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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2 18:28 수정 : 2005.11.02 18:28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미디어전망대

희한하게 좋은 뜻처럼 들리는 말이 있다. ‘탈규제’가 그렇다. 규제에서 벗어남,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공중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방송을 상업 논리에 빼앗기는 데도 마치 자신을 위한 것인 양 깜빡 속아 넘어간다. ‘민영방송’이라는 말도 똑같다. ‘민영방송’이 아니라 ‘사영방송’만이 존재한다. 사적인 이해, 좀더 정확히 말해 이윤 축적을 목적으로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상업방송이 있을 따름이다.

그 중 하나가 몇 년 안가 재허가 취소된 <경인방송>이다. <경인방송>은 ‘민영’이라는 미명하에 자본이 저지를 수 있는 공익성 파산의 증거였다. 방송의 기본을 이해 못하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자본의 퇴행에 대한 생생한 역사였다. 폐허에 남겨진 직원과 시민들은 더 이상 지역의 방송이 자본에 의해 농락되지 않도록 분투해 왔다. 공익에 부합하는, 지역 밀착적이고 시민 참여적인, 무늬만 ‘민영’이 아닌 그런 방송을 꿈꿔왔다.

그런데 방송위원회가 그 꿈을 산산조각 깨뜨렸다. 정신 차리라는 뜻인가? 지난번 발표된 방송사 선정방안을 보면, “정부기관 및 그 산하단체, 지방자치단체 및 그 산하단체, 정당,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관련 법인 또는 단체,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법인 또는 단체는 주요주주(지분율 5% 이상)로 참여를 지양하도록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방송법에 어긋난 ‘정당’ 부분을 뒤늦게 삭제한 것이나, ‘지양’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써 뭔가 여지를 남겨 둔 대목은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4.9퍼센트까지 지분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준 반면, 시비에스나 중소기업협동중앙회과 같은 공적 재단의 주도적 자본 참여를 원천 봉쇄한 점이다. 시민주 등 지역자본 참여의 다양성을 중시해 달라는 정당한 요청을 무시한 점이다. 전 직원들의 고용 승계 문제를 심사 기준에서 도외시한 점이다. 그러면서 자본에 문호를 완전 개방한 점이다. 그 자의적인 판단력이 문제다. 쉽게 그림이 그려진다. 정파 사태를 초래한 아이티브이 법인이든 기존 거대 매체와 연계된 기업이든 상관없는, 그럴듯하게 진영을 꾸민 자본에 의한 또 다른 지역 상업방송의 출현이다.

방송위원회는 이 판단 오류를 빨리 ‘심의’에 올려야 한다. ‘민영’이라는 이름으로 상업 채널 늘이는 데 반대하는 지역민의 각성을 좇아야 한다. 방송을 축적의 기회로만 엿보는 후진 자본의 틈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풀뿌리 판단력을 존중해야 한다. 번지르르한 사업제안서쯤 쉽게 꾸밀 수 있고, 1500억원 초기 자본금도 금방 끌어모을 수 있는 자본에게 두 번 속지 않겠다는 심정을 이해해 보자. 자신의 삶, 자신의 뜻을 바르게 표출해줄 방송에 대한 열망을 얕잡아 보지 말자. 시민에게 개방되고 시민의 참여를 격려하는지 여부가 민영방송 사업자 선정의 주요 잣대가 되는 게 옳다.

이와 모순 되지 않는다면, 방송위원회는 공적 자본의 참여 ‘지양’이라는 방어벽을 미리 쳐둘 이유가 없다. “폭 넓은 여론 수렴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더 가져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논평, “지역민에 의한 민영방송 설립이라는 최소한의 방송 공공성 실현 의지도, 철학도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민노당의 비판을 뭉개는 게 능사가 아니다. 탈규제와 상업화의 목소리가 판치는 시대에 위원회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시장과 시민, 사리와 공익 사이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된다. <올드미스다이어리> 검열에서 확인된 문화 지체 현상이 이렇듯 반복된다면, 누가 방송위원회를 신뢰하고 보호해 줄 것인가?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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