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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0 05:00 수정 : 2019.12.20 06:59

전국공공연구노조 이성우 위원장이 18일 낮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에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에 반발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고 있다. 세종/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자회사 설립 과정 곳곳 문제

불공정과 파행으로 얼룩
산업은행 노사전협 위원 18명 중
비정규직 5명뿐…판 기울어 가결
“충분히 협의” 정부 지침 안 지켜
에너지기술연구원은 ‘조작’ 의혹도

결론 짜맞추려 알리바이
“직고용 하면 채용시험 따로 봐야”
“정년은 자회사가 65세로 더 유리”
자회사 부정적 측면은 전달 않고
긍정적 부분만 부풀려 전환 유도

전국공공연구노조 이성우 위원장이 18일 낮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에서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에 반발하며 삭발한 뒤 발언하고 있다. 세종/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사실상 전환 방식 결정의 칼자루를 쥔 공공기관의 노사전협의기구가 용역·파견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로 보내기 위해 곳곳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환 대상이 아닌 이들이 회의에 들어오거나 단 3차례 회의 뒤 자회사 설립을 결정하는가 하면 기관 쪽이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합의한 것처럼 조작해 발표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전환 대상 제외자가 비정규직 대표하기도 산업은행은 지난 6월 청소와 시설관리 쪽 간접고용 노동자 493명을 자회사 케이디비(KDB)비즈 직원으로 전환했다. 산업은행은 2017년 10월 첫 노사전협의회 회의를 열었는데, 전체 위원 16명으로 구성된 노사전협의기구에 정작 전환 대상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4명뿐이었다. 그나마 회의 중간에 경비 쪽 대표는 근무하던 지점이 폐쇄돼 퇴사했고, 아이티(IT) 쪽 대표는 해당 직군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빠지는 등 이 2명은 실질적인 대표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난해 7~10차 회의까지 4차례 회의에 참석했다. 14차 회의 때 새 비정규직 대표들이 선임되기 전까지 전체 21차례 회의 중 3분의 1인 7차례 회의에서 총 16명 가운데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위원은 2~3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산업은행분회 김민욱 부분회장은 “노사전 회의 논의 과정 중간에 전환 대상에서 빠진 아이티 직군 대표 대신 다른 이가 대표로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회사 쪽은 ‘당사자한테 의사를 물었더니 계속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계속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고 했다”며 “나와 사무보조 직군 대표 2명이 비정규직을 대표하다 보니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표 자격은 노사전협의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두명의 대표가 물러나기 전까지는 대표 자격이 유지된 걸로 본다”고 말했다.

회의록 조작 논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노사전협의회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 대표들은 지난해 12월 4차 노사전협의회에서 공동자회사 방안에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연구원 쪽이 상급 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비정규직 위원들이 동의한 것처럼 회의록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9월 “제4차 노사전협의회 회의록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우리 근로자대표 모두는 공동자회사 전환 방식에 대해 수용하지 않고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는 탄원서를 과기부 등에 제출했다.

반면 연구원 쪽은 ‘조작은 없다’고 맞선다. 연구원 쪽은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위원도 회의록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확인을 해줬다”며 조작 의혹을 부인했다. 노사는 노사전협의기구를 새로 구성해 지난 17일부터 정규직 전환 방식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합의 대신 표결 강행도 공공기관들이 노사전협의기구 회의에서 합의를 도출하기보단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 속에서 표결을 강행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산업은행의 경우, 지난해 12월 21차 회의에서 자회사 전환 안건을 표결에 부쳐 찬성 12, 반대 1, 기권 1로 자회사안을 가결했다. 표결에 반대한 비정규직 대표자 4명은 표결에 불참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지원을 위한 정부 중앙컨설팅팀에 소속된 한 전문가는 “정규직 전환 방식과 관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당사자 등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사 및 전문가가 충분히 협의하라’는 게 정부의 지침”이라며 “모기관이 표결을 강행한 건 잘못”이라고 짚었다.

짜맞추기 결론 모기관이 자회사로 결론을 내놓고 짜맞추기식으로 노사전협의회를 진행했다는 증언도 적지 않았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자회사인 중진공파트너스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회사 에이플주식회사 등의 사업장에선 고령자가 많은 청소와 경비 쪽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접 고용 하면 경쟁채용 시험을 봐야 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이 좁아진다’거나 ‘(모기관에 직접 고용되면) 정년은 모기관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60세가 돼야 해서 65세인 자회사가 유리하다’ 등의 논리로 노동자들을 몰아붙였다는 증언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중진공파트너스지부 관계자는 “노사전협의기구 회의를 단 3차례만 열었고, 회의 시작 일주일 만인 3차 회의에서 자회사 방안을 결정했다”며 “직고용은 불리하고, 자회사는 유리한 내용의 일방적인 정보만 제공받으며 모기관의 자회사 유도 작전에 별수 없이 끌려갔다”고 말했다. 에이플 쪽 노동자도 “모기관과 정규직 노조 모두 회의 초반부터 자회사로 결론을 내놓고 분위기를 몰아갔다”고 밝혔다.

김규남 옥기원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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