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큰지킴이’로 나선 부산의 풍물굿패 ‘굿길’ 회원들. 왼쪽부터 문경희, 허유화, 최민기, 이정호, 김창이, 김태근, 채영수, 전성호, 채화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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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창간] 덩더쿵 얼쑤∼ 풍물처럼 신명나는 세상 만들어야죠
“왜 <한겨레>를 읽어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연구하고 자료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호소하겠습니다.” 부산의 풍물굿패 ‘굿길’ 회원 13명이 한꺼번에 ‘한겨레 큰지킴이’를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들을 11월9일 밤 부산 동래구 동래 전철역 부근 소줏집에서 만났습니다. 무슨 생각을 갖고 있기에 ‘한겨레 불모지’ 부산에서 스스로 한겨레 영남본부를 찾아와 ‘한겨레 큰지킴이’를 하고 싶다고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먼저 하는 일을 물었습니다. 대뜸 “굿쟁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것말고 하는 일이 있을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더니 전성호(36·극단 자갈치 소속 연극인), 채영수(2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3년), 허유화(31·민락초등 교사), 문경희(39·중앙초등 교사), 이정호(20·한국해양대 기계정보공학과 1년), 최민기(25·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2년), 김선자(41·당감초등 교사)님이 마지못해 직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도 김창이(39·굿길 회장), 채화석(39), 김태근(32), 김동(38), 변영희(35)님은 끝까지 “굿쟁이”라고 했습니다. “굿쟁이를 굿쟁이라 하는데, 굿쟁이가 아니면 뭐라 해야 하느냐”는 투였습니다. ‘굿길’이 어떤 단체인지 물었습니다. 장난스럽던 대화가 갑자기 진지해졌습니다. 김창이 회장은 “항상 외워서 하는 말”이라며 “굿의 아웃사이더들이 모여 굿의 미학을 살리며 동시에 사회적 의제를 담는 굿을 치는 풍물굿 네트워크”라고 설명했습니다. ‘굿길’은 서울을 제외한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는 ‘굿쟁이’ 50여명이 모여 2000년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두들 각자 속한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1년에 네 번 2월 약수터 새미굿, 4월 교육굿, 5월 단오맞이 물굿, 10월 언론굿을 할 때마다 모여 ‘굿길’의 이름으로 풍물을 칩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굿은 10월 언론굿으로, 이들은 언론운동을 특정한 분야의 특화된 운동이 아니라 통일·교육·환경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운동으로 장기간 꾸준히 펼쳐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론굿만 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 직접 한겨레 돕자고 13명 의기투합. “신문 보세요” 핸드폰 저장번호 쿡쿡 누르고 모아둔 회비로 주식 사고…“우리가 힘 모으면 한겨레, 굿∼길 열릴 겁니다” ‘한겨레 큰지킴이’가 되기로 결정한 것도 10월30일 부산 금정문화회관 야외마당에서 열린 언론굿 ‘아! 조선이여’를 준비하다 “조선일보 반대 운동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다함께 체계적으로 한겨레를 돕자”는 데 뜻을 모은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특정 언론을 반대하고, 또 특정 언론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한겨레와 함께 커온 사람들이라 쉽게 의견 일치를 이뤘습니다.” 실제 문경희님은 한겨레 창간 초기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8개월 정도 한겨레를 배달했고, 채화석님 역시 1989년 부산 금정구 서동에서 한겨레를 배달한 인연이 있습니다. 김창이 회장은 “누구나 휴대폰에 가까운 사람 수백명의 전화번호를 입력해두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만 의욕을 가지만 올 연말까지 최소한 1인당 100명씩의 새로운 한겨레 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걸 못한다면 지금까지 세상 헛산 거죠”라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한겨레와 다른 신문들을 세밀하게 비교해 한겨레를 읽어야 할 이유를 자료로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한겨레 구독을 권유할 때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모아둔 회비로 한겨레 주식도 사기로 결의했다고 합니다.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한겨레에 애정 어린 당부가 이어졌습니다. “내가 예전에 한겨레를 배달할 때는 집회에 참가하거나 술 마신 다음날은 신문을 배달하지 않고 그 다음날 이틀치를 한꺼번에 배달하기도 했어요. 그때는 독자들이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한겨레가 잘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배달사고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채화석님이 자기 고백에 덧붙여 의견을 말하자, 김창이 회장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한겨레가 빨리 덩치를 키워야 합니다. 배달지국을 포함해 한겨레 가족이 모두 한겨레 본연의 일만으로도 먹고살 만하게 되면 절대 배달사고가 나지 않을 겁니다.” 한겨레에 대한 주문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세대를 위해 보는 순간 느낌이 확 오는 기사를 늘려야 한다”(채영수), “신세대 눈높이에 맞는 살갑고 가벼운 기사를 늘려야 한다”(문경희), “인터넷 세대도 즐겨볼 수 있는 내면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스포츠 기사를 실어야 한다”(김태근) 등 갈수록 종이신문에서 멀어져 가는 젊은층 공략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독자는 지식이 아닌 정보를 원하는데 한겨레는 너무 무겁고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데, 한겨레는 아직도 살아남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겨레가 좋지만, 좋은 신문을 오래오래 보려면 우리 스스로 한겨레를 지키고 발전시켜야죠.” 김창이 회장과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한겨레 큰지킴이 ‘굿길’을 믿어보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글·사진 최상원/편집국 사회부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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