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5 22:21
수정 : 2006.02.15 22:24
‘황우석 보도 문제점’ 토론회…최영재 교수, 모든 사안의 사건기사화 관행 지적
한국 언론의 사건중심 보도 관행이 주요 현안을 본질에서 멀어지게 하고 논의의 공간을 축소함으로써 저널리즘의 발전을 막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 나왔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황우석 사태와 언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한국 언론의 ‘사건뉴스 프레임(틀) 보도 관행’은 정치·외교·공공정책·과학·환경 등 어떤 사안이라도 모두 사건기사로 귀결시키는 ‘깔때기 효과’를 낳는다”며 “장기적이고 복잡한 이슈라도 단기적 사건처럼 논의 공간을 옥죔으로써 사회 현안들에 대한 보도가 사건에서 시작해 사건으로 흐지부지 끝나 버린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보도관행의 사례로서 2005년 1년 동안 <동아> <조선> <한겨레>에 보도된 황우석 관련 기사 가운데 단 1%만이 발표·사건 기사가 아닌 탐사·기획 기사였으며, 5%만 과학 기사였다는 점을 들었다. 최 교수는 또 여야 정쟁으로 치환된 사립학교법, 지역·세력 갈등으로 그려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일본 정치인의 망언과 한국의 격렬한 시위로 얼룩진 독도 문제도 사례로 인용했다.
최 교수는 이런 사건중심 보도가 관행으로 자리잡은 원인을 한국 언론의 역사에서 찾았다. “수습기자들이 경찰팀에서 훈련받는 관행이 보여주듯 신속한 사건기사 처리능력을 기자들의 전문성으로 여기는 뿌리깊은 전통이 있다. 또 이런 관행이 사회 분야뿐 아니라, 정치·경제·국제·문화 등 다른 분야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최 교수는 또 속보기사에 대한 특종상, 데스크의 관성적 요구 등도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사건중심 보도 관행이 한국 언론에 고착된 또다른 이유로 과거 권위주의적 정치권력의 언론 통제와 탄압에 따른 언론사들의 생존 전략도 꼽혔다. 최 교수는 남재일 언론재단 연구원의 논문을 인용해 “권위주의 시대 한국 언론이 사건 보도에 치중한 것은 사건 분야가 정권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었고, 대중의 극적인 관심을 일으키는 상업성도 갖췄기 때문이었다”며 “기자들의 경쟁도 진실 추구나 심층 보도가 아니라, 속보와 선정적 보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관행으로 나타난 결과로 사건의 외피만을 보도하는 형식적 객관주의를 들었다. “50년대 매카시 보도에서 나타났듯 황우석 보도에서도 기자들이 정직하지 않은 취재원의 말을 확인 없이 중계보도함으로써 객관성의 틀은 갖췄으나 총체적 오보를 쏟아놓게 됐다.” 최 교수는 사건중심 보도의 대안으로서 “기자들에게 사건기자로서의 전문성뿐 아니라 담당 분야 전문성이 필요하며, 사안의 진실을 파고드는 탐사보도가 더 강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의 경우 과학 분야의 일이고 전문성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기자나 언론사들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사건중심 보도가 워낙 오랜 관행이라서 일부 신문·방송사들이 도입해 시행 중인 전문기자제가 자리잡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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