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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6 19:28 수정 : 2018.04.16 20:39

예술검무 하는 검객 윤자경씨

허약한 그에게 엄마가 검을 쥐여줬다
손바닥 굳은살 는 만큼 마음은 훨훨

대학교도 그만두고 빠져들어
해동검도 6단까지 올랐다

흐르는 강물에 배꼽까지 몸 담그고
물속 깊이 베고 또 베기를 거듭

발이 쑥쑥 묻히는 모래밭 걷고
대나무밭 헤매며 굵은 대나무도 벴다

20대 중반에 예술검무에 마음 뺏겨
대학 편입해 무용하고 발레도 배워

티브이 사극과 예능 프로에도 출연하고
미·영 돌며 동양 여검객 이름 떨쳐

한민족 전통 검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윤자경씨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발레를 익혔다. 동서양의 몸짓이 합쳐져 윤씨의 칼끝은 더욱 부드럽고 단호히 허공을 가른다.

차다. 흐르는 물의 생동감이 발바닥에서 발목으로, 발목에서 허벅지로 차츰 느껴진다. 조금 더 들어간다. 배꼽 위까지 강물은 휘돈다. 두 손을 모아 칼을 쥔다.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칼을 들어 올린다. 단전에 힘을 준다. 두 다리는 강물에 버틴다. 숨을 내쉬며 내려벤다. 물속에 있는 무릎까지 칼끝이 내려가야 한다. 물은 칼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거세게 저항한다. 물은 사방으로 자신의 분신을 떠나보낸다. 물속에 잠겼던 칼은 힘차게 다시 솟아오른다. 허공에 올라간 칼은 물속에 고향인 듯 다시 내려간다. 순식간이다. ‘물치기’이다. 얼마나 반복했을까? 시간이 멈춘 듯하다. 문득 1만번 내려베기가 떠오른다.

한민족 전통 검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윤자경씨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발레를 익혔다. 동서양의 몸짓이 합쳐져 윤씨의 칼끝은 더욱 부드럽고 단호히 허공을 가른다.

오후 3시에 시작한 1만번 내려베기는 거의 8시간이 걸린 밤 11시쯤에 끝난다. 처음엔 기마자세로 시작한다. 안정된 자세는 내려베기를 1천번 정도 반복하면 흐트러진다. 단전에 힘을 주고 대도세로 바꾼다. 한발을 내딛고 뒷발을 뒤로 쭉 뻗어 중심을 잡는다. 이번엔 소도세. 두 발을 좁혀 무릎을 붙인 채 내려베기를 계속한다. 오천번쯤 내려베기를 한 뒤 정좌자세로 바꾼다. 두 무릎을 꿇고 내려베기를 한다. 온몸의 근육은 아우성을 친다. 제발 멈추라고. 문득 뒤가 열린 느낌이 온다. 이젠 앞으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칼이 던져지는 느낌이다.

자세 바꿔가며 8시간 1만번 베기도

검 수련의 과정은 길고도 험했다. 새벽에 바닷가 모래사장에 갔다. 물이 막 빠진 모래사장은 발이 쑥쑥 묻힌다. 그런 연한 모래사장에서 보법훈련을 반복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선 맨땅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하다. 대나무 베는 훈련을 위해 대나무밭을 헤맸다. 굵은 대나무를 베기 위해선 속도가 필요했다. 검의 빠른 속도를 위해선 강한 체력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윤자경씨가 벚꽃나무 아래서 검무를 추고 있다.

진검을 다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하체의 중심이 굳건해야 한다. 스승님은 긴 봉을 머리에 올리고 중심을 잡은 채 자세 이동을 재촉했다. 몸이 이동하고 상하로 흔들리더라도 머리에 놓인 긴 봉은 떨어지지 않게 집중해야 했다. 기마자세를 한 무릎 위에도 긴 봉이 놓였다. 마치 강물에서 버티는 철제 다리의 교각처럼 두 다리는 굳건해야 했다. 뒷다리에 끈을 묶어 스승님은 잡아당겼다. 그 힘을 거스르며 마치 소가 쟁기를 끌듯 전진해야 했다. 허벅지가 터질 듯 팽창했다.

그런 수련 과정을 통해 해동검도 6단에 오른 윤자경(41)씨는 두 손에 칼을 들고 춤을 춘다. 칼은 몸과 하나가 된다. 두 칼은 합쳤다가 헤어지고, 위아래로 흐른다. 칼은 살아 있다. 윤씨는 칼날이 시퍼런 진검은 스스로의 정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 칼은 한때 자주 윤씨에게 상처를 줬다. 공연할 때마다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윤씨는 그 칼을 지하실에 가두었다. 무명천으로 꽁꽁 감아서 어두운 지하실에 감금했다. 한동안 어둠에 있던 칼은 그 이후 윤씨의 말을 잘 들었다.

검 끝 날카로워질수록 몸은 강해져

윤씨의 날렵한 칼끝은 짚단 베기에서 빛을 발한다. 단순히 내려베기가 아닌 전광석화 같은 연속 베기이다. 칼이 지나간 자리에 잘려나간 서너 조각의 볏짚은 공중에서 멈추어 있다. 윤씨의 칼이 원위치가 된 뒤에야 비로소 잘려나간 볏짚은 땅에 떨어진다.

윤자경씨가 자신의 도장인 ‘예지’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다. 예지검도 홍보영상 캡처

윤씨의 검술은 쌍검무에서 완성된 듯하다. 두 개의 칼은 서로의 길을 정확하게 아는 것처럼 윤씨의 몸 주변을 감싼다.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흐느끼며, 그리고 단호하게 두 개의 칼은 허공을 교차한다. 하얀 칼날은 붉은색의 윤씨 도복과 푸른 하늘,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과 어울리며 자태를 뽐낸다.

허약했다. 처음 해동검도를 접한 중학교 2학년 때에 윤씨는 심장과 폐가 약했다. 윤씨의 어머니는 딸의 손에 검을 쥐여주었다. 손바닥에 굳은살은 늘어갔지만 마음은 자유로웠고, 오히려 편했다. 육체는 한없이 고달팠지만 손끝에 검을 느끼면 자신감이 충만했다. 대학도 중퇴하며 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범의 길로 들어섰다. 예술검무에 마음에 갔다. 20대 중반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무용을 배우기 위해서 서울예대 무용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검의 선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몸의 완벽함을 위해 발레도 배웠다.

약했던 몸은 검 끝이 날카로워지는 것과 비례해서 강해졌다. “진검을 다루기 위해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을 집중시켜야 해요. 힘의 균형도 필수적입니다. 그래야 강한 기운이 칼 끝에 전달돼요.”

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축하공연

한때 윤씨는 텔레비전 사극(<연개소문>)에 여검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 초반 윤씨는 날렵한 검술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주말 예능프로그램에서 나가 20개의 촛불을 단칼에 끄는 신기도 보였다. 미국과 영국을 순회하며 진검을 휘두르는 동양의 여검객으로 이름을 떨치며 ‘한국의 장쯔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600 대 1의 배우 오디션에 응모한 윤씨는 주연을 꿰차기 위해 연기와 춤뿐 아니라 말을 잘 타려고 마장마술을 정식으로 배우기도 했다. 윤씨의 검에 대한 뜨거운 정열은 마침내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윤씨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을 축하하는 공연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윤자경씨가 검무를 추고 있다.

5년 전부터는 서울 방학동에 ‘예지’라는 이름의 도장을 차렸다. “검은 바로 거울입니다. 검은 닦으면 닦을수록 얼굴이 맑게 비쳐요. 그렇게 깨끗하게 닦은 검에 얼굴을 비추면 바로 마음이 정화가 돼요.”

결혼하고 아이를 자연출산한 윤씨는 검도로 몸매를 원위치에 돌리는 실험을 했다. “검을 들고 단전에 힘을 줍니다. 코어 근육을 몸 깊숙이 잡아당깁니다. 임신으로 늘어진 배 근육에 탄력이 붙어요. 오히려 임신 전보다 몸이 더 탄탄해진 것 같아요.”

윤자경씨가 검무를 추고 있다.

윤씨는 전통검무를 예술검무로 발전시키는 꿈이 있다. 안무도 하고, 각종 공연에 직접 출연한다. “스승께서 왜 똑같은 동작을 반복시켰나 하는 짙은 의문이 이제는 점차 풀려요. 계속 반복하다 보면 머리 끝의 기운은 하늘로 향하고, 발바닥의 기운은 땅속을 파고들어요. 단전의 힘은 점차 강해지면서 손에 힘을 빼더라도 칼 끝엔 힘이 더 실리는 것을 느껴요.” 칼이 살아 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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