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0 17:42
수정 : 2005.01.20 17:42
얼마나 많은 언론인들이 언론윤리로부터 자유로울지 모르겠다. 2000년 이후에만 보더라도 언론윤리에 어긋난 사건들이 숱하게 일어났다. 벤처붐 뒤에는 언론의 조직적인 주가조작이 있었다. 갖은 수법을 써서 지면을 통해 주가를 띄웠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밀었다. 그들에게 상당한 거액이 흘러갔다는 사실이 부분적이지만 나중에 드러났다.
기자실을 중심으로 하는 촌지관행은 사라졌다. 하지만 명절에 돌리는 선물이 아주 없어졌을까 싶다. 할리우드 영화 소개가 신문 한 면을 뒤덮는다. 미국여행을 공짜로 즐긴 대가이다.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언론인들. 얼마나 제돈 내고 치는지 모르겠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접대-향응에 대한 용인도가 높다. 그 까닭에 기자사회도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게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문화방송〉이 부적절한 술자리로 진통을 겪고 있다. 언론비평 프로그램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진행자, 보도국장 그리고 이상호 기자가 취재원이 마련한 술자리를 즐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고급 핸드백을 덤으로 얹어서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에스비에스〉가 물 캠페인을 벌이는데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고발한 바 있다. 에스비에스의 대주주인 태영의 사업이익과 연관이 있지 않으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고발대상인 태영의 부회장이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마침 보도국장과 진행자와 학연이 닿아 성사가 어렵잖았던 것 같다. 거기에 이 기자가 불려나갔다. 잘 봐달라는 자리에 말이다.
이상호 기자는 그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가 양심의 아픔을 홈페이지에 담아냈는데 그것이 언론에 알려져 일파가 만파로 번졌다. 특히 수구-족벌신문들은 “너 잘 걸렸다”며 뭇매질을 했다. 제작진 한두 명의 처신을 갖고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먹칠하느라 신이 났었다. 이참에 아예 없애라는 투였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한나라당까지 끌어들여 문화방송의 지주회사격인 방송문화진흥회를 상대로 따질 것이라고 한다. 언론윤리의 문제에 정치권의 개입을 부르니 가관이다.
형식을 떠나서 이것은 내부고발이고 양심고백이다. 그런데 그의 용기와 양심에 대한 칭찬은 없고 폄훼만 늘어놓는다. 이 기자의 말을 빌리면 두 선배들이 술자리를 갖자고 두 차례나 제안했으나 뿌리쳤다고 한다.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마시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단순한 합석의 의미도 무시한다. 선물을 돌려주었다는데 그 시점만 따진다. 그 핸드백은 뇌물성이 짙다. 그렇다면 왜 증뢰자의 부도덕성에는 눈을 감고 수뢰자만 질타하나? 언론비평 프로그램이니 도덕적 우월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문화방송은 발빠르게 관련자들에게 대기발령을 냈다. 노조위원장이 참회의 단식을 했다. 내부에게는 자성을 촉구하고 시청자에게는 사과하기 위한 자세였다. 이어서 인사위원회가 관련자 3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노사합동 윤리위원회에서 건의한 내용 그대로다. 그리고 9시 뉴스 말미에 두 차례나 시청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유사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어느 언론사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이것은 문화방송 조직의 건강성-건전성을 말하는 것이다.
비바람이 불더라도 언론비평 프로그램은 지켜야 한다. 이럴수록 편파-왜곡보도에 대한 공영방송 문화방송의 역할이 크다. 권력화한 언론에 대한 감시-견제는 언론의 몫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언론자정-언론개혁의 기폭제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 많은 시청자들이 이상호 기자의 남다른 감투정신-고발정신을 사랑한다. 주위의 시선이 따갑더라도 평상심을 잃지 말길 바란다. 그에게 돌을 던진 매체라면 남의 얼굴을 비춘 그 거울에 일그러진 제 모습도 비춰보라.
김영호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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