잉행동으로 인해 ‘경호원 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여러 번 ‘취재대상’이 되었다. 홍 전 대사가 중앙일보 사장으로 재직하던 1999년 9월30일 대검 중수부에 소환된 당시 중앙일보 사원들은 대검에 나와 “홍 사장,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언론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기자’는 사라지고 ‘사원’만 남았다고 말했다.

또, 1999년 당시 문아무개 중앙일보 기자는 ‘언론대책 문건’을 만들어 이종찬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에게 전달했다. 이아무개 <평화방송> 기자는 이 문건을 몰래 빼내와 정형근 의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밖에 같은 해 당시 길아무개 중앙일보 경제부 산업팀 차장은 신문제작 과정에서 입수한 신동방의 ‘무세제 세탁기’ 개발 사실을 동생에게 전화로 알려 주식을 사게했다. 이로 인해 길 차장의 동생은 총 4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해 문제가 됐다.

냉철해야 할 기자가 “난 노대통령 친구” “전라도 출신이냐”

<조선일보> 기자들도 말과 글, 그리고 행동으로 ‘취재대상’이 되었다. 조선일보 정치부 홍아무개 기자는 지난 7월13일 밤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택시기사 안아무개씨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허벅지와 낭심을 발로 찼다. 또 홍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내 친구다” 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고, 안씨에게 “전라도 출신이냐?”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홍 기자가 술에 취해 택시기사의 낭심을 걷어차고 행패를 부렸다 해서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과 ‘낭사마’라는 별명을 붙였다.

박지원 전 장관으로부터 촌지를 받은 게 재판과정에서 드러나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은 우아무개 당시 <월간조선> 기자는 지난 9월 <신동아>로부터 “2002년 대선 직전 최병렬 한나라당 의원에게 불법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을 소개해주었다”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신동아> 보도 뒤, 우 기자는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현재 우 전 기자는 동아일보사와 담당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조선일보>의 문아무개 기자는 지난해 12월14일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방송>의 한 여자 아나운서를 가리켜 “인생의 쓴 맛 한번 본 적 없이 멍청한 눈빛에 얼굴에 화장이나 진하게 한 유흥업소 접대부 같다”고 표현해 한국방송 아나운서 33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최근에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비롯하여 주요간부들이 경찰대 골프장을 빌려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벤처 붐이 일던 당시 벤처기업 출입기자들은 해당기업으로부터 받은 ‘스톡옵션’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큰 이득을 얻었다.

일본 기자는 ‘방화범’…“왜 또 사과하라고 하나” 반기문 장관과 ‘설전’

한국의 기자만 그럴까. 외국에도 ‘취재원’이 된 기자들은 여럿이다. 일본 <엔에이치케이> 방송국의 카사마츠 유타카사 기자는 방화 미수와 연속방화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일본 오츠시에서 일어난 10여건의 연속방화에 대한 혐의 때문이었다. 일부 혐의는 시인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23일 일어난 화재에서는 화재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해 소방서에 신고하는 한편 진화작업을 돕기도 했다. 자신이 방화범으로 몰리는 것을 피하려고 경찰과 소방서를 출입하면서 상황을 주시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3월2일 <산케이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장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설전을 벌였다. 구로다 기자는 “노 대통령이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는데, 그동안 많이 했지 않느냐. 더 하라는 것이냐, 사과가 부족한 것인가”라고 따지듯 물었다. 이에 반 장관은 “일본은 95년, 98년, 2003년 3차례에 걸쳐 각각 사과 및 유감을 표명했지만, 이후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발언이 많았다”며 “이에 우리 국민은 일본이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 때문에 대통령도 거듭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구로다 기자는 “일본 국민이 볼 때 한국 대통령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과하라고 하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외교인지, 또는 정상적인 국가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구로다 기자의 이날 모습은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질문이었다.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기자

지난 9월30일 ‘리크게이트’ 증언을 마친 뒤 워싱턴 법정을 떠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는 주디스 밀러 기자. 워싱턴/AP 연합
미국에서도 논쟁거리를 던진 기자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기자들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전 기자다. 미국언론은 밀러 기자가 부시 정부에 이라크 침공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밀러 기자는 2002년 9월 “후세인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인 ‘알루미늄관’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고, 곧바로 미국정부는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침공의 이유로 제시했다.

그런 그가 작년 8월 워싱턴의 연방대배심에 소환됐다. ‘리크게이트’ 수사 때문이다. 리크게이트는 사담 후세인이 핵 개발용 알루미늄관을 아프리카에서 사오려 할 때 관여한 발레리 플레임이라는 중앙정보국(CIA) 비밀 정보요원의 이름을 로버트 노박이라는 칼럼니스트에게 흘린 사람을 조사하는 사건이다. 그는 자신의 기사에 정보 요원의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보도한 장본인이어서 수사대상이 됐다. 연방대배심 판사는 그에게 취재원 공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고,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결국, 판사는 그에게 법정모독죄를 적용 18개월의 형을 선고했다.

그는 ‘취재원 보호’라는 기자의 본분을 잘 지켜 한 때 영웅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취재원과의 지나친 밀착으로 정부가 제공한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는 취재방식이 문제였다. 그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취재원은 이라크전을 기획한 ‘네오콘’ 리비 전 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게다가 그가 쓴 6건의 이라크 관련 기사 가운데 5건이 오보로 밝혀졌다.

‘지식인’이자 한때 ‘영웅’이었던 기자가 ‘사익추구집단’의 부속품

기자는 ‘지식인’으로 여겨져왔다. 197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닉슨을 하야시킨 장본인도 두 명의 기자였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워터게이트’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재선을 노리던 공화당 소속의 닉슨 대통령이 공작팀을 가동해 민주당 선거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것이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두 기자는 잇단 관련 보도로 관련 사건이 닉슨 대통령의 지시하에 이뤄진 사건임을 밝혀냈다. 프랑스의 이냐시오 라모네는 <커뮤니케이션의 횡포>라는 책에서 “워터게이트 사건 뒤, 미국의 영화에서는 기자와 영웅을 동일시했다”며, 영화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은 기자로 다룰 정도로 기자를 영웅시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의 기자들은 달랐다. ‘지식인’도 ‘영웅’도 아니다. 일부 기자는 기자라는 이름 앞에 ‘엽기’라는 단어가 덧붙여졌다. 냉철한 이성과 공익을 수호하려는 정의감으로 각종 사회현상과 문제를 지적해야할 기자들이 공익의 도구가 아닌, 사익추구 집단의 부속품이 되어버린 끝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차분하게 집요하게 취재원을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기자들이 스스로 ‘해프닝’을 일으킨 ‘취재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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