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는 25일자 1면 사설에서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 와 관련해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중앙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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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짜깁기·외면하기…미림팀장 발언 인용 제각각 공범 세 명이 따로 따로 조사를 받는다. 셋 다 범행을 부인하면 다같이 가장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자백을 하면 자백하지 않은 나머지 공범은 최고형량을 받는 대신, 자백한 사람은 그보다 낮은 형량을 받는다. 물론 자백한 사람도 셋 다 범행을 부인할 때보다는 높은 형량을 받는다. 하지만 다른 공범이 자신보다 먼저 자백한다면 가만 앉아서 가장 높은 형량을 받게 된다. 그래서 공범 셋 다 자백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공범들은 모두 최고형량을 받는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가 한 명 있다. 공범 두 명은 숨어 있다. 이 죄수는 공범을 대면 형을 감면받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공범의 죄를 증언한다. 검찰은 이 죄수의 범죄도 입증하고, 공범들도 일망타진한다. 이른바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다. 미국영화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제도가 없다. 얼마전 검찰이 사법개혁위원회에 이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한 적은 있다. 중앙일보, 방어에서 공격으로…“조선·동아도 다친다”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 사태를 다룬 25일치 <중앙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보도는 ‘조·중·동’이라는 낯익은 묶음을 무색하게 한다. 전날 밤 <에스비에스>의 ‘미림팀장’ ㄱ아무개씨의 인터뷰 보도에 대한 세 신문 보도는 제각각이다. 이 보도를 가장 의욕적으로 인용 보도한 신문은, 그동안 이 사태를 가장 소극적으로 다뤄온 중앙일보였다. 극적인 반전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에 사설을 싣는 파격을 시도했다. 홍석현 전 사장이 정치적 악습에 관련된 것으로 비친 것에 참담한 심정으로 국민과 독자 앞에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은 ‘입 열면 다칠 언론사 많다’(1면 머릿기사), ‘조선·동아 지금 제정신 아니야…역겨워’(3면) 등의 제목을 단 기사를 통해 조선·동아 등 경쟁 언론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조선일보가 도청테이프 문제를 처음 치고나온 뒤 파문이 커져가는데도 ‘불법도청’에 초점을 맞추고 “도청 진상 규명이 먼저”라며 ‘차별화’된 보도 태도를 보였다. 홍석현 주미대사가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과 97년 대선자금 지원을 논의하고, 이를 직접 정치권에 전달했다는 테이프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법원의 방송금지가처분 결정을 대며 불법 도청한 테이프 내용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반성의 물마루 너머는 곧바로 공격이었다. “중앙일보는 물론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했으며, 입 열면 안 다칠 언론사 없다”는 미림팀장의 말을 에스비에스 보도를 그대로 인용해 1면과 3면에 펼쳤다. 에스비에스의 보도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앙일보는 직접 하기에는 차마 낯뜨거운 얘기를 인용보도 방식으로 돌려서 했다. 조선일보 “정치권 각성하라”…자기 얘기는 쏙 빼 하지만 메시지는 정확했다. 중앙은 ㄱ씨의 말을 빌려 “조선일보·동아일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며 “자기들은 마치 정도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나는 그것을 보고 역겨웠다”고 보도했다. 또 “중앙일보의 도덕성을 연일 공격하는 다른 언론사는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라는 말도 그대로 전했다. ㄱ씨의 말을 인용했으나, 주어를 ㄱ씨에서 중앙일보로 바꿨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자기만 죽지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는 25일 1면에 ‘안기부 불법 도청테이프’ 와 관련해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아무개씨의 말을 인용해 ‘정치인 중 돈 안받은 사람 없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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