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반민족적 족벌언론에 사망을 선고하고 풀뿌리 민주언론을 통한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만장이 옥천 언론문화제 들머리를 수놓았다. (가운데) 옥천 언론문화제에서는 이 지역 출신인 〈한겨레〉 초대사장 청암 송건호 선생을 추모하는 사진전도 열렸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송건호 선생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오른쪽) 옥천 언론문화제에서 ‘조선일보’ 사망 상주들이 축하 노래를 하며 문상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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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 저지’ 옥천 언론문화제
8월 14일, 조선이 죽었다는 소식에 전국 곳곳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 곡소리에 맞춰 눈물 대신 웃음꽃 흐드러진 상갓집, 축하공연, 조아충북 출범, 송건호 선생 추모 사진전 등 행사는 절정에 오르고 보수언론 장례식 옆에선 언론개혁 깃발이 신명난 듯 나부겼다 충북 옥천은 8월이면 더 뜨거워지는 고장이다. ‘옥천 세번째 언론문화제’가 열린 8월14~15일의 열기는 옥천을 ‘언론개혁의 성지’라 일컬을 만했다. 2000년 8월15일 옥천 주민 대표 33명이 정지용 시인의 동상 앞에서 “조선일보 바로보기 옥천 주민모임’을 만든 뒤 ‘안티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언론개혁의 불을 지핀 것을 기념해 2003년부터 열리는 옥천 언론문화제는 이제 지역을 넘어 전국의 축제가 됐다. 올해는 이곳 출신으로 〈한겨레〉 창간을 주도하고 초대 사장을 지낸 언론인 청암 송건호 선생 기념사업회와 옥천지역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언론문화제 조직위원회가 함께 마련해 의미를 더했다. 이번 문화제의 다른 이름은 ‘조선일보 장례식’이었다. 행사도 오한흥 문화제 조직위원장 등이 상주가 돼 손님들을 맞고 대접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장례’는 눈물 대신 웃음과 춤이 어우러진 축제로 진행됐다. 14일 오후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은 “〈조선일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며 정중히 조문을 한 뒤 상주들과 어울려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라는 곡까지 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장례에서 문상객은 ‘하객’, 부의금은 ‘축의금’, 곡소리는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좋아라’였으며 눈물 대신 웃음꽃이 흐드러진 잔치로 이어졌다. 관성회관 주변 주행사장에는 김성장씨 등 20여명의 작가들이 언론개혁 염원을 적은 100여장의 깃발이 바람에 나부껴 장관을 연출했다. 충북 민언련과 한겨레가족 청주모임이 마련한 ‘송건호 선생 추모 사진전’, ‘〈조선일보〉 반민족 범죄기사 모음전’, ‘전국 지역신문 총집합전’ 등도 눈길을 끌었다. 땅거미가 깔리면서 시작된 참여, 다짐, 다시 성취와 화합의 어울림 한마당은 500여명의 관객을 흥분과 감동으로 몰아넣었다.옥천 안남 한글학교 할머니합창단과 피노키오, 소리새, 부부가수 해와 달, 노래패 해오른누리가 선사하는 뜻있는 노래와 언론개혁 메시지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었다. 〈젊은 그대〉 등 귀에 익은 빠른 노래가 나올 때는 모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과 노래로 하나가 됐다. 공연 중에는 5년 전 옥천의 언론개혁 운동을 충북 전역으로 확산시키려는 뜻을 담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충북’(조아충북) 출범식도 열렸다. 청주 영운동성당 신성국(45) 신부 등 충북인 333명이 서명한 ‘충북 언론독립 선언서’에서 “충북이 조선일보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겨레가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이라고 밝혔다. 신 신부는 “전국의 모든 도·시·군이 떨쳐 일어서 〈조선일보〉를 똑바로 보고 확실히 거부해야 진정한 광복이 온다”며 “조선일보 안보기 운동이 퍼지면 대안언론 〈한겨레〉 보기는 자연스럽게 퍼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열린 ‘보수언론 장례식’은 행사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영정을 앞세우고 관을 들고 화장터인 공설운동장까지 가는 운구행렬은 신명난 풍악이 길을 텄으며, 주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망자를 보냈다. 영정과 관을 운동장에 마련된 장작더미에 올려 화장을 한 뒤에는 상주와 참석자들이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의 최후를 기뻐했다. 행사장을 둘러싼 천막에서는 언론개혁 난장토론이 이어졌다. 김원웅·정청래 의원,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 등과 시민들은 밤새 언론의 새 길을 논했다. 새벽까지 언론개혁의 바람을 이야기한 시민들은 날이 밝자 청암 송건호 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옥천군 군북면 비야리 산아래 마을에 자리잡은 선생의 생가는 십수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벽이 허물어지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지만 선생의 참언론 정신은 그대로였다. 옥천중학교 조만희 교사는 “옥천과 언론의 상징을 되살리려는 뜻에서 선생의 생가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군의원이 조선일보 절독에 앞장서고, 해병전우회가 조선일보 장례식에 참여하고, 한 식당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순대집’이라는 간판을 자랑스럽게 걸고 장사를 하는 곳, 옥천은 다른 고장과 다른 기운이 흘렀다. 오한흥 조직위원장은 “옥천에서 열린 언론문화제는 보수언론을 넘어 사회개혁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며 “아쉬움도 있지만 소중한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더욱 알찬 행사로 주민과 하나가 되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옥천/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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