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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15 18:57 수정 : 2005.07.15 18:58

류동환 독자의 이색제안

14년전 한겨레 배달하면서
한 독자에게 받은 설날 선물
양말 두 켤레…
우리도 올 추석 ‘감동’줍시다

“여기 모인 주주·독자들이 앞장서 〈한겨레〉 배달사고를 냅시다.”

7월7일 광주전남 한겨레의 날, 판소리와 정태춘씨의 열창으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5·18기념문화회관의 800여 참석자 앞에서 누군가 주주와 독자를 향해 ‘대담한 제안’을 했다.

1991년 서울 노량진 한겨레신문 지국에서 8개월간 배달을 했던 류동환(광산구 산월동)씨가 14년 전의 경험을 들추어냈다. 류씨는 당시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벌이를 해야 했는데, 숙식을 해결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신문 지국이었다.

류씨는 “다른 신문 지국 급여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고민 끝에 〈한겨레〉를 선택했다”며 “아침마다 진실을 알리는 신문을 배달해서 역사를 발전시키는 데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18살로 세상을 잘 알지 못했지만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만든 신문을 배달하는 것이 비록 급여가 적더라도 정의롭고 당당한 일이라고 여겨 “버텼다”고 류씨는 술회했다.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고 눈이 덮이면 배달자전거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류씨는 당시 차비가 없어 광주로 귀성하지 못하고 설 연휴에 신문 배달을 하며 겪은 일을 소개했다. 류씨는 평소처럼 흑석동 한 주택에 신문을 돌리다가 대문에 걸린 메모를 보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새벽에 배달하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작은 정성입니다.”라는 메모 아래 봉투에 양말 두 켤레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물 흘리며 〈한겨레〉를 보는 그 독자의 정성에 너무 감격했지만, 내가 이분에게 은혜를 갚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독자처럼 나도 사회에 뭔가 해줄 수 있을 때 나도 베풀자고 생각했다”고 류씨는 당시의 다짐을 술회했다.

류씨는 이날 행사에 모인 독자들에게 호소했다. “한겨레 보는 모든 독자들이 오는 추석과 설날에 이런 정성을 베풀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이 전국적 배달사고가 나고 이 소식이 방송으로 보도된다면 얼마나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 일이 되겠습니까.”


류씨의 제안은 이어졌다. “한겨레 보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한겨레 독자이고 주주라는 것을 알려줍시다. 〈한겨레〉를 매개체로 서로 신뢰하고 공감하면 이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겨레〉가 펼쳐져 있는 식당에 가면 더 비싼 메뉴를 주문합시다. 〈한겨레〉가 놓여 있는 옷가게에 가서는 옷값을 깎지 맙시다.”

류씨는 〈한겨레〉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한겨레 공동체를 만들자고 말했다. “한겨레를 보는 사람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신뢰의 징표가 되어, 한겨레를 보는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한겨레 주주와 독자들 사이에서 먼저 확산되고 실천되었으면 합니다.”

류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800여 청중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광주/구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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