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건물 현관에 얼마 전 작은 전시함이 마련됐습니다.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라는 시민단체가 보낸 ‘선물’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일본 후소사판 역사교과서 불채택 운동 과정에서 쓰인 여러 자료집 및 홍보물과 함께 이 단체가 한겨레신문사에 전한 감사패도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이 선물에 얽힌 사연을 자랑삼아 전해 드립니다. 일본 우익들의 역사왜곡은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습니다. 지난 여름, 후소사판 역사교과서와 공민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됐을 때, 각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그 자체로도 잘못이지만, 평화와 연대를 지향해야 할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당연히 <한겨레>도 관련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그냥 ‘많이’ 썼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장기적이며 체계적으로 이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다만 며칠 동안 여기에 주목했다면, <한겨레>는 이미 2005년 초입부터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 문제를 파고 들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차이는 따로 있습니다. <한겨레>는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교과서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제작했으며 보급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얼마 전 선물을 받았습니다. 일본 왜곡교과서 채택률을 낮춘 데 대해 공이 크다는 감사패입니다. 한겨레는 며칠로 끝나는 시끌벅적한 보도 대신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보도를 했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중·일 공동교과서라는 희망의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동아시아 평화의 집을 어떻게 지을까, 앞으로도 한겨레의 고민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웃 민족국가를 배척하고 비하하는 방식으로 자기네 국사를 써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 교과서가 자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방식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도 공통적입니다. 일본 우익 세력은 이런 ‘일국적 역사관’을 극단적으로 확대시켰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겼습니다. 후소사판 교과서는 그 전형입니다. 여기에는 일국적 역사관을 넘어 ‘패권적 역사관’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 앞으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해도 별 문제 없다는 역사인식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다시한번 침략과 전쟁의 아픔이 반복될 위험을 확산시키는 일입니다. 이들은 “한국이나 중국의 국사 교과서도 다른 점이 없다”며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합니다. <한겨레>는 바로 이 점에 착목했습니다. 우익 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중국 내부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를 자극하게 됩니다. 일본 우익은 한·중의 민족주의적 분위기를 근거로 내정간섭 운운하며 다시 일본인들의 민족 정서를 부추깁니다. 악순환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공동 역사교과서는 각자의 목소리를 낮추는 대신 서로 눈높이를 맞추자는 일입니다. <한겨레>는 올 1월3일치 신년특집 기사로 한·중·일 공동 교과서 문제를 다뤘습니다. 한 면에 걸쳐 유럽에서 진행된 공동 역사교과서의 성과와 동북아시아에서 이를 구현할 여지를 살폈습니다.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의 주도로 세 나라 역사학자들이 3년여에 걸쳐 공동연구 작업을 진행해 왔음을 처음으로 알렸습니다.
이후 <한겨레>는 2월부터 5월까지 동북아 근현대사의 주요 쟁점을 12차례에 걸쳐 짚는 대형 기획기사를 연재했습니다. 공동 역사교과서 집필에 참가한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기사를 도왔습니다. 각각의 기사는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에 대한 강력한 경고인 동시에, 전혀 새로운 지평에서 해법을 보여주는 신선한 제안이었습니다. 제2창간을 알린 지난 5월16일치 신문에서 <한겨레>는 1면 기사로 세 나라 중학생들의 역사인식을 비교했습니다. 각 나라 중학생들에게 똑같은 역사시험 문제를 내고 그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무려 3개면에 걸쳐 한·중·일 공동 역사인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다각도로 짚었습니다. 5월27일치 1면에는 공동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의 역사적인 출간 소식이 실렸습니다. 공동 교과서의 내용을 자세하게 분석해 전했습니다. 한겨레신문사 출판부가 이 교과서의 한국어판을 출간했습니다. 이후 도쿄와 베이징에서 이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특파원들의 낭보가 지면을 통해 소개됐습니다. 6월 들어 한겨레신문사는 <미래를 여는 역사> 보급 운동을 본격화했습니다. 뜻있는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들의 성원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도 이를 적극 거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시중 서점을 통해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이 교과서의 튼실한 내용에 대한 ‘입소문’도 번졌습니다. 중등학교 역사 수업의 부교재로 학생들에게 읽히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불어 중국과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후소사판 교과서 불채택 운동의 현황을 시시때때로 전했습니다. 일본의 뜻있는 시민들이 후소사판 교과서를 비판하는 대안으로 <미래를 여는 역사>를 제시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도 <한겨레> 하단의 광고란에는 중·고교생 학부모와 교장선생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립니다. <미래를 여는 역사>의 단체 구매를 권하는 내용입니다. 현재 중·고교 역사교과 과정은 근대 이전 시기의 국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현대사는 선택과목입니다.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교재로 택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 우익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막아낸 일 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역사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 분들에게 <미래를 여는 역사>는 매우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한 시민단체가 한겨레신문사에 감사패를 전달한 이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한겨레>는 한 순간의 시끌벅적한 보도로 끝내지 않았고, 일면적 비판만 쏟아붓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21세기 들어 역사 문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에서 핵심적인 관건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에 대한 작은 모범을 보여줬습니다. 다른 어느 매체가 아닌, 바로 <한겨레>였기에 이 일이 가능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한겨레>는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를 꿈꾸는 동시에, 그 평화를 구현할 좁고 험한 길을 계속 개척하고 있습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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