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4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탐사기자·에디터 총회의 시상식에서도 컴퓨터를 활용한 보도들이 주요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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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탐사보도> ① 탐사팀과 기자들
②‘리서처’가 함께 뛴다
③ 컴퓨터 활용 취재 각종 기록 공개·축적 활발…컴퓨터활용 비중 커져
“더 중요한건 기자 근성”…상당수 전통 방식 고수 미국에서 컴퓨터 활용 보도(CAR)는 탐사보도에서 하나의 큰 흐름이었다. 지난 6월2~5일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미국 탐사기자·에디터(IRE) 총회에서도 컴퓨터 활용 취재의 높은 비중은 잘 드러났다. 이번 탐사기자·에디터 총회는 간소한 공식 행사와 함께 131개의 작은 패널(사례 발표회)로 이뤄졌다. 첫날 39개의 패널이 열렸는데, 이 가운데 29개 패널이 엑셀, 액세스, 자료(디비) 분석, 지리정보시스템(GIS), 사회연결망분석(SNA) 등 컴퓨터 활용 보도와 관련한 것이었다. 셋쨋날인 4일 열린 시상식에서도 탐사보도에서 컴퓨터 활용 보도가 갖는 의미는 특별했다. 대형 신문 부문(50만부 이상)에서 탐사보도 상을 받은 <뉴욕 타임스>의 ‘철로 위의 죽음’ 기사는 “세련된 컴퓨터 분석과 좋은 옛 보도 방식을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철도 건널목 사고 기록을 바탕으로 현장 취재를 벌여 “철도회사들이 치명적 사고들을 보고하지 않고, 위험한 조건들을 바로잡는 데 게을리했으며, 심지어 치명적 사고의 증거를 없애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중대형 신문 부문(25~50만부)의 상을 받은 <마이애미 헤럴드>도 ‘유예된 정의’라는 기사에서 범죄기록을 컴퓨터로 분석해 초범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플로리다의 ‘유죄선고 유예’ 관행이 1만7천여명의 재범 이상에게 적용됐으며,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은 유예를 받아낸 사실을 폭로했다. 중형 신문 부문(10~25만부) 상을 받은 <샬럿 옵저버> 역시 ‘음주운전, 멀쩡한 무죄방면’이라는 기사에서 “법원과 주 정부의 음주 측정 기록을 분석해 기자와 자료 전문가가 망가진 사법제도의 초상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 이런 컴퓨터 활용 보도를 하려 한다면 가장 어려운 점은 정보의 공개와 축적이다. 미국의 경우 언론사들이 음주 운전·성 범죄 등 주요 범죄 기록이나 자동차 등록·학교 입학 등 기록을 공공기관에서 제공받은 뒤 데이타베이스로 만들어 보유하며, 이를 분석해 활용한다. 특히 성 범죄자의 경우는 그들의 개인 신상 기록이 합법적으로 공개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각종 공공 기록의 공개가 쉽지 않고 공개되더라도 언론사들이 이를 데이타베이스화해 보유·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미국 언론계에서도 컴퓨터 활용 보도는 아직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 타임스>의 정보·기술 부에디터인 스티븐 밀러는 “탐사보도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 컴퓨터 활용이라고 보지만, <뉴욕 타임스>의 대부분 기자들이 컴퓨터 활용의 신병 훈련소(초급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다”며, “<뉴욕 타임스>는 미국 최고의 경력 기자들을 뽑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이런 새 기법을 가르치는 과정도 없다”고 말했다. 컴퓨터 활용 보도의 많은 기법은 아직 미국에서도 생소하다. 30만부 정도를 찍는 중대형 신문사인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에는 지리정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기자가 단 1명뿐이다. 브랜트 휴스턴 미국 탐사기자·에디터 협회 사무총장은 “신문 쇠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컴퓨터 활용 보도가 유력한 방안이지만, 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언론이 이런 새로운 경향에 둔감하고 뒤처져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으로 미국의 언론인들은 컴퓨터 활용 보도를 만능으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함께 보였다. 콜롬비아시 미주리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의 데이비드 허조그 교수는 “컴퓨터 활용은 탐사보도의 출발점이며, 본격적인 취재는 컴퓨터 활용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탐사기자인 제임스 그리말디도 “컴퓨터 활용도 중요하지만 결국 좋은 탐사보도는 기자의 호기심과 포기하지 않는 정신, 끈질김, 깊이 파기 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직 적지 않은 미국의 기자들은 탐사보도를 하면서 아주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베트남 전쟁 때 ‘미라이 학살’ 보도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탐사기자 가운데 한 명이 된 세이무어 허시는 컴퓨터를 단지 타자기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내 컴퓨터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번에 출판되는 책을 위해서 32명을 인터뷰했고 그 내용을 9권의 공책에 적었으며, 나머지는 내 머리 속에 있다. 컴퓨터는 위험하다. CIA가 들이닥칠 수도 있고, 해커가 침입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지 부시는 사적인 그룹을 이용하는데, 그들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청문회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취재하는 데 컴퓨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덴버 콜롬비아 워싱턴/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이 기사 취재는 한국언론재단 ‘탐사보도 연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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