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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26 16:39 수정 : 2005.05.26 16:39

전신의 아버지 사무엘 모르스는 통신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미래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 확신을 설파했다. 그는 더 빠른 통신이 더 좋은 세상을 창조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1964년 출간된 마셜 맥루헌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보다 100년도 훨씬 전인 1838년 사무엘 모르스는 의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전자기식 전신을 통해 인공 신경체계를 창조함으로써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식을 사고와 같은 속도로 전파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전신기술의 발달이 미국을 하나의 이웃으로 만든다는 확신이었다. 실제 그는 공간개념을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통신기술의 발달 속도는 광속을 닮았는지 동시대인도 따라가기 숨차다. 지난 10년간의 발달은 지난 100년간의 그것을 능가하고도 남는다. 안방을 뛰쳐나온 전화는 그 이동성이 인간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바꿔 놓으면서 인간두뇌와 연결되는 신경체계로 자리잡았다. 그것과 잠시만 떨어져도 외부세계와 단절감을 느낀다. 그것은 음성통화-문자교신-영상수신-촬영기능-결제기능에 이어 이제는 티브이(TV)화면까지 내장한다. 인터넷은 ‘종이 없는 세상’으로 지구촌을 더 가깝게 만들며 인간의 감정마저 전이한다. 디지털 시대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혁명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그 변화의 물결에 앞장서 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 세계 2위의 휴대전화 생산국, 따위가 그것을 말한다. 세계 최초로 ‘손안에 든 티브이(TV)’인 디엠비가 전파를 쏜다. 한국형 휴대인터넷인 와이브를 내년에는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자동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즐기고 TV를 보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통신과 방송이 혼재하여 어디까지가 방송이고 통신인지 모르겠다. 이른바 방송-통신 융합 시대다.

10여년째 끌어오는 방송-통신 통합기구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 알려진 바로는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아래 정보통신부, 방송위원회, 문화관광부, 산업자원부가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방송위원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통신부가 아이티(IT)성장에 힘입어 논의의 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선점한 느낌이다. 여기에 문화관광부는 방송 정책권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방송 중간광고 허용, 외주 전문채널 설립 따위를 흘리는 데서 그 속내를 알 만하다. 논의구조를 대통령 직속으로 격상하고 시민참여도 허용하라.

지금 같은 정부내의 역학구도에서 방송-통신융합위원회가 태어난다면 방송위가 지닌 역할과 기능은 소멸되지 않을까 싶다. 자본-기술-시장논리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정통부와 방송위의 대등한 통합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인력규모에서도 정통부가 방송위보다 10대1로 우세하다. 정통부는 그대로 남고 문화부가 방송정책권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방송위에는 규제기능만 남기고 그것을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통합하여 국무총리 산하에 둘 가능성도 있다. 설혹 정통부와 방송위가 통합한다고 하더라도 산업논리에 휘말려 방송은 존재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동력자원부가 몇 차례 정부조직 개편을 거치면서 석유자원과로 전락한 것처럼 말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한다지만 방송은 방송이고 통신은 통신이다. 통신은 방송이라는 내용을 실어 나르는 그릇일 뿐이다. 방송은 철학과 가치의 문제이고 통신은 효용과 수익의 문제다. 지금 나도는 구상대로라면 차라리 방송위원회를 개혁해서 그냥 두는 게 낫다.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다. 통신사업자의 외국인 지분이 높아지는 현실도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외국자본의 간접적인 방송지배를 막기 위해서도 현행대로 가는 게 해답일 수 있다.

여기서 신학자 자크 엘울의 말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 “모든 기술발달은 대가를 요구한다. 기술발달은 그 자체만으로는 도덕적 가치가 없고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은 미래에 대해 맹목적이어서 인간에게 유익한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는다.

김영호/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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