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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9 17:30 수정 : 2005.09.09 17:30

전북 삼례에서 19년째 개업중인 성심치과의 박미현 원장(가운데)과 김영옥(왼쪽)·이윤경 간호사는 철저하게 환자 편에서 치료한다는 원칙을 세워 지키면서 함께 <한겨레>를 적극적으로 구독권유하는 ‘자발적 한겨레 판촉요원’들이다.

‘한겨레 자발적 판촉요원’ 박미현 치과 원장과 간호사들


“한겨레 주주와 독자가 되시면 치과 치료비를 할인해 드립니다.”

한 치과원장이 한겨레 발전기금 모금과 독자 배가에 발벗고 나섰다.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참여사회> 8월호에 네 가족 모두 참여연대에 후원하는 한 회원의 소개가 실렸다. “별달리 기여할 것이 없어 회원 되기를 망설였지만 회비만 내는 회원도 시민단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겨레> 기사를 읽고 용기를 냈다”는, 전북 완주군 삼례에서 치과를 개업하고 있는 치과의사 박미현(45)씨의 사연이었다. 소박한 미소의 사진이 실린 박씨는 이 글에서 “요즈음에는 본업 못지않게 한겨레 독자 배가운동에 바쁘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한겨레 제2창간본부에서 모른 채 자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풀뿌리 <한겨레> 독자 배가운동’의 현장이었다. 9월2일 박씨가 원장으로 일하는 삼례읍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성심치과를 찾았다.

좋은걸 나혼자 보면 어떡해요?
학부형들에겐 “논술 길잡입니다”
학생들에겐 “한겨레출판사 책이야”
본업 미끼로 한겨레 권유 캠페인
보수신문→한겨레
갈아타기 번거롭다고요?
절차 대행 맡겨만 주시라니까요

“별걸 다 취재하러 왔다”며 수줍게 기자를 맞는 박 원장이 한겨레 확장에 나선 이유는 간명했다. “좋은 것인 줄 아는데 이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보고, 안 권하면 나쁜 것 아닌가요?”

박씨는 참여연대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10여곳을 후원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박씨의 ‘대외활동’의 중심은 단연 <한겨레>다. 박 원장은 한겨레 권유 캠페인이 치과 치료 외에 하나의 사회활동이자 취미활동이라고 말한다. “일 속에서 한겨레 권하는 운동을 하니 스스로 즐거워요.”

“학부형들에게는 한겨레가 대학 논술에 도움이 된다고 권해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잖아요.” “대부분은 ‘원장님이 권하시니 좋은 것이겠지요’라며 받아들여요.” “학생들에게는 한겨레신문사에서 펴낸 책이나 백범김구 노트나 열쇠고리를 주면서 권하지요.”


박씨 스스로 ‘짓궂은 짓’이라고 표현하는 일은 간호사들이랑 함께 한다. 10년 넘게 함께 일해온 김영옥·이윤경 간호사도 한겨레 확장운동에 한뜻이다. <한겨레>를 보겠다는 환자들에게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곧바로 지국에 전화를 해서 신청하고, 간혹 다른 보수신문을 보고 있거나 경품을 받고 신문을 보고 있어서 바꾸고 싶어도 어렵다고 하면 즉각 ‘번거로운 절차’를 대행하며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원장님, ‘공포’에 떠는 환자들에게 의사가 치과용 드릴 잡고서 우월적 지위에서 <한겨레> 구독 ‘강요’하시는 것 아녜요?” 웃으며 물었다.

박 원장도 웃었다. “전혀 아니에요. 지속적인 진료 과정을 통해 환자와의 인간적 신뢰와 공감이 이뤄진 이후에 말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때쯤 <한겨레>를 권하지요.” 그러면 대부분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 ‘한겨레 판촉요원 박미현’의 ‘비결’이다.

“한겨레 주주와 독자에게 특별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것은 한겨레를 보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상대적 불이익을 주게 되는 것 아닐까요?” 박 원장에게 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치료비 할인은 원장인 제 몫의 이윤을 환자에게 대신 드린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억울하면 한겨레 독자 되어서 혜택 받으면 되지요.” 성심치과는 이 지역에서 19년째 개업하고 있지만,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직껏 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박 원장은 치료할 때 환자에게 부담이 가는 진료는 절대 권하거나 시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화급한 것이 아니면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철저하게 환자 위주로 생각하고 치료를 하다보니, 지역 의사들 모임에서 평이 좋지는 않다. 박씨는 개업할 당시 남의 목에 칼이 될 수 있는 상해진단서를 함부로 발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고 여태 그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덕분에 거친 사람들의 항의에도 자주 마주치지만, 타협은 없었다. 보람은 크다. 밥을 사겠다는 지난날의 환자들이 줄을 잇고, 지난해엔 오래전 환자가 감사하다며 신혼여행을 치과로 온 적도 있었다. 박씨는 조금 더 마음의 준비가 되면 장애인 대상 전문병원이나 중앙아시아의 의료사각지대에서 ‘좀더 쓸모있는 의사’가 될 계획도 품고 있다.

박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일찍이 남다른 가르침을 받았다. 아버지는 시인으로 원광대 국문과 교수를 지내며 전북지역 문인들을 길러낸 박항식 교수이고, 어머니 강영진씨는 익산지역의 각종 단체와 노조들 문건을 기초한 지역의 대표적인 민주화인사였다. 박씨의 부모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녀들에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박씨가 초등학교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워 학교에서 스테인리스수저를 선물로 받아오자 어머니는 “박정희가 준 걸 받을 수 없다”며 바로 선생님에게 편지를 써 돌려보냈다. 당시 박씨집 대문에는 ‘10월유신 결사반대’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박씨도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실천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저는 어서 나이 오십이 되었으면 해요. 아직도 어른이 못된 것 같아 부끄러운데 오십이 되면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해도 ‘나이가 어려서 부끄럽다’는 계면쩍음은 벗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무실 한켠에 좋아하는 곰인형들을 가득 모아둔 박씨는 말처럼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다. 하지만 박씨에게 부끄러움과 용기는 별개로 보였다. 박씨는 “부끄러움이 많지만 꼭 말해야 할 때, 옳다고 믿는 일을 할 때는 저도 모르게 용기가 생겨요”라고 말했다.

완주/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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