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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4 05:00 수정 : 2019.03.14 10:01

‘미국 정가’ 받을 수 없어 철수?
지난해 9월 제도 바꿔 적정가 보장
고어사는 여전히 재공급 안해

공정조사 까다로워 공급 중단?
한국 3년·유럽 등은 매년 실시
조사 비용도 한국이 훨씬 낮아

미국 고어사가 2017년 10월 인공혈관 등 심장수술에 필요한 치료재료를 더 이상 공급하지 않았고 최근 들어 재고가 모두 떨어져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들의 수술이 연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고어사가 당장 필요한 인공혈관 20개를 공급한다고 밝혀 조만간 수술은 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 계속 공급이 될지 불투명하다.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인공혈관 등을 한국에 공급하지 않기로 한 고어사의 2017년 4월 결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13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어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보낸 전자우편 자료를 보면, 고어사는 식약처와 인공혈관 등의 재공급을 논의하면서 인공혈관 가격을 높일 것과 제조공정조사 면제를 요구했다. 결국 이 문제들 때문에 2017년 한국에서 철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치료재료 가격 인하와 제조공정조사의 까다로움 때문에 고어사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 고어사 철수 전 정부의 치료재료 가격 인하는 정당했나? 복지부는 2016년 인공혈관 제품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가격)를 약 19% 내리도록 결정했다. 치료재료의 경우 건강보험에서는 치료재료전문평가위원회에서 제조사의 원가 및 판매 자료 등을 바탕으로 국내 가격을 결정한다. 당시 대한흉부외과학회가 파악한 바를 보면 인공혈관의 경우 우리나라는 약 46만원이었고, 미국은 약 82만원, 중국은 약 147만원 등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용하는 대만과는 비슷한 가격이었다. 치료재료 가격은 각각의 의료제도 탓으로 직접 비교가 어렵다거나, 개발된 지 오래된 제품은 연구개발비가 반영될 필요가 없어 가격이 더 낮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가 2014년 국내 의료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인공혈관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건강보험에서 정한 가격보다 20% 넘게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규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치료재료도 약처럼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을 반영해 가격을 재결정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며 “다른 치료재료도 실거래 가격을 반영해 가격이 인하됐다”고 설명했다.

가격 인하에 대해 제조사 등이 건강보험이나 독립된 이의신청기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돼 있었다. 고어사도 독립된 이의신청기구에 가격 인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약이나 치료재료 등의 가격이 높게 결정되면 환자들은 가격 부담으로 병원을 찾기 어려워진다”며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쳐 건강보험료도 올려야 하므로 어느 나라든지 약이나 치료재료의 가격을 낮추도록 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의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13일 오후 국회 보건복지위에 출석해 다국적기업 고어사의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지난해 9월에는 미국 가격 받을 수 있는 절차도 마련했다 시장 거래가로 치료재료 값을 낮춘 뒤 인공혈관 등과 같은 희소·필수재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자 복지부는 관련 제도를 개선했다. 지난해 9월 희소·필수재료에 대해서는 적정가격을 보장할 산정기준을 고시한 것이다. 이중규 과장은 “희소·필수재료는 외국 제조사가 해당 나라에서 판매하는 가격을 국내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개정했다”며 “고어사가 요청하면 인공혈관 역시 미국의 판매가격을 국내에서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어사는 여전히 재공급 절차를 밟지 않았다.

■ 제조공정조사가 다른 나라보다 까다로웠다? 치료재료를 국내에서 판매하거나 사용하려면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는 사용 허가를 한 뒤에도 품질 유지를 위해 현지 제조사를 방문해 제조공정조사를 3년마다 진행하고 있다. 이 제조공정조사를 통과하기 위해 제조사의 설비 개선이 필요하고, 공정조사에서 기업 비밀이 새어 나갈 수 있어 고어사에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의료계 일부에서 나온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조공정조사는 유럽, 캐나다 등 여러 나라가 하고 있는 제도”라며 “이들 나라는 해마다 공정조사를 해 국내보다 더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쪽에서는 조사비용도 유럽보다 훨씬 낮다는 입장이다. 2016년의 경우 고어사가 이미 3년짜리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당장 철수를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 식약처 허가까지 취하할 필요가 있었나? 고어사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인공혈관에 대한 허가까지 취하해 다시 들여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한흉부외과학회는 지난해 2월 식약처에 허가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식약처는 인공혈관에 대해 신규 치료재료 등록을 위한 정식 절차를 밟아줄 것을 요구했고 고어사 쪽이 서류 제출을 꺼리면서 승인이 나지 않았다. 대신 식약처는 국내에 대체 제품이 없는 경우 환자 쪽이 자가 사용을 목적으로 ‘시험용 의료기기 등 확인서’를 받으면 수입 및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수입업체가 없어 인공혈관을 구할 수 없자 지난 2월 식약처가 인공혈관을 공급할 수 있도록 수입업체를 허가해줬다.

하지만 고어사가 각 나라에 판 제품은 해당 나라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도록 계약해 대만 등에 공급된 인공혈관을 국내로 수입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가격이나 공정조사를 이유로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치료재료를 공급하지 않고 다른 방도로 구할 수도 없게 만든 고어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황예랑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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