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창간] 독자편지 2
체제수호적 삶을 택한 낀세대 보수신문에 포위되어 제 생각인 양 앵무새처럼 말하는 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서울 마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2층 로비에 들어서면 한겨레 주주들의 이름을 깨알같이 박은 동판이 진열되어 있다. 1991년 공덕동 새 사옥으로 옮긴 뒤, 새천년을 앞두고 주인들의 뜻을 되새기고자 한겨레가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다. 그것은 스스로 우리 신문의 주인이라는 자각과 더불어 미약하나마 이 나라 민주언론의 발전을 위하여 조그만 기여를 했다는 긍지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도도히 일기 시작한 참언론에 대한 갈구는 마침내 6만여 국민주주를 모아 민족의 바른 대변지 <한겨레신문>을 태동시켰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는 물론 세계 언론사상 전무후무한 상향식 신문 창간이었다. 당시 나이 40대 중반이었던 나는 너무나도 큰 대견함이 들어 서울 양평동 그 공장 자리의 신문사를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바로 옆 철공소에서 쇳조각 두드리는 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초라한 곳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곳이 바로 우리가 돈을 내어 만든 신문사인가 하는, 광화문에 우뚝 선 부자 신문들도 부럽지 않은 자부심이 가슴속을 뿌듯하게 차 올랐다. 증권·부동산은 물론 일체의 레저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다른 신문에서 볼 수 없던 정치 부문의 심층 취재나 통일 문제 기획기사가 돋보였다. 이것이야말로 한겨레를 신문답게 만들어주는 매력이었다. 한겨레와 같이 숨쉬어온 18년의 세월은 세기가 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양적·질적 변화를 이뤄 왔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서는 6·10 항쟁 승리 뒤 문민정부를 거쳐 건국 후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국민의 정부에 뒤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지각변동 과정에서 참언론을 구현한 우리 한겨레가 어느 정도 국민의 의식향상에 기여한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오늘날 아무런 식견이 없는 일부 수구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한겨레를 현정권에 영합하는 신문으로 오해하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개혁에 대해서는 언제나 기득권층의 반발이 따르기 마련인데 현정부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딴죽걸기를 일삼는 수구·부자 신문들이 톡톡 쏘는 맛이 있어 읽을 만하다는 우리들 구세대의 품평을 듣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기가 막혀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본인은 다시금 세대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정신적 시야가 트이지 못한 1940년대 출생 세대의 문제를 짚어볼까 한다.우리는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태어나 건국 후 일방적인 친미·반공 교육을 받고 성장한 세대다. 차라리 우리 앞 세대는 해방공간의 와중에서 진보 내지 민족주의 세력이 좌익으로 몰려 무참히 살육을 당했던 것을 숨죽이며 지켜본 증인들이었다. 또 우리 뒷세대는 70년대에 냉전체제가 와해되는 정세 속에서 혹독한 유신체제에 저항하면서 민주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독재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체제 수호적인 안일을 선택했던 것이 그 중간 세대였다. 그러면 우리들 구세대들이 한겨레를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보람은 무엇일까? 우선 훨씬더 젊어지고 참신한 의식을 갖출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수구의 낡은 ‘신문지’(新聞紙)들을 접고 서민을 대변하고 미래를 조감하는 한겨레를 택했을 때 어둔 세상에 대한 환한 햇살이 비칠 것이다. 도대체 국민 넷 중 셋이 흡사한 신문을 보면서 지난 세기 색깔논쟁의 포로가 되어 음흉한 기득권 세력의 논리를 마치 제 생각이나 되는 것처럼 떠들며 앵무새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공영방송의 언론매체 비평을 한 번이라도 시청한 이들이라면 무엇이 독이고 무엇이 약인지 판단하리라 믿는다. 솔직히 말하여 현재 종이신문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 중에서도 거대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한겨레로서는 더욱 큰 난관에 봉착해 있음이 솔직한 현실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제2 창간운동을 지켜보면서 우리 가난한 주인공들은 소박한 심정으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명제 하나만으로 한겨레에 힘을 실어주고자 진력하고 있다. 우리 한겨레로서는 이런 노력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로 누구인가? 민족의 정론지를 파수하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앞에서는 무엇 하나 주저할 것이 없는 개미 같은 끈기를 가진 존재들일 뿐이다. 그저 이 글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한겨레의 발로 뛰는 일꾼인 것이다. 이윤/서울 홍대사대부고 교사 yoonee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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