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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3 11:19 수정 : 2005.11.10 16:36

옛 국가안전기획부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장이었던 공운영(58)씨가 26일 오후 6시15분께 경기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자해를 한 뒤 구급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가고 있다. 성남/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사회부 수습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바로 ‘안기부 도청 X파일’ 사건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했었습니다. 9시 뉴스에서 30분이 넘도록 계속 틀어대고, 신문에선 말 그대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었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건 초반엔 도청의 내용에 초점이 모아지다가 나중에는 그 유출경위로 ‘타깃’이 바뀌었습니다. 이에따라 사건의 핵심은 홍석현, 이학수, 이건희에서 점차 전 미림팀장인 ‘공운영’씨에게 모아졌습니다.

저도 선배의 지시를 받고 공운영씨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상당히 더웠던 날씨로 기억합니다. 도착해보니, 벌써 타 언론사의 기자들도 이른바 ‘뻗치기(취재원을 만날 때 까지 죽치고 있는 것)’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루한 ‘뻗치기’가 이어졌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이런 중대한 ‘뻗치기’의 경우 기한이 없습니다. 중간 중간 물론 교대요원도 있습니다.

3일정도 되니 타사의 기자들도 지쳐가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에 변변히 앉아 있을 곳도 없는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은 지옥 같았습니다.(밥은 매일 라면, 삼각 김밥이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나무 그늘은 나무에서 뭐가 그리 많이 떨어지는지, 몇 분 앉아있으면 어깨랑 머리에 뭔가가 잔뜩 쌓여있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가끔 나와서 핀잔주고 가는 공운영씨의 부인, 계속 눈치 주는 관리아저씨와 주민들까지, 죽을 노릇이었죠. 하지만 저를 더 서럽게 했던 것은 바로 ‘차’였습니다. 타사의 선배 기자들은 회사차를 가지고와 시원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차안에서 편안한(?)뻗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습 신분이기에 감히 회사차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동 틀어 놓은 자동차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란…….그때는 정말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내가 빚을 내서라도 차를 산다.’ 하지만 이 사진들은 그 회사차가 없었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습니다.


구급차로 실려가는 공운영씨.

지루한 뻗치기 와중에 무언가 급박한 상황이 전달되었습니다. 공운영씨가 자신의 심경을 담은 진술서를 배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락을 준 선배는 황급히 달려오는 상황이었고, 저 혼자 해결하기엔 좀 벅찬 상황 같기도 했습니다. 마치 007 작전처럼 지하주차장 내려가는 계단에서 ‘접선’을 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처음엔 저만 아는 사실인줄 알았었는데, 시간이 되자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그 ‘회사차’를 끌고 나타나더군요.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일단 진술서를 받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지하주차장에 모자를 눌러쓴 20대의 여자가 노란 서류봉투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공운영씨의 딸이었습니다. 공씨의 딸은 침착하게 기자들의 이름을 부른 후 진술서를 배포했습니다. 다행히 제 이름도 불렸습니다.(그때 명단에 이름이 없어서 애먹은 회사들 많았습니다. 참고로 공운영씨는 사전에 연락이 된 언론사에게만 진술서를 배포 했었습니다)


여하튼, 명단 배포가 끝난 후 공씨의 딸은 사라져 버리고, 그보다 더 빨리 타사의 기자들은 ‘회사차’를 타고 사라졌습니다. 타어어의 마찰음을 내면서요. 좀 허탈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꽤 많은 분량의 진술서 내용을 선배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 했습니다. 무작정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팩스 사용을 허락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진술서 뭉치를 받아든 여직원이 “이렇게 많은 건 팩스에서 에러가 나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관리사무소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상가 쪽으로 뛰었습니다. 부동산 중개 사무소가 보이더군요. 문을 박차고 들어가 사정했습니다. 다행히도 마음씨 좋은 사장님께서 흔쾌히 팩스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장님에게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무사히 회사와 선배에게 팩스를 보내고 나니 좀 정신이 들었습니다. 온몸은 땀범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고…….그냥, 다시 터덜터덜 제가 ‘뻗치기’했던 공운영씨의 아파트 앞으로 갔습니다. 제가 있던 곳에 쓰레기들도 치우고 폐 끼친 관리아저씨에게 인사라도 할 생각 이었습니다.


구급차로 실려가는 공운영씨.

그런데 이게 웬걸, 119구급차가 공 팀장의 아파트 앞에서 대기 중인 것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타사 기자들은 가버린 상태였고, 기자들도 몇명 없었습니다. 아마, 연합뉴스하고 KBS, 한국일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좀 있자 한 중년남자가 피를 흘리며 실려 나왔습니다. 그동안 낯을 익혔던 공운영팀장의 부인이 울면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서 찍기 시작 했습니다. 구급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1~2분여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정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순간 든 생각은 ‘이걸 어떻게 회사로 보내지’였습니다. 우선 공운영씨가 분당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도 급히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는 PC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떡하던 이 사진을 회사로 보내야 한다는 일념 하에 말이죠. 일단 응급실에 들어가서 의사들이 환자들 X레이나 CT를 볼 때 쓰는 PC를 쓸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욕먹고 쫓겨났습니다. 이번엔 병원본관의 아무도 없는 안내 데스크로 들어가 PC를 켰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메시지가 떴습니다. ‘암호를 입력하세요’. 막막했습니다. 이번엔 원무과로 갔습니다. 퇴근 후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겨우겨우 사진을 회사로 보낼 수 있었고, 그날 신문에 실렸습니다. 잠시 후 늦게나마 공운영씨의 자해소식을 듣고 다시 기자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완전 ‘시장바닥’이었죠. 그곳에서의 저의 ‘뻗치기’가 연장된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알아달라'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평소 독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는 사진 한 장, 글 한 줄이 이러한 힘든 과정을 통해서 신문에 실리게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별 것’아닌 기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밤잠을 못자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사진이 제 이름으로 나가긴 했지만, 당시 사회부 기동팀 전체는 물론이요. 한겨레 구성원 전체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입니다. 전 단지, 마지막에 ‘추수’만 한 것이지요.

이 글을 읽고 ‘뭐 저리 일을 무식하게 하느냐’라고 비난하실 독자가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다 제 무지의 소치라 생각합니다. 그 무지를 깨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이상입니다!

구급차로 실려가는 공운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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