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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09 11:37 수정 : 2005.07.13 05:17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원 노출과 관련해 증언을 거부해 수감 명령을 받은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기자가 6일 경찰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라면?’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누설 사건 ‘리크 게이트’와 관련해,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6일(현지시각) 구속수감되면서 드는 생각이다.

밀러 기자는 “기자가 취재원과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를 받지 못하면 자기역할을 할 수도 없고, 자유언론도 없다”며 “가장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는 정부가 밝히기 원치 않는 정보를 보도하는 자유로운 언론이 있는 사회”라고 말했지만, 끝내 구속을 면치 못했다.

최근 일본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나왔다.

<연합뉴스> 보도를 보면, 도쿄고법은 7일 히라사와 가쓰에이 중의원이 파친코 업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주간지 <주간신조>의 보도와 관련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히라사와 의원에게 300만엔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주간신조에 명령했다. 재판장은 “출판사 쪽이 정보의 입수처를 밝히지 않는 만큼 기사의 진실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취재원을 비밀로 함으로써 진실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을 면하는 것은 (원고의) 반증 기회를 빼앗게 되는 만큼 허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취재원 보호’ 관련 법조항 없는 한국




그러나 한국에서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은 기자가 구속된 적도, 해당 언론사가 손해배상금을 문 적도 없다. 또, 이와 관련한 법규정도 없다. 과거 언론기본법에 취재원 보호를 위한 기자의 진술거부권과 편집공간에 대한 압수수색 금지 조항 등이 있었지만, 일부 악법조항이 문제가 돼 지난 1987년 법이 폐지되면서 이들 조항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은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7조)의 선언적 자율규정만 있을 뿐이다.

민사소송법 315조에서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를 밝히고 있지만, ‘변호사·변리사·공증인·공인회계사·세무사·의료인·약사, 그 밖에 법령에 따라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는 직책 또는 종교의 직책에 있거나 이러한 직책에 있었던 사람이 직무상 비밀에 속하는 사항에 대하여 신문을 받을 때’로만 명시해, 기자를 제외하고 있다.

다만, 같은 조에서 ‘기술 또는 직업의 비밀에 속하는 사항에 대하여 신문을 받을 때’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어, 기자도 간접적으로나마 이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명시적이지 않은 데다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부분으로, 기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많은 형편이다.

미국 31개 주에 ‘방패법’…국가안보 관련 경우 등 빼면 취재원 안밝혀도 돼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기자의 취재원 보호와 관련한 법률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밀러 기자가 구속되기는 했지만, 미국은 현재 31개 주에서 기자의 취재원 보호권을 규정한 일명 ‘방패법’이 제정돼 있다. 이 법은 국가안보 등과 관련한 경우를 빼면 기자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있다. 밀러 기자의 경우 중앙정보국 비밀요원의 신분누설이 연방법 위반인데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취재원 보호 조항을 적용받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1975년 연방 형사소송법에 제보자에 대한 기자의 증언 거부권을 인정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한국에서는 취재원 보호와 관련한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논란이 거듭돼왔다.

지난해 8월 <동아일보>의 ‘중국 외교부 우다웨이 아시아담당 부부장 극비방한’ 보도 등에 대한 국정원 통화내역조회 의혹, 2003년 10월 <한겨레> 기자 통화기록 조회, 같은해 2월 <국민일보> 기자 통화기록 조회 등 때도 취재원 보호와 통신비밀보호법상 국가안전보장의 ‘위해’ 범위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앞서 97년에는 삼성자동차가 국내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내부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서울지검이 해당 기사를 보도한 <서울경제> 기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부르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서울경제 쪽은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한국, 일 생기면 ‘그때그때 달라요’

최근 사례로는, 지난 2003년 8월 의 양길승 청와대 부속실장 몰래카메라 사건과 관련해, 청주지검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SBS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한 경우가 있다. 당시 검찰은 기자 등이 출입을 가로막는 바람에 합법적인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지 못했지만, 추가조처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논란이 그리 흔치 않은 건 해당기관들이 알아서 ‘취재원 색출’에 나서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각 기관이나 기업 등의 비리 문제가 기사화되는 경우, 해당기관에서는 곧바로 ‘취재원 색출’에 들어가 놀라운 솜씨로 취재원을 집어낸다. 이러다보니, 취재원이 밝혀져 기자가 해당 취재원에 대한 구명작전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에는 취재원 보호 조항이 없는 대신 기자에 대한 처벌은 현행법으도로 가능하다.

밀러 기자의 경우처럼 법정에 나가 증언을 거부하면 구속되지는 않지만, 기자라는 신분과 상관없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민사소송법 318조 등). 아예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면 7일 이내의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 법원은 기자의 입과 취재수첩에 대한 ‘대접’을 달리하고 있다. 언론관련 전문 양재규 변호사는 “기자가 소송에서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형법상의 죄로 보지 않는 게 법원의 판례태도지만 관련 취재수첩이나 테이프 등을 파기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자 통화내역까지 마구 조회…법규정 절실

특히, 기자나 언론사가 피고가 되는 명예훼손 소송의 경우 사정은 많이 달라진다. 양 변호사는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며 “패소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취재원을 보호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익명성에 따른 취재원 보호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국가의 안전보장 등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기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진실보도를 할 수 있도록 신문법 등에 관련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도 “한국에서는 기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 등 취재원 보호와 거꾸로 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중대한 범죄행위 등이 아니라면 법정에서 증언거부 등을 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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