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2.06 17:50 수정 : 2006.02.06 17:50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유일한 한국식당인 ‘비원’ 을 운영하는 순순호 사장이 식당 입구에 전시돼 있는 한겨레 제2창간 소식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김진수/사진부 jsk@hani.co.kr

[제2창간] 식당 입구 한겨레 ‘도배’…“한겨레밖에 난 몰라∼”

1월19일, 전지훈련 중인 한국 축구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밤 9시에 도착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과 이홍구 전 총리는 숙고에 들어가기 전 곧바로 리야드의 한국식당 ‘비원’을 찾았다.

이들은 이 식당 들머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야 했다. 1층 한쪽 벽에 최근 발간된 ‘한겨레 제2창간 소식’을 담은 유인물들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층계를 올라 2층 식당에 들어서자 놀라움은 더했다.

식당 들머리에 한겨레 제2창간 소식지를 넓게 전시해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신문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식당은 리야드의 유일한 한국식당. 규모도 적지 않다. 대부분 손님은 리야드에 거주하는 한인 600여명과 화교·외국인 등인데, 비교적 고급 식당이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볼 수 있는 게 오로지 <한겨레>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식당 입구에 전시된 한겨레 창간 소식지를 읽던 정 회장한테 이 식당 주인 손순호(50)씨가 다가섰다.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한겨레 많이 봐 주십시오.” 이에 정 회장은 “네, 저도 창간 주주입니다. 허허!” 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손 사장은 사우디 동포 사회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다. 한겨레에 대한 별난 사랑 때문이다. 1990년 8월 손 사장은 리야드에 도착했다. 리야드에 도착한 다음날 손 사장은 한국 신문을 배달하는 곳에 가서 <한겨레>를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80년대 중반 시국사건으로 실형을 살았던 손 사장은 87년 가을 경부선 철도 터널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번 돈을 모두 한겨레 창간기금으로 기탁했다. 그리고 창간호부터 열렬한 애독자였다.

“한겨레 공수해 달라” 한국신문 총판서 6개월 투쟁
한겨레 소식지·한겨레 주식 상품권 동포에게 나눠줘
“좋은 세상 위해 춤추며 즐겁게 싸우렵니다
서울가면 한겨레 식구들 밥 한끼 대접하겠습니다”


리야드에 살면서 한겨레를 보고자 했으나 당시 리야드 한국신문 공급총판을 하는 동포는 “한겨레, 그게 신문입니까? 빨갱이 찌라시지, 다른 신문 보세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더란다.

그로부터 6개월 동안, 손 사장은 매일 30분씩 그 사무실에 들러 한겨레를 공수해 오라는 ‘투쟁’을 벌인다. 결국 6개월 뒤, 그 한국신문 총판을 경영하는 동포는 한겨레신문을 5부씩 가져다 배달하기 시작했다.

“서울 본사에 전화해 항공편으로 배달해 볼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렇게 길을 닦아놔야 다른 동포들이 쉽게 한겨레를 볼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난해 6월부터는 제2창간 소식지를 파일로 내려받아 복사해 동포들에게 돌리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 내려받는데 20분, 네 쪽을 내려받는데 1시간20분이 걸린다. 이를 다시 확대 복사해 40여부를 만들어, 한국 간호사와 주재원, 유학생들에게 직접 나눠주었다. 이를 위해 새로 산 고급 프린터는 ‘과로’를 견디다 못해 벌써 망가졌다.

지난해 가을에 열린 리야드 동포 체육대회에는 식당 이용권과 함께 한겨레 주식을 상품권으로 내놓았다. 행운권 추첨에서 한겨레 주식을 받은 동포는 한겨레 주식을 손 사장이 사서 전해주기로 했다.

손 사장은 94년, 38살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결혼식 주례는 한겨레 창간 주역의 한 사람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젊은 시절부터 리 교수를 흠모한 손 사장은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사우디에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했다. 그리고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리 교수께 주례를 부탁했다. 한 젊은이의 불 같은 정열에 감동한 리 교수는 마침내 손 사장의 결혼 주례를 맡았다.

“농민가에 이런 가사가 있죠. ‘춤추며 싸우는 형제가 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춤추며 즐겁게 싸우고 싶습니다. 진리는 짧고 투명합니다. 한겨레가 추구하는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언젠가는 이뤄질 것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이 길을 가렵니다. 못난 사람들의 진정성이 이 세상을 지킨다고 믿어요.”

식당 길 건너편 그의 집에는 그가 사우디에서 구독한 15년치의 한겨레가 한 방 가득 정갈하게 쌓여있다. 흩어지지 않게 신문 중간을 철해 놓은 신문을 펼치자, 군데군데 밑줄을 그은 흔적이 있다. 앞으로 한국 문화관이 리야드에 생기면 모두 기증할 생각이다.

그동안 사우디의 한인 활동을 카메라 필름에 담아 이미 수천장의 기록 사진도 갖고 있는 손 사장. 그는 “서울에 가면 박봉에 고생하는 한겨레 모든 직원들에게 한끼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저희 꿈입니다. 그리고 온세계에 퍼져 있는 한인 식당에 모두 한겨레가 놓이는 그런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 누가 그보다 더 한겨레를 사랑할 수 있을까? 리야드에서 헤어지기 전날, 그의 집에서 그는 이런 노래를 마지막으로 듣자고 했다. 그 노래는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였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을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꺼야 … 사랑밖엔 난 몰라” 그에겐 ‘당신’과 ‘사랑’은 바로 <한겨레>였다. 콘서트 가수 이은미가 애절히 부르는 그 노래를 들으며 손 사장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갔다.

이길우/스포츠부 niha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