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발견·치료 사회적 대처를” 2003년 37만명…전문가 “주변 편견 버려야” 우울증이 한 원인이었던 영화배우 이은주씨 자살사건을 계기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은 2000년 23만2300여명에서 2001년 29만8300여명, 2002년 34만2800여명, 2003년 37만4200여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수치에 대해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줄어들면서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는 증거”라면서도, “우울증을 병이 아닌 한때의 기분상태로 파악해 치료를 받지않는 많은 환자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치”라고 분석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다.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 관계자는 “세계보건기구와 미국 하버드의대가 수행한 ‘세계의 질병부담연구’를 보면 1990년대 세계적으로 부담이 가장 큰 질병은 폐렴·설사·출산에 관련된 질병이었지만, 2020년대에는 우울증·허혈성 심장 질환·교통사고로 예측됐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에서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은 전체 질병 부담의 15%에 이를 정도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에 대해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경쟁적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인간적 유대 관계의 악화 등 현대화 사회의 여러 문제 때문에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은 점차 많아지고 있어 갈수록 심각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성길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외국의 연구를 보면 병원을 찾는 환자의 10%가 우울증이 있고, 전체 인구의 15%가 평생 한 번 이상 이 증상을 앓을 정도로 흔하다”면서 “의사의 적절한 치료와 가족 및 사회의 정신적인 지지가 없다면 자살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의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가운데 약 70~80%는 우울증을 앓았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진국들 역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에 대한 심각성을 느껴, 사회적 차원의 대처를 요구하는 여론이 이미 형성됐고, 당국이 관련 대책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안다”며 “우리나라도 이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서동우 박사(정신과 전문의)는 “자살의 80%가 우울증을 거쳐서 나타나는 만큼 우울증의 조기 발견 및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며 “현실적 대안으로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익 광고 및 지속적인 캠페인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소득층의 정신과 치료비 지원, 노인, 알코올 중독자 및 그 자녀 등 우울증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성길 교수는 “우울증은 조기에 발견해 남 눈치를 의식할 필요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우울증 환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사회적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문의들은 우울증을 한때의 불안한 심리상태로 치부해서도 안되지만 우울증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리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발병 초기에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면 대부분 깨끗이 치료된다는 것이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약물치료땐 완치율 높아
우울증은 뇌 속의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전달 물질이 부족해 지는 신체적인 문제와 스트레스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복합돼 생긴다.
위장병, 관절염, 고혈압, 당뇨 등 각종 신체적인 질병을 앓을 때도 우울증이 나타나기 쉽다. 특히 호르몬의 영향,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사회적 성 차별 등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성길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는 “우울한 기분은 누구나 느낄 수 있어서, 애인과 헤어지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는 등의 일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의학적으로는 별 다른 이유 없이 우울감이 6주 이상 지속될 때 우울증을 의심한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에 빠지면 정서적으로 슬픈 느낌이 계속 들고 삶에 대한 재미나 즐거움, 흥미가 없어지면서 매사를 짐처럼 여기게 된다. 실제 신체적으로도 만성 피로감, 가슴답답함, 어지럼증, 두통, 변비, 식욕 부진, 불면, 성욕 감소 등의 증상을 보인다. 심하면 아예 삶을 포기해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의 10% 정도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최근 20년 동안 뇌신경학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제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전우택 연세의대 정신과 교수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약물치료로 증상이 빠르게 호전되며 완치율도 높다”고 말했다. 치료를 받고 완치된 뒤에도 방심할 수 없는 문제도 남아 있다. 전 교수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정서적인 지지 구조가 없거나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면 우울증은 자주 재발해 만성화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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