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5 19:03
수정 : 2005.07.15 19:05
사회맡은 유재관·지정남씨 `심청가’ 구성진 가락에 한겨레 탄생사 노랫말 엮어
“아따, 요사람들 재밌구마~. 참 귄(매력)있게 잘하네”
‘광주·전남 한겨레의 날’공연이 끝나자 장년의 시민이 무대로 올라왔다. 그는 이날 사회를 맡은 광주엠비시 〈신얼씨구 학당〉 진행자 유재관(사진 오른쪽)·지정남씨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유씨와 지씨는 이날 행사 사회에 그치지 않고 〈한봉사 세상사 눈뜨는 대목〉을 창작 소리로 불러 인기를 모았다. 판소리 〈심청가〉를 빌려 〈한겨레〉 탄생의 필연성을 담아, 지방 녹화 등 틈틈이 소리를 주고 받으며 연습했다.
애초 창작 판소리로 언론판을 패러디하자는 제안에 대해 흥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유씨와 지씨의 능청맞은 소리 청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한봉사는 본디 봉사가 아니라 비민주 암흑천지에 살다가 달달봉사가 되었던 것”이라는 대목부터 아니리로 풀어갔다. 한봉사가 살던 80년대 상황을 자진모리로 풍자한 뒤 “그때 뭣이 뭔 속인지를 알려야 할 신문들도 하나같이 놀고 자빠졌는디~”하고 냅따 소리를 질렀다.
이어 자전거와 선풍기를 들먹이며 ‘찌라시 신문’을 중중모리로 비꼰다. “요런 세상이니 사람들이 눈을 뜨고 있어도 봉사”인데, 한봉사 딸 겨레가 아버지 눈뜨게 해달라고 진양조로 기원한다. 한봉사 딸 정성에 하늘도 감복해 제비란 놈을 불러 요만한 종이뭉치를 입에 물려서 보낸다. 관객들은 유씨가 제비처럼 〈한겨레〉를 물고 딸 겨레 앞에 툭 떨어뜨리자 폭소를 터뜨렸다. 한봉사가 〈한겨레〉를 보고 눈을 번적 떴다는 소리를 듣고 전국 봉사들이 몰려들어 “그 용하다는 한겨레를 보고 덩달아서 눈뜬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유씨는 전남대 법대 재학중 국악반에서 활동했지만, 전문적 훈련을 받지 않아 소리의 기둥이 서 있지 않은 아마추어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던 중 2003년 10월 광주엠비시 〈신얼씨구 학당〉 국악 프로그램에 객석 ‘분위기 메이커’로 출연하며 방송과 첫 인연을 맺었다. 녹화 도중 걸쭉한 입담이 눈에 띄면서 현장 소리판을 찾아 다니는 코너를 맡다가 2004년 11월부터 정식 진행자로 발탁됐다. 유씨는 “〈한겨레〉 행사라 솔직히 부담이 돼 한나절을 고민하다가 퍼뜩 심봉사 눈뜨는 대목이 생각났다”며 “소리를 편안하게 전달하고 국악으로 개그를 해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얼씨구 학당〉 공동 진행자인 지씨는 전문 광대다. 여상에서 우등생이었던 지씨는 ‘전교조 운동’을 만나면서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다. 학교에서 추천한 자리를 마다고 양말공장에 입사해 노조를 결성하다가 해고됐다. 해고자 싸움을 하면서 놀이패 ‘신명’이라는 물을 만나 〈일어서는 사람들〉 〈꽃등 들어 님오시면〉 등 20여 편의 마당극에 출연했다. 최근 광주엠비시 라디오 〈말바우 아짐〉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찐득찐득한’사투리로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지씨는 “한겨레 행사장에 흐르던 주주와 독자의 기가 전달돼 짜릿한 느낌이 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출연료 일부를 제2창간위 발전기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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