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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2 17:13 수정 : 2005.06.02 17:13

최근 <기자협회보>에 ‘이인용 전무께’라는 글을 실었다. <문화방송> 앵커에서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옮긴 소회가 어떤지, 삼성은 요즘 왜 이렇게 ‘기자사냥’에 열올리는지 묻는 공개서한이었다. 아직까지 별다른 대꾸가 없다.

앵커의 재벌 행은 분명 개인의 선택인 동시에 공적인 사안이다. 따라서 학계뿐 아니라 최소한 기자라는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일종의 논쟁거리를 던져 본 것인데, 기자사회에도 별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다. 모두 피해가고 침묵을 지키는 묘한 분위기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질의에 응대한 기자가 있었다. 이상호. <오마이뉴스> 등으로 인터넷에 퍼진 그의 글은 내 것보다 훨씬 더 날이 서 있다.

“순금으로 테를 엮고 수표다발로 촘촘히 짠 파리채로 언론사마다 기자 사냥을 벌인다”라고 가차없이 까발린다. 고발 전문 기자다운 씩씩한 말투가 계속된다. “엊그제까지 공영방송의 앵커였던 보도국 간부”가 “하루아침에 삼성의 대변인으로 옮겨”간 것, “MBC의 ‘간판’을 떼어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연단 받침대로 끌어간 것,” 그리고 “MBC의 기자사회는 자본의 태풍에 간판이 날아갔는데도 놀랍도록 침착”한 것을 자근자근 씹는다.

선후배 관계를 개의치 않고 심문한다. 자기가 속한 회사조차 눈치 보지 않고 질타한다. 몇 군데 우스꽝스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투는 전혀 풍자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냉소적이지도 않다. 얼음처럼 차게 들리지만, 막상 그의 말투에서는 폭발 직전의 강렬함이 감지된다.

‘삼성의 나라’가 얼마나 컸는지 재계와 정계, 학계, 문화계, 스포츠계를 망라해 짚어본 <조선일보>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과는 전혀 다르다. 삼성의 무게를 재던 양 부장의 경우, “막가는 운동권 학생 정도나 삼성에 한번 덤벼볼 수 있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로 흐지부지 결론 맺어버린다. 이런 허무는 현실에 아무 위협이 안 된다. 냉소는 오히려 현실을 승인한다.

반면 이 기자는 “국가 검찰권을 금권으로 장악해 세 차례의 대선 비자금 수사의 포화를 유유히 뚫고 진격해온 삼성,” “자본 독재의 육군사관학교이자 국정홍보처인 <중앙일보>”를 철저하게 고발한다. “의심하지 않는 그대에게 내일은 없다”며 무기력한 우리의 의식까지 단호하게 벤다. 경험에서 체득한 듯한 자본론으로 우리를 선동한다.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다. 대체 뭘 믿고 목소리 높이는지 궁금하다. 이 젊은 기자가 이렇듯 자본, 자본의 체제하 “부패한 언론과 알아서 기는 검찰”에 분노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가? 누가 ‘자본독재의 바벨탑’이라는 처연한 예언을 그의 입에서 내뱉게 했을까?


‘구찌 핸드백’ 사건 직후 남긴, “일생일대의 시험과 나는 맞서게 될 것이다”라는 그의 예전 글이 떠오른다. “자본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강조했고, 자본을 경계하고 시장을 감시하는 게 자신의 숙명이 될 거라 했던 것 같다.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 일,” 이를 위해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걸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민한 우리는 이제 뭔가 낌새를 챈다. 뭔가가 있다. 모호한 암시로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시대의 좌판에 던져야 할 주사위가 뭐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히 말하라. 현실의 어디가 문제인가? 뉘앙스 게임은 짚어치우고, 적확한 저널리즘으로 폭로하라. 기자는 기사로 소통하는 일꾼. 카메라 앞에 예전처럼 진지한 얼굴을 내밀고 보도하는 게 사회에 대한 예의다. 그렇게 “담대하게 운명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그의 기자됨을 새로이 평가할 것이다. ‘구찌 백’ 스캔들의 오명과 치욕은 양심 고백이 아닌, 진실 선언으로 떨칠 수 있다.

문화방송도 이 기자에게 명예회복의 시간을 줘야 한다. 더 이상 그를 게토에 가두어두지 말라.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진실 대면의 기회다. 말의 해방이다. 기자와 방송사는 최선을 다해 사태에 대해 보도하고, 시청자는 자율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 언론, 여론의 규칙이다. 보통사람의 알 권리를 위해, 이 기자 나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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