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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0 18:31 수정 : 2006.02.20 18:31

[제2창간] 한겨레 스타 ⑧ 안수찬 학술담당 기자

얼짱에 이어 동안 열풍이 한창입니다. 누구나 ‘나이보다 어려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동안’에겐 나름대로 애환이 있나 봅니다.

독자 여러분께 한겨레 기자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꼬질꼬질하고 칙칙한, 자주 씻지도 않는…’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지요? 뭐 그리 멋쟁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한겨레에도 손꼽히는 ‘동안’과 ‘얼짱’이 있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1997년 입사한 뒤 사회부-체육부-여론매체부-정치부를 거쳐 2004년부터 학술면을 담당해온 문화생활부 안수찬(35) 기자입니다. 경찰서 출입 시절에는 그를 신문배달원으로 오인한 경찰들로부터 “한겨레신문 안 본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은 ‘충격’으로 얼마 전까지 넥타이와 양복 차림을 고수했던 그의 일화는 내부에서도 꽤 유명합니다.

“어려 보이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수려한 외모가 널리 알려지게 된 건 스포츠부 시절 <안수찬의 1020 데이트>라는 칼럼을 운영하면서부터입니다. 2년차 기자였던 그에게 고정 칼럼을 맡긴다는 것은 당시에 큰 파격이어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프로야구 여자기록원, 배구만화 전문 만화가, 온라인 축구게이머, 체육시간을 좋아하는 여중생과 축구광인 고아원 청소년 등 그동안 변방에 묻혀 있던 사람들을 발굴해 재기발랄한 기사와 내용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겨레 안본다” 싫은 소리에
경찰기자때도 넥타이·양복 고수

2년차때 벌써 고정칼럼 맡아 인기끌고
탄핵땐 뉴스메일로 한나라 ‘갈기갈기’
‘함께 쓰는 역사’ 로 동북아 문제 공론화

“글 쓰는 건 내가 가진 유일한 힘
‘진보의 허브’ 만드는 데 최선 다하겠습니다”

“제게 꼭 맞는 옷이 기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을 하기에 한겨레가 최고의 직장이었고, 그만큼 혜택을 받았지만 그만큼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그는 입사 전부터 한겨레의 열혈 독자였다고 합니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기자가 됐지만 취재 자체는 힘에 부쳤다고 실토합니다. 오히려 지면의 구성이나 내용을 기획하는 일, 그리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이 그에게는 수월했으니까요.

“기자는 언제나 ‘외로운 단독자’입니다. 취재나 기사를 쓰는 일에서 기사의 반향까지 책임지는 일 모두 기자 개인의 몫이니까요.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회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과 풍부한 지적 능력을 갖추는 책임 역시 기자에게 있고요. 때문에 능력에 대한 콤플렉스는 지금까지 제가 안고 있는 무거운 짐입니다.”

잘나가던(?) 정치부 기자였던 그가 학술 담당 기자를 자원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공을 쌓아야겠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인터넷 한겨레> 뉴스메일(안수찬의 말과 길)을 써왔던 그가 2004년 3월 탄핵 이후 쓴 ‘한나라당의 최후’라는 7편의 연재글 때문입니다.

“글을 씁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므로. 글 쓰는 것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그나마도 여기에 담을 저의 지혜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괴하면서.”(한나라당의 최후 1 중에서, 2004.3.26)라고 첫머리에서 밝혔듯 그는 한나라당을 갈기갈기 씹었습니다. 그의 글은 당시 많이 회자됐고 한나라당의 개혁을 주장하던 일부에서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한나라당 주류들은 출입기자였던 그에게 ‘죽일 놈’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꼭 그것 때문에 정치부를 떠난 것은 아닙니다. ‘기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식견을 모든 사람과 나누는 직업이고, 세상과 소통해 얻는 결과물을 토대로 또다시 세상을 향해 발언하는 독특한 개인’(한나라당의 최후 3 인용)이라는 점에서 제가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었어요. 요즘 신문 외 다른 곳에 글을 쓰지 않는 것도 ‘내 안에서 무르익기 전까지 쉽게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준비기인 셈이죠.”

안 기자 스스로는 내공이 달리고 기자로서 많이 부족하다고 몸을 낮추지만, 일반적으로 기자들이 요구받는 ‘취재 잘하고 기사 잘 쓰는’ 능력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기자로서는 부족하지만,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찾아내 그들에게 지면을 내주는 일이 제게 맞아요. 작년에는 ‘한·중·일이 함께 쓰는 미래를 여는 역사’를 기획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를 공론화했고, 최근에는 ‘선진대안포럼’을 기획해 한국 사회 진보세력의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고요. 한겨레의 창간 정신에도 나와 있듯 ‘진보세력의 허브’ 역할을 하지 않으면 한겨레는 존재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그는 한겨레신문사 안에서도 늘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다지 대중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암중모색 영화제’를 여러 차례 열어 한겨레 가족들의 영화 식견을 높이는가 하면, 뜻이 맞는 후배들과 함께 ‘피스팟’이라는 사내 매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종종 묻어납니다. 그렇다고 그의 무기인 ‘동안’의 인상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니 다행이죠. 하지만, 절대로 그에게 ‘추파’를 던지지는 말아주세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여쁜 딸을 둔 유부남이니까요.

김미영/편집국 온라인뉴스부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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