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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1 17:25 수정 : 2005.03.01 17:25

중앙일보 1일치 이장규 칼럼 ‘MBC·KBS, 그리고 한겨레’.



[이장규칼럼에 답하며] “부끄러움을 가르쳐드립니다”

<중앙일보> 3월1일치 이장규 칼럼 ‘MBC·KBS, 그리고 한겨레’는 이를 읽는 한겨레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글이 정곡을 찔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겨레와 관련한 대목은 사실관계에서 부정확하고, 관점에서 자기중심적이며, 태도에서 몰염치하다. 문장 한줄 한줄마다 반박해야 하는 게 참으로 민망하다. 반론은 원본 텍스트의 수준과 품질을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탓이다. 글쓴이가 각별히 한겨레 관련 대목만 부실하고 불량하게 쓴 게 아니라면 MBC, KBS 사람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한겨레가 MBC, KBS와 더불어 글의 도마 위에 오른 사정은 칼럼 세번째 단락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강으로 치면 여울도 있고 소도 있는 자연하천이 아니라, 서울 도심을 통과하는 한강처럼 콘크리트로 둔치를 둘러친 직강하천이다. 운치 있는 글맛이 신문 칼럼의 유일한 미덕은 아닐 테니 굳이 시비삼을 일은 아니다. 다만 명색이 국내 1, 2위를 다투는 신문의 편집국장 출신에 ‘경제전문 대기자’라는 이가 쓴 글이기에 좀더 품위와 기교가 있었으면 하는 뒷맛은 남는다.

‘MBC·KBS, 그리고 한겨레’의 유사점 6가지


글쓴이는 이 세 언론기관의 유사점을 무려 여섯가지나 꼽았다. 첫째가 주인없는 기업이고, 둘째는 막강한 노조가 경영과 제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셋째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고, 넷째는 경영실적이 최근 부쩍 나빠졌고, 다섯째는 구조조정에 가장 소극적이며, 여섯째가 친정부 언론이라고 한다. 글쓴이는 여섯가지 유사점을 병렬적으로 나열했지만, 이들 사이에는 서사적인 상관관계의 낌새가 감지된다. 노무현 정부 덕분에 노조가 주인없는 기업을 장악해 철밥통을 지키며 친정부적인 보도만 하다보니 어느새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읽었다면 심독일까 오독일까.

어쨌든 이쯤 되면 이 칼럼을 읽은 독자들에게 이들 매체는 유전자 배열이 일치하는 세 쌍둥이 쯤으로 비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태생이 제가끔인 이들 매체에서 이렇게 많은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건 뭔가 수상쩍다. 유전자 감식에 실수는 없었는지 의심해봄 직하다.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17일 저녁 청와대에서 재외공관장회의 참석하려고 귀국한 홍석현 주미대사(중앙일보 전 회장)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


6만여 국민주주 한겨레가 ‘주인없는 기업’…국민은 안중에 없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한겨레부터 짚어보자. 한겨레는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라 6만 소액주주와 사원주주가 주인인 기업이다. 1인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이라는 표현을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입말투로 하다보니 그리 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노조가 막강해서 경영과 제작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는데, 한겨레 노조는 내부로부터 ‘구사대’라는 짓궂은 농담을 들을 만큼 ‘허약’하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새 집행부를 꾸리는 일도 벅찼다. 글쓴이가 무노조 삼성의 기업문화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착시현상을 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싶다.

경영실적이 최근 부쩍 나빠졌다는 건 드물게 맞는 사실관계다. 하지만 그게 한겨레만의 현상인지, 또 그 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뒤에 자세히 밝히겠다. 다만 책임이 노조에 있지 않다는 것만큼은 미리 못박아둔다. 지난 연말 한겨레는 전에 없는 조직개혁작업을 단행했고, 그 일을 노조가 주도했다는 건 ‘노조 책임론’뿐 아니라 글쓴이가 든 ‘유사점’ 대부분을 한꺼번에 반박할 수 있는 사실관계다.

한겨레가 친정부 언론이란 지적은 전혀 낯선 지적만은 아니다. 하지만 한겨레 논조의 척도는 정부에 있지 않고 한겨레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사회상에 있음을, ‘한겨레=친정부 언론’의 등식을 앞장서 만든 이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한 뒤 뜬금없이 ‘비판언론’을 자처하고 나온 일부 언론임을 분명히 해둔다. 자칭 ‘비판언론’의 행태는 ‘친정부’도 아닌, 정치권력과 스크럼을 짠 언론이었음을, 글쓴이의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 있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뒤에 짧게 언급하겠다.

글쓴이는 한겨레가 ‘자존심 상해가며’ 정태기 대표이사 후보를 다시 모셔왔고, 그의 취임과 함께 편집국장 직선제도 폐지됐다고 썼다. 제 아무리 고상한 이념을 추구해도 적자경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라는 점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한겨레는 치열한 대표이사 경선을 통해 정 대표이사 후보를 뽑았고, 그 일로 자존심을 구길만큼 성격 이상도 아니다. 대표이사 선거 전에 이미 사내투표를 거쳐 편집국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정 후보를 선출하면서 고상한 이념을 포기한 적도 없다. 한겨레 구성원들보다는 정 후보가 먼저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걸어야 할 인신공격성 모욕이다.

MBC, KBS 변화는 “땡전방송을 반성한 방송민주화의 결실”

▲ 지난 99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서울 서초동 검찰청에 소환될 당시, 중앙일보 기자들과 직원들이 뒤쪽에 도열해 있는 모습. 김진수 기자
한겨레의 쌍둥이 형제로 취급한 MBC, KBS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형제를 위한 변명’으로 보고 싶다면, 그건 글쓴이의 자유다. 방송노조가 막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서 막강해진 게 아니라,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처절한 방송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막강해진 것이다. 방송노조는 그 시절 정권에서 내려보낸 대표이사를 ‘갈아치웠다’. 최문순 MBC 새 대표이사는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투옥과 해직의 고통을 겪기도 했다.

정연주 KBS 사장이 구조개혁을 시도하면서 새로 출범한 노조와 마찰을 빚고 있다는 건 신문을 건성으로 읽는 독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직전 노조가 오히려 정연주 사장의 개혁을 앞서 이끌었다는 건 칼럼 필자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관계다.

지난해 KBS가 기록한 600억원대의 적자는 매우 큰 것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중앙일보도 지난해 광고매출이 2800억원대에 2350억원대로 450억원 정도 줄면서 5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그나마 출판 부문에서 60억원의 흑자를 기록해 규모가 줄었을 뿐 주력사업에서 큰 적자를 냈다. KBS의 광고수익은 6400억원대에서 6000억원대로 400억원이 줄었다. 양쪽의 매출규모까지 견줘보면 주인이 있고, 노조가 허약하고, 구조조정에 앞장서는 ‘비판언론’의 경영도 썩 나은 편은 아니다.

언론을 가르는 잣대가 친정부-반정부적?

이제 이 칼럼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몰염치한 것인지를, 역시 사실관계를 들어 살펴볼 차례다. 한겨레를 두고 ‘친정부적’이라고 비판한 중앙일보의 잣대는 무엇인가. 언론을 ‘친정부적이냐, 반정부적이냐’라는 잣대로 구분하는 중앙일보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다.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를 놓고 옳고 그름의 잣대나,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의 잣대 대신 정부의 입장과 유사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잣대를 동원하는 것은 이성적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권에 대해서는 반정부적인 언론이 정도를 걷는 언론이지만, 쿠데타세력에 맞서 집권한 민간정권에 대해서는 친정부적인 언론이 쿠데타를 옹호하는 언론에 비해 더 나은 언론이 된다.

언론의 독립성을 논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언론의 소유-지배구조다. 중앙일보는 재벌그룹 삼성을 모태로 만들어진 재벌언론이다. 중앙일보를 세운 고 홍진기씨(홍석현 회장의 부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인으로, 중앙일보의 사주 홍석현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처남-매부지간이다.

중앙일보의 사주 홍석현씨는 정부를 대표하는 ‘주미 전권대사’라고 하는 임명직 고위공무원으로 부임했고, 중앙일보 사주로서의 홍씨의 지위에는 변화가 없다.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한 중앙일보의 얼마전 일은 잊었나

▲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김충근 국민신당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일보의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 내부문건과 신문기사를 내보이고 있다. 이정용 기자
중앙일보는 조선일보 못지않은 정-언 유착보도로 비난을 받았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올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97년 12월 초 국민신당에 의해 폭로된 바 있는 중앙일보 정치부가 만든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라는 문건은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적 문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앙일보의 이 문건은 이회창 후보의 선거전략과 이미지메이킹 등에 대한 조언까지 담은 선거전략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어, 언론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했다는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중앙일보>는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12월15일 ‘대선 양자구도 압축’이라는 1면 머릿기사를 내보냈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국민신당은 이인제 후보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편파적 제목 달기'라며 중앙일보를 검찰에 고발했다.

기자협회 등 3개단체 성명 ‘중앙일보를 한나라당 기관지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중앙일보의 이회창 후보 대통령 만들기는 언론인들의 비판과 자성을 불러왔다. 15대 대선 투표일을 이틀 남겨둔 97년 12월16일 각 사의 정치부 기자 103명은 언론의 대선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공정보도를 촉구하는 우리의 뜻’이란 이 성명은 “중앙일보의 대선 보도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어느 당 어느 후보의 승패와 상관없이 ‘언론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을 갖거나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다면 더 이상 언론과 이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IPI에 보낸 중앙일보 간부의 고백 “97년대선 중앙일보는 이회창후보를 지지했다”

소속언론사를 초월한 정치부 기자들의 ‘집단행동’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당시 중앙일보의 ‘이회창 후보 대통령만들기’를 위한 보도행태는 노골적이었다. 기자협회와 언론노조, 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공동명의로 ‘중앙일보를 한나라당 기관지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이회창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음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중앙일보의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는 “중앙일보에 대한 정부의 탈세 추징과 사주 처벌이 언론탄압”이라며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보낸 편지에서 “중앙일보는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97년 12월 대선 당시 홍석현씨가 사장 겸 발행인으로 있는 중앙일보는 김대중씨에게 패배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고 김영희 대기자는 편지를 통해서 중앙일보의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신문시장 혼탁화로 공멸 이끈 장본인-중앙일보

중앙일보는 신문 시장질서를 혼탁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중앙일보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문시장을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돈 놓고 돈 먹기’ 도박판으로 만들어, 신문산업의 근본적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로 지목된다. 중앙일보는 95년 4월 석간에서 조간으로 변경하면서 섹션 발행과 가로편집 등을 통해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서 신문시장에 무한경쟁을 불러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치열한 경쟁은 96년 지국 살인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열독률을 높이고 오늘의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막대한 돈을 퍼부었다는 것은 업계의 ‘알려진 비밀’이다.

자본력의 열세를 겪는 독립언론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고사시키겠다는 중앙일보의 전략은 대대적 경품 살포를 통한 신문확장 전술에 이어 ‘구독료 할인’이라는 ‘생존게임’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앙일보는 한달 구독료를 1만4천원에서 1만원으로 낮췄다. 95년 이후 중앙일보가 만든 한계 상황을 더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가, ‘자본의 힘’이 유일한 생존조건이 되는 국면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경품 독자확장, 지국살인사건, 구독료 할인으로 ‘극한상황’만들기
“돈 없으면 먼저 나가 떨어져라” 돈놓고 돈먹기 도박판으로

중앙일보가 자본력을 앞세워 ‘돈놓고 돈먹기…판돈 떨어지면 나가떨어지기’ 도박판으로 신문시장을 재편하는 동안, 중앙일보를 비롯해 신문들은 너나 할 것없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자본의 두툼한 외투를 걸치지 못한 독립언론들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한 추위에 내몰렸다. 글쓴이가 안쓰럽게 바라보는 한겨레의 경영난의 큰 책임이 바로 글쓴이의 신문사에 있는 것이다.

글쓴이의 사실관계를 무시한 자기중심적인 글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는 칼럼을 보자.

“…노조가 득세하고 더 그래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선 높은 데 반해 밖에선 그것 때문에 한국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며 점수를 깍아버렸다. 하여간 밖에서 한국을 어찌 보고 있나가 이참에 더 분명해졌다. 다른 항목은 몰라도 노사와 교육 경쟁력이 세계 꼴찌라는 지적이 뼈아프다…특히 노조 쪽에서 본다면 IMD는 기업들의 대변자요, 노조 탄압의 구실이나 만드는 제국주의자들의 바람잡이쯤으로 여길 것이다.”

지난 칼럼 ‘기업하기 나쁜나라’도 자기중심적으로 사실관계 왜곡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연구소)의 국제경쟁력 보고서를 인용한 이 칼럼은 사실관계를 자기중심적으로 교묘히 왜곡했다. 이 조사는 기업인들의 만족도 조사로, 한국의 경우 전경련 국제경영원 교수를 지낸 ‘경쟁력평가원’ 정진호 원장이 선정한 한국인 최고경영자 400여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설문대상 가운데 노동자, 농민, 서민은 물론 정부 당국자나 정치인, 경제학자도 없었다. 말 그대로 기업가들의 만족도를 조사했으며, 그것도 내국인만을 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이 조사는 ‘밖에서 한국을 어찌 보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안에서 기업가들이 노조를 어떻게 보나’를 보여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다른 언론 동정하기에 앞서, 사주가 있고, 노조가 있으나마나 하고, 구조조정에도 앞장서는 ‘비판언론’의 대표필자다운 글쓰기를 기대해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중앙일보 3월1일자 이장규칼럼] MBC·KBS, 그리고 한겨레

최문순 MBC 사장 선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가 뽑힌 경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40대 노조위원장 출신이 선배들을 제쳤을 때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파격의 인물이 산적한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계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일반 기업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다. 부장급에서 하루아침에 사장자리에 오른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솜씨가 어떨지 모두 궁금해한다.

공교롭게도 MBC뿐 아니라 한겨레신문의 정태기 사장, 그리고 KBS의 정연주 사장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관심거리다. 현 정권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취임했던 정연주 KBS 사장은 최대의 적자로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한겨레신문 창간멤버였던 정태기 사장은 오래전에 신문을 떠났다가 구조대장의 임무를 띠고 복귀했다.

세 언론기관은 공통점을 지녔다. 우선 기업으로 치면 주인 없는 기업이다. 둘째, 노조가 막강하고 그 막강한 노조가 경영과 제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셋째,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러한 경향은 한층 심화됐다. 넷째, 경영실적은 최근 들어 부쩍 나빠졌고 다섯째, 일반기업들이 흔히 말하는 구조조정에는 가장 소극적이었다. 여섯째, 언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친정부적이었다는 점 등에서 서로 유사점을 지녀왔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언론사의 부침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적인 정부가 집권했으니 그쪽 코드에 맞는 인물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것 또한 배 아파할 일이 못 된다. 노동계 출신들이 그동안 고생만 하다가 자기네가 밀었던 인물이 대통령이 된 마당에 빛 보는 자리를 석권하는 것 또한 모두 그런 맥락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특히 세대교체가 이참에 활발히 일어나고 있어 오히려 바람직한 측면도 없지 않다. 다만 '꿩 잡는 게 매'라고 그들의 실적이 모든 걸 말해줄 것이다. 언론기관의 장으로서뿐 아니라 기업의 CEO로서 과연 어떤 수완을 발휘했는지에 대한 성적표야말로 인사의 잘잘못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연주 KBS 사장의 2년간 CEO 평점은 일단 낙제다. 경영진과 노조가 서로 적자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모든 책임은 CEO의 몫이다. 일반 기업 사장이 그렇게 적자를 냈다면 목이 열 개라도 불감당이었을 것이다. 주주들이 들고일어났어도 벌써 일어났을 것이다.

정태기 한겨레신문 사장은 최악의 상태에서 컴백했다. 조선투위 출신이면서도 원래 기업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한겨레신문 초기부터 기업으로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려 애를 썼으나 좌절을 겪고 안타깝게 떠났었던 인물이다. 적자를 거듭해온 한겨레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정 사장을 다시 모셔왔다. 새 CEO 취임과 함께 편집국장 직선제도 폐지됐다. 한겨레로선 파격적인 변화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제아무리 고상한 이념을 추구한다 해도 적자경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라는 점을 한겨레신문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최문순 MBC사장의 스타 탄생이다. 그는 여러 모로 주목거리가 될 것이다. 워낙 의외의 주인공인 데다 노조위원장 출신 사장이 노조와의 일전불사를 선언하고 나서는 바람에 그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첫 행보부터 심상치 않다.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외부인사의 영입도 파격적이다. 이런 것은 죄다 노조가 싫어하는 메뉴들이다. 더욱이 임금을 10% 삭감하고 단일호봉제를 폐지하며, 조직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했다. 노조가 득세한 조직을 상대로 개혁할 경우 첫 개혁의 대상은 바로 노조가 될 터인데도 그는 초장부터 대담하게 정면승부를 걸고 나선 것이다.

최문순 사장이 이념적으로 좌파이든 우파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장이 된 지금의 생각과 실천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만약 최 사장이 노조의 반발을 원만히 수습하면서 자신의 개혁 플랜을 심어나간다면 그는 한국 최고의 CEO로서 존경받을 것이다. MBC를 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질곡으로 빠져드는 노동운동에도 새 활로를 열어주는 시금석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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