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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4 20:13 수정 : 2005.10.15 08:39

경찰의견서 여과없이 보도 현정부 음모론 들먹이기도

1970, 80년대 간첩단 사건 보도는 ‘조직도’ 보도였다. 훗날 이들 사건의 상당수는 조작사건으로 드러나거나,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강정구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일부 신문의 보도가 70, 80년대 간첩단 사건 보도를 닮아가고 있다. <동아일보>는 14일치에 강정구 교수에 대한 경찰의 구속 의견서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강 교수의 발언과 행동이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반민전 등의 행동지침에 이론적 틀을 제공해 왔다는 판단과, 강 교수의 칼럼 여러 개가 반민전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사실 등을 기술한 경찰 의견서를 1면 머릿기사와 3면 전체, 사설에 걸쳐 여과없이 펼쳤다. 반민전 홈페이지 사진과 구국전선 조직도 등 시각물도 실었다.

그러나 강 교수의 칼럼이 반민전 홈페이지에 올라간 경로 등에 대해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경찰 의견서 하나만으로 “이 사건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써서, 강 교수의 발언과 행동이 개인적 ‘일탈’이 아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전의 보도 행태와 다른 점이라면 보도 내용이 공안당국의 공식발표를 받아쓴 게 아니라 의견서를 입수해 옮겨썼다는 것 정도다.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불구속’ 지휘권 행사로 강 교수 사건은 검찰 수사권 문제를 디딤돌 삼아 현 정권의 정체성 논란으로 확산·변질되고 있다. 이런 국면 전환에도 보수 신문들의 보도가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신문은 여당의 강 교수 불구속 의견을 연관지어 천 장관의 지휘가 여권의 조율을 거쳐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 정권은 강정구씨의 국선변호인인가’(<조선일보> 13일치 사설) ‘이 정권은 언제까지 대한민국 공격을 계속할 것인가’(〃 14일치 〃) 등을 통해 현 정부로 펜 끝을 돌려 겨누고 있다.

또 보수 신문들은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안기부 도청사건 등 검찰수사에 개입하기 위한 물꼬를 트려는 것 아니냐”(조선 13일치), “여권이 사활을 걸고 밀어붙이고 있는 과거사 청산 작업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동아 13일치)는 등, 현 정부에 대한 음모론적 해석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주동황 광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 언론의 공안사건 보도는 몰아붙이기, 오보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같은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러나 과거 보도가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수동적으로 나온 것이라면 지금 보도는 일부 언론에 의해 매우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오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태도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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