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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2 17:15 수정 : 2005.06.02 17:15

지난 달 30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8차 세계신문협회 총회 개막식에 세계 40개국의 1500명 언론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세계신문협 총회 결산

신문법 폄하·창덕궁연회 논란속 세계신문협 총회 폐막
“발행부수 증가로 새 기회 도래” 주장 최대 논점으로
하락세 와만 의미있지만 “여전히 위기” 반론 많아

신문, 과연 ‘르네상스’인가?

지난 1일 세계신문협회 제58차 총회가 4일간의 일정을 끝냈다. 그러나 총회가 남긴 뜨거운 논란과 궁금증은 계속되고 있다. 30일 개막식에서 나온 개빈 오라일리 회장의 신문법 폄하 발언은 ‘무지와 왜곡의 소산’이라는 비판과 언론단체와의 충돌에 봉착했고, 1일 창덕궁에서 열린 환송 연회를 두고서는 문화재 보호 취지를 외면한 ‘특권의 남용’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신문산업의 진로와 관련해서도, 세계신문협회가 내놓은 ‘신문 르네상스’론을 둘러싸고 여러 각도에서 의문과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신문협회는 2004년 세계신문의 발행부수가 늘어난 것을 신문 르네상스의 근거로 들었다. 티모시 볼딩 사무총장은 ‘2004 세계신문산업 동향 보고’를 통해 2004년 세계 신문 발행부수는 2003년보다 2.1% 늘어난 3억9549만4000여부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2003년 발행부수가 전년보다 0.12% 감소했던 데서 반전된 것이다. 신문 광고수익도 5.3%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너무 성급한 추론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성장의 내용이다. 세계 전체로 부수가 늘긴 했지만, 대부분 개발도상국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실제 나라별로 보면, 인디아 58%, 중국 3.73% 등 개도국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성숙시장의 사례는 0.04% 증가한 일본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미국은 1.01%가 줄었다. 대륙별로 봐도 성숙시장으로 평가되는 유럽과 북미는 각각 1.4%, 0.2% 감소했다. 방정배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 인디아 같은 나라야 아직 새로운 독자 개발의 여지가 크지만, 서구와 한국 같은 성숙시장에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수 증가 자체도 거품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디아 <힌두스탄 타임스>의 비르 상비 편집국장은 “지난 10년 동안 시장은 커졌지만, 품질은 성장하지 못했다”며 “가격이 싸고 지면이 적으며 홍보로 사용되는 신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서구의 경우에도, 전체 부수의 급격한 하락이 저지된 것은 무가지가 급증했기 때문이며, 신문시장의 양적 축소를 질적 저하가 대체한 것일 뿐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김영욱 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은 ‘르네상스’론의 제기를 일종의 ‘목적형 낙관주의’라고 풀이했다. “신문 발행인들이 모여서 서로 어깨를 두드려주는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다만 성숙시장에서도 애초 우려했듯이 일관되게 급격한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건 의미가 있다”고 봤다. “시원한 위기 타결책은 없었다. 그러나 신문 주도의 인터넷 활용과 콤팩트 판형 개발, 독자 요구에 대한 정밀한 분석 등 신문산업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대응이 소개되고 모색된 것은 맞다.” 거기까지일 뿐, ‘르네상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이른 ‘르네상스 도래’론으로부터 신문사주와 발행인들의 모임인 세계신문협회의 태생적 한계를 이끌어내는 견해도 있다. 개별 발행인의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위기의 구조적 성격과 해법을 찾아내기 보다는 개별 기업 차원의 혁신 경쟁에만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정배 교수는 “일부 성공하는 매체도 나오겠지만,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는 소수의 사례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으론 특히 한국 현실에 별다른 시사점을 주기 어렵다. 한국신문의 위기는 신뢰저하와 정체성 혼란, 공정경쟁의 부재 등이 겹쳐있어, 개개 기업 차원의 혁신 못지 않게 전반적인 매체환경과 관행의 개혁 또한 요구되기 때문이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오라일리 회장의 ‘신문법’ 발언과 이를 이용한 보수신문들의 행태 또한 사주와 발행인의 관점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총회는 ‘그들만의 르네상스’를 구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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