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한국방송, 강제퇴출 가능해진다 |
삼진아웃제·희망퇴직제·임금피크제 등 도입 추진
한국방송이 3년 내리 하위 5% 고과평점을 받을 경우 퇴직시킬 수 있는 ‘3진아웃 제도’를 올해 안에 도입하고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다. 또 임금피크제를 노조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방송에 부분적이나마 강제 퇴출구조가 마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처가 가시화할 경우 방송위원회가 최근 입법예고한 방송법 개정안 논란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방송법 개정안은 한국방송의 예산을 정부투자기관 예산편성 지침에 준해 편성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방송 고위 관계자는 25일 “최근 방송법 개정안의 배경엔 한국방송이 투명하지 못하고 방만한 경영을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잘 안다”며 “이런 인식을 씻어내는 차원에서 3진아웃 제도와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노사협상 대상인 임금피크제도 노조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이런 조처가 방송법 개정안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은 결코 아니며, 방송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개정안의 독소조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한국방송의 확고한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노조 관계자는 이런 방침과 관련해 “방송법 개정안 문제가 마무리되고 회사 쪽에서 정식으로 내용을 제기하면 유연한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법 개정안에 내부개혁 ‘맞불’
이런 조처는 최근 방송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계기로 한국방송의 내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커진 데 대한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시민사회와 학계 등에선 “1987년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한국방송을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에서 제외한 역사적 의미를 망각한 반역사적 처사”라며 방송법 개정안의 철회를 요구해 왔지만, 한편으론 한국방송 또한 중단 없는 내부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해 왔다. 방송법 개정안이 예산편성의 통제를 통해서라도 한국방송의 방만 경영을 저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깔고 있어, 그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체적 내부 개혁을 통한 대응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개혁프로 잇단 폐지…방향 잃을까 우려
하지만 이번 조처만으로 한국방송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에선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개혁을 향한 바깥의 요구 수위가 부분적 퇴출구조 마련 정도를 넘어 예산·결산 통제장치 마련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방송의 다른 핵심 관계자는 “정치권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이 통제하는 방식 또한 편성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수용할 수 없다”고 이를 일축했다. 지역국 추가 감축이나 대북방송(사회교육방송)과 국제방송 같은 국책방송의 분리 같은 한층 과감한 구조개혁 방안을 두고도 경영진의 전반적 기류는 ‘어렵다’는 쪽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핵심 관계자는 “구조개혁에 비판적인 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상황에서 추가적 내부개혁은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지난 한해 거둔 팀제와 지역국 감축 성과를 다지고 내부를 추스를 시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개혁 프로그램’의 잇따른 폐지를 둘러싼 내부 논란 또한 격화하고 있다. 논란 대상은 지난해 10월 가을개편에서 폐지된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함께 대표적 ‘개혁 프로그램’으로 꼽혀온 〈인물 현대사〉다. 한국방송 쪽은 이 〈인물 현대사〉를 4월 봄개편 때 폐지하기로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편성 핵심 관계자는 “시작한 지 2년 정도로 연한이 찬데다, 새로 〈에이치디 역사스페셜〉을 편성하게 돼 역사 프로그램이 겹치는 문제가 생긴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말한다〉에 이어 〈인물 현대사〉마저 이를 대체할 만한 개혁 프로그램의 준비 없이 폐지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선 피디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한 피디는 “〈한국사회를 말한다〉가 〈케이비에스 스페셜〉에 통합된 뒤 사회 현안에 대한 한국방송의 발언이 대단히 축소됐다”며 “〈인물 현대사〉도 개혁 성격의 대체 프로그램 없이 폐지될 경우 한국방송이 어렵게 구축한 정체성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한 피디는 “내부 구조개혁에 대한 협소한 전망과 더불어 총체적인 ‘개혁 피로’ 현상의 징후라고 본다”며 “팽이는 계속 쳐야 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방송법 개정안이라는 ‘외환’과 개혁 프로그램의 퇴조라는 ‘내우’ 사이에서 한국방송의 개혁 방향타가 어느 쪽을 향할 것인지 주목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