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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6 17:04 수정 : 2005.08.26 17:06

‘탁구여왕’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상식’ 은 ‘스매싱’ 보다 매섭다! 내 승부수 한겨레와 닮았나요?


“<한겨레>는 현대백화점 탁구단 창단할 때부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기자가 찾아왔을 때 너무 인상이 좋았고, 선한 이미지였다.”

<한겨레>보다는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에 반한 이에리사(51) 태릉선수촌장. 한겨레와의 인연이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에리사 현대백화점 탁구팀 감독은 대학교수를 거쳐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산실인 선수촌장으로 일하고 있다. 당시 취재를 하던 김경무 기자는 현재 한겨레 스포츠부장으로 재직중이다. 알뜰하기로 소문난 이에리사 선수촌장이 한겨레 발전기금으로 30만원을 냈다. 선수촌장의 판공비가 아니다.

묵혔던 문제 들추는 ‘싸움꾼 촌장’
죽음의 지점까지 가는 선수처럼
계속 싸울겁니다

‘탁수선수 이에리사’는 내세울 것이라곤 ‘짙푸른 가을 하늘과 반만년 유구한 역사’뿐이던 1970년대 초반 한국민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조선 낭자의 매서움을 세계에 과시한, 말 그대로 ‘한국 탁구의 대명사’였다. 이에리사 선수는 18살이던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따내며 ‘사라예보의 승전보’를 국민에게 선사했다. 이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국제오픈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그는 세계 최정상의 결과를 거두며 ‘탁구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여자탁구팀 감독을 맡아 복식 금메달을 따내, 지도자로서의 역량도 인정받았다.

지난날의 ‘스타’에서 엘리트 국가체육의 사령탑으로 변신한 이에리사 촌장은 매우 상식적이다. 상식에 어긋나면 분노하고, 타협할 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와 비슷하다. 일례를 들어보자. 1966년 개원한 태릉선수촌에는 여러 명의 선수촌장이 거쳐갔다. 그러나 모두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갔다’. 그런데 올 3월 이 촌장이 부임하고부터는 선수촌이 시끄럽다. “시설 개선을 해달라” “선수 훈련 일수 늘리게 돈을 더 달라” “지도자 처우가 열악하다” 등등 촌장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나 문화관광부 실무자들은 “이제껏 아무 일 없었는데, 새 촌장이 온 뒤부터 갑자기 문제가 많아졌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그래도 결국에는 이 촌장에게 질 수밖에 없다. 왜? 상식적이니까.

이에리사 촌장은 외롭게 싸운다. “그동안 문제제기하지 않았던 것을 꺼내니까 일부에서는 체육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본다.” 그러나 ‘작은 거인’은 두려움이 없다. “어려운 선택의 문제에 부닥치면 ‘내가 왜 선수촌장이지?’를 물어보고 행동한다.” 그 원칙으로 최근 환기가 되지 않는 선수촌 기숙사 1층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보수공사를 했다. 식당의 테이블도 산뜻하게 바꾸었다. 이런 작은 것이라도 공평하게 사리에 맞게 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서다.

더 큰 싸움은 선수촌 훈련예산 증액이다. 지금의 연간 98억원으로는 각 종목 선수들이 100일밖에 훈련하지 못한다는 게 이 촌장의 지적이다. 이 촌장은 예산을 170억원 정도로 늘리려고 애쓴다. 만만한 목표가 아니지만 각오는 현역 선수 시절처럼 다부지다. “운동선수는 매일 죽음의 지점까지 가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그 심정으로 싸우겠습니다. <한겨레>도 힘이 돼 주세요.”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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