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5 22:01
수정 : 2006.03.1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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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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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전망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온 나라가 들끓기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오는 6월 자유무역협정 1차 본협상에 앞서 지난 6일 가진 첫 예비회담이 국민들의 저지운동에 불을 붙였다. 농민과 영화인들이 조직적인 저지운동에 나선 것 외에도 각계에서 반대운동이 출범했거나 조직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정부의 자체 판단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집트 발언에서 드러난다. 그는 “어떤 이는 우리가 손해 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열기만 열면 득 본다고 하지만, 아직 협상이 안 끝났기 때문에 전부 가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협상 성사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는 “잘하면 성공하는 것이고, 문 열어놓고 제대로 대응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라면서 “하기 나름”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우리는 공개적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4대 요구 조건’을 내세운 미국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했다.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가격정책의 도입 중단,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의 예외 마련,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스크린 쿼터 축소 등이 그렇다. 본협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있는 사례다. 노 대통령은 “얼마만큼의 상품과 용역에 대해 얼마만큼의 속도로 개방하느냐는 게 결국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지만, 협상은 이미 미국 쪽의 페이스에 우리가 끌려가는 꼴로 진행되고 있다.
확고한 판단은 없이 확고한 의지만을 가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자세에 대해 이 나라 언론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나라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들춰내고 대중의 관심을 유도해 내는 일, 곧 의제 설정은 언론의 몫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신문, 방송들은 의제 설정은커녕, 사실보도조차 소홀하다. 인터넷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니기 전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소식을 만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정부의 의지만을 보도할 뿐, 분석보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자유무역협정을 자연현상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언론의 태도다.
이런 보도 태도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조선일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앞당길 것이며, 중국의 급팽창하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엉뚱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3월13일치 칼라 힐스 전 미국무역대표부 대표 부부 인터뷰 기사와 10일치 홍콩 특파원의 기사가 이런 주장을 담고 있다.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인 이집트 발언이 나오자 “대통령의 리더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관건”이라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사설까지 썼다.
대부분의 언론이 이렇게 딴전을 피우고 있는 사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산업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예를 들어 농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만, 수출 위주의 대기업에게는 득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어떤 이득을 얻는가만 부각시키면서 협상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언론은 각 부문이 받게 될 영향을 치밀히 분석하고 이것이 나라 경제와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냉정히 따져야 하는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언론과 정부, 그리고 대기업의 공동 보조로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미국의 페이스대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
hp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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