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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2 21:20 수정 : 2020.01.03 10:08

[짬] 주식회사 남이섬 유제근씨

남이섬의 9번째 종신명예직원 유제근(왼쪽)씨에게 남이섬은 태어난 고향이자 평생직장이 됐다. 사진 주식회사 남이섬 제공
“늙은이를 늙은이 취급하지 않고 평생 일하라니 고맙지. 90살, 100살, 이 몸이 성한 날까지 일할 거야.”

올해 81살을 맞은 유제근씨는 누구보다 값진 새해 선물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23일 열린 남이섬 제54돌 창립 기념식에서 직원들의 축하 속에 종신명예직원으로 추대됐다. 그는 이제 출근하지 않아도 평생토록 매월 80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가평 사이의 작은 내륙섬 관광지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남이섬은 일찍이 ‘80살 정년’에 이어 2008년 국내 처음으로 ‘종신명예직원 제도’를 도입했다. 최소 30년 이상 남이섬과 동고동락을 함께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에 창립 때부터 근속한 신교철·조종민씨도 함께 종신명예직원으로 추대돼 계열사 포함 500여명 직원 가운데 9명이 탄생했다. 남이섬은 산책로 한쪽에 이들의 근무기록과 경험담 등을 기록한 ‘명예의 전당’도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새해부터 종신명예직원으로 추대

출근하지 않아도 매월 80만원 지급

1939년 남이섬 태어나 50여년 근속

“강물 얼어 출근 못할땐 잠 못들어”

2008년부터 30년 이상 근속자 대상

9명째 종신보장…최고령 88살 근무중

남이섬은 종신명예직원들의 얼굴 사진과 이력을 기록한 판을 ‘명예의 전당’에 게시해두고 있다. 사진 남이섬 제공
유씨가 종신명예직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남이섬을 지켜온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다. 그는 1939년 남이섬에서 태어나 자랐고 첫 직장인 남이섬에서 지금껏 50년 넘게 일하고 있다.

“남이섬이 변해온 모습을 다 겪고 지켜봤지. 여기서만 살았으니까. 남이섬은 내 고향이고 쑥쑥 자라는 자식과도 같아.”

그는 군복무를 마친 뒤 남이섬의 전신인 경춘관광개발에 입사했다. 모닥불 피우기와 폐목 정리, 쓰레기 분리수거 등 몸으로 하는 일을 도맡았다. 섬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남이섬 건너편 마을에 사는 유씨는 어스름한 물길을 가르며 나룻배의 노를 저어 누구보다 먼저 출근했다. 동틀 무렵 물안개가 피어오르기도 전에 섬에 도착해 새벽 공기를 맡으며 쓰레기를 주우며 아침을 맞았다.

“새벽에 강 건너 들어와 쓰레기 줍고 찬 공기 마시면서 섬 한 바퀴 도는 것이 운동이지. 매일같이 이렇게 하다가 한겨울 강물이 얼어 일찍 출근하지 못할 때면, 쓰레기 걱정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곤 했어.”

유씨는 딸 넷·아들 하나인 5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가 미처 못다 한 공부의 꿈을 자식들이 대신 이뤄준 셈이다. “뿌듯해. 남이섬의 나무들처럼 잘 잘라줬어. 이렇게 잘 자라주니 얼마나 고마워. 이제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해.”

유씨처럼 평생토록 남이섬을 가꿔온 직원들을 위해 회사는 80살 정년을 보장하고 있다. 60살이 정년인 일반 직장과 견주면 20년을 더 일할 수 있다. 유씨는 정년까지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자 생활의 활력소다. 움직이면 건강해진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이섬에서 남은 평생을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다섯번째 종신명예직원으로 선정된 도예공방의 석성계옹은 88살 최고령으로 지금도 출근해 발물레질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23일 남이섬 창립 54돌 기념식에서 전명준(오른쪽) 사장이 윤제근(왼쪽)씨를 종신명예직원으로 추대하고 있다. 사진 남이섬 제공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 건설로 북한강 강물이 차올라서 생겼다. 금융·출판 등으로 성공해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했던 민병도(1916~2006) 선생이 1965년 섬을 사들여 조림을 한 뒤 1966년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세워 종합휴양지로 탈바꿈했다. 2000년 경영난 때 취임한 강우현 대표가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이름을 바꾸고 상상의 공간인 ‘나미나라공화국’을 표방하며 국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특히 2001년 12월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소문난 덕분에 일본·동남아 지역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해 최근에는 북미·유럽·중동까지 외국인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명소로 꼽힌다. 2018년 현재 방한 외국인 1600만명의 7%인 120만명이 남이섬을 찾았고, 내국인까지 포함해 관광객이 330만명에 이르렀다.

‘청정생태지역’인 남이섬은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대신 질 좋은 퇴비로 수목을 키우고, 낙엽을 모아 발효시킨 양질의 자연퇴비를 섬 인근 농가에도 무상으로 지원도 하고 있다. 산책로가 모두 흙길이어서 흙먼지를 막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뿌리고 비가 오고 나면 질퍽거리거나 패인 땅을 메워야 한다.

직장생활과 벤처 창업 실패 등 삶의 굴곡을 겪은 뒤 2006년 44살 때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 전명준 남이섬 사장은 “섬 전체를 자연순환시스템으로 관리하려다보니 구석구석 내집처럼 가꾸는 일손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평생을 헌신한 가족같은 직원들에게 회사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도 종신직원제도를 이어가 노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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