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큰 물그릇이다. 그러나 크기가 쓸모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물을 담을 수 없는 물그릇은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다. 관상용 도자기라면 심미적 효능감이라도 있겠지만, 댐에서 그걸 기대하는 건 오지랖 넓은 현대 미학으로도 불가능하다. 거대한 콘크리트 흉물일 뿐이다. 그런 댐을 짓겠다고 생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내쫓는 일을 누가 할까 싶지만, 인간의 일이 상식을 넘어 상상의 범주마저 넘나드는 경우도 아주 드문 것만은 아니다.
2010년 늦가을 내성천의 모습. 드넓게 펼쳐진 모래 위로 여러 갈래의 물길이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며 느리게 사행했다. 안영춘 기자.
2015년 8월, 경북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금강마을 앞 내성천 주위로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초원을 이루고 있다. 영주댐 건설로 초지화가 극심해진 모습이다. 영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올 5월25일 내성천 영주댐 본댐 상류의 유사조절지댐 방류구 모습. 이미 녹조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수 기자.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에 들어선 영주댐은 2016년 완공됐으나 여태 물을 담지 못하고 있다. 물을 가두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뇨 냄새가 날 만큼 수질이 악화했다. 설상가상 댐 벽면에서는 물이 샜다. 댐 주인인 한국수자원공사는 마지못해 수문을 열었다. 그런데도 댐 상류의 수질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수문이 최저수위 밑으로는 열리지 않게 돼 있어 고인 물이 남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수자원공사는 1조원 넘게 돈을 들인 이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다만 관상용으로 모셔두고, 더는 아무런 판단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댐 공사를 하기 전 내성천의 풍경은 견줄 데가 없었다. 강에 들어서면 깊은 내륙답지 않게 바닷가의 시원을 연상시켰다. 너비 100m 안팎을 오가는 유역은 바위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모래 천지였다. 물은 가벼워 중력에 이끌리기보다 바람 따라 마실 가는 듯했다. 또 그 물은 맑고 얕아서 모래의 결대로 물결을 이루며 가만하게 흘렀고, 흐르는 물에 고운 모래도 실려 함께 흘렀다. 물의 줄기는 모이거나 나뉘거나 퍼지며 수없는 굽이로 사행했는데, 앞의 굽이는 들숨, 그다음 굽이는 날숨 같았다. 강은 호흡하며 흘렀고, 흐름으로써 호흡했다.
물길이 막히자 모랫길도 막혔다. 강의 호흡도 멈췄다. 억겁의 시간이 그려놓은 진귀한 풍경화는 빠르게 지워졌다. 댐 상류는 포클레인과 불도저로 산자락까지 파헤쳐져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고, 모래가 새로 흘러내려 올 길이 막혀버린 댐 하류의 유역은 거친 자갈밭으로 변해갔다. 강에 깃들어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은 목표 만수위보다 높은 산 중턱의 이주단지로 쫓겨 올라갔다.
이주단지에서 보면 모래 유역은 수풀에 덮이고, 물줄기는 좁게 패인 물길과 웃자란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들과 마을은 누구의 땅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물의 땅도 아니었다. 비록 탁하지만 한때 물이 차오르는가 싶더니 댐 수문이 열리자 그마저 사라졌다. 물로써 존재 이유를 찾는 수자원공사가 그 마른 땅의 소유권자다. 그러나 물그릇에 물을 채울 수 없는 수자원공사는 그 땅의 쓸모를 알지 못한다.
*
제비는 인간이 가축으로 길들이지 않은 동물 가운데 인간에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종이다. 물리적 거리로는 쥐, 모기, 파리, 바퀴벌레가 더 가깝지만,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인간은 저들과 살가워지지 못할 것이다. 가축 안에서도 종에 따라 인간과의 관계방식은 극과 극이다. 오늘날 인간의 집 안으로 들여진 개와 고양이는 그 집의 가족이 되어 극진한 보살핌을 받지만, 개와 고양이만큼 오래전 길들여진 소, 돼지, 닭은 이제 개체로 식별될 겨를도 없이 도축되고 만다. 그러나 지옥의 소, 돼지, 닭과 천국의 개, 고양이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공통점이다.
지난 5~1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의 전시공간 ‘나무 갤러리’에서 열린 ‘3만 마리 제비가 전하는 내성천, 생명의 숨소리’ 전시회장의 모습. 내성천의친구들 제공.
제비가 인간과 맺는 관계 방식은 견줄 대상이 없다. 제비는 인간에 종속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선택권까지 행사한다. 제비는 사람 집 처마 밑에 집을 짓는데, 사람이 부러 불러들이지 않는다. 제 살 곳을 스스로 정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는 둥지를 틀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 ‘내성천 지킴이’ 지율 스님은 당신의 속가가 있는 산골 마을의 이장님이 돌아가시자 그 댁 처마 밑에 살던 제비가 마당 위를 몇 바퀴 돌고는 떠나가더라고 했다. 올봄 처마 밑으로 온 제비 중 절반 가까이는 지난해 봄여름도 그곳에서 났던 제비라고 조류학자들은 말한다. 제비의 둥지 터는 건축의 안정성과 수월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있어야 이야기가 완성된다.
제비 보기가 어려워졌다. 제비가 드물어졌다는 것은 여느 다른 동물의 개체 수 변화와 성격이 크게 다르다. 인간과 정치적으로 독립성-평등성-친연성의 균형점에 이른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개, 고양이의 개체 수는 크게 늘었다. 소, 돼지, 닭은 공장식 사육으로 대폭발이라 할 만큼 증가했다. 반면 공간을 두고 인간과 적대적 긴장 관계에 있는 종들 다수는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그 부작용으로 생태계 먹이사슬이 교란되면서 오히려 개체 수가 많이 늘어난 종들도 등장했다. 멧돼지, 고라니는 인간이 전유하던 공간에서 이제 인간과 경합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적극적 개입이 낳은 결과다.
제비의 개체 수는 왜 줄었을까. 인간에 대한 제비의 고유성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도시에는 사람이 넘친다. 제비와 사람의 친연성만 생각하면 도시 조류의 우점종은 비둘기가 아니라 제비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도시의 강력한 위생학은 제비의 먹이인 벌레를 사라지게 했다. 비둘기는 사람이 건네거나 흘린 것들을 먹고 번성했지만, 제비는 사람의 것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해 독립적인 본성이 굶주림으로 이어진다. 도시에서는 처마도 급속히 사라져 인간과의 주거 친연성도 희미해졌다. 제비는 도시에 투항하는 대신 스스로 도시를 떠나 돌아오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농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먼저, 화학 농법이 제비의 먹이를 박멸하다시피 했다. 이미 1960년대에 농약 중독으로 제비 개체 수가 줄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농약으로 인한 제비의 사멸 대책’, 임호준, 1969) 같은 보고서를 보면, 제비 한 마리는 한 해 농약 한 병으로 퇴치할 수 있는 양만큼의 해충을 먹는다. 인간과 제비 사이에 농약이 끼어들었고, 그만큼 서로의 거리는 멀어졌다. 농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제비 개체 수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지율 스님은 “포클레인으로 공사하는 들에도 사람이 있으면 제비가 보이는데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단지라도 사람이 없으면 제비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
제비가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떼 지어 나타났다’.
9월15일 내성천의친구들은 둑길을 걸으며 매달 진행하는 내성천 생태조사를 하고 있었다.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자 하늘에서 들로 무언가 무더기로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율 스님은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며 “제비가 먹잇감을 찾거나 비행을 할 때는 쏜살같지만 숲에 내려앉을 때는 자유낙하를 하는가 싶었다”고 돌이켰다. 그날은 간간이 비가 내렸고 태풍이 한반도 남쪽을 지나가고 있었다. 20년 넘게 새를 관찰했던 전문가도 처음 맞닥뜨린 풍경이기에 “남하하던 제비 떼가 날이 궂어 이곳에 임시로 기착한 것 같다”며 “날이 개면 곧 떠날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성천 위를 날아다니는 제비떼. 내성천의 친구들 제공 영상 갈무리.
이튿날 답사팀은 신새벽 숙소에서 나와 오전 6시쯤에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제비 떼의 비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스님은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동영상을 찍었지만 비행 속도가 너무 빨라 정확한 제비의 형상을 영상에 담을 수 없었고, 개체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제비 떼는 불과 10여분 사이에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들녘은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그 뒤로 지율 스님은 틈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제비는 해질녘에 무리 지어 강변 숲으로 내려오고 이른 아침이면 다시 무리 지어 강변 숲을 떠났다. 처음 제비 떼를 발견하고 일주일 뒤에 습지와새들의친구 박중록 운영위원장과 내성천의친구들 문종호 대표가 합류하여 세 사람이 서로 다른 위치에서 새의 개체 수를 세었다. 새의 개체 수를 세는 데 오랫동안 훈련된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3만 마리 이상 되는 것으로 집계했다. 지율 스님은 자료를 찾았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내륙에서는 많아야 2000~3000마리 정도가 관찰됐다. 지난해 환경부가 낸 통계를 보면 전국의 제비 개체 수는 100헥타르(100만 제곱미터)에 평균 24마리, 내성천이 있는 경북의 경우 11.9마리였다.
저 많은 제비 떼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성천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동안 관찰되지 않았을 리 없다. 지율 스님과 박중록 운영위원장은 북쪽에서 남하하는 제비 떼가 내성천 들녘을 중간 기착지로 삼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제비는 이동할 때 마을 단위로 모이고, 그 떼가 다시 면 단위로, 군 단위로, 도 단위로 모여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내성천 주변 들녘에서 보이는 제비 떼는 여러 도에서 따로 출발한 무리가 시차를 두고 이곳에 기착했다가 얼마 뒤 떠나면 다음 기수의 무리가 찾아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제비는 왜 내성천 들녘을 중간 기착지로 삼게 되었을까. 그곳이 텅 비었다는 건 사람의 관점인지 모른다. 제비의 관점으로 보면 오히려 가득 차 있다. 사람이 떠난 뒤 담수를 하지 못하는 동안 강 주변 경작지들이 천이를 계속해 습지와 버드나무 숲으로 변했다. 조류를 비롯한 동물들이 서식하기에는 논과 밭보다 훨씬 유리하다.
내성천 일대는 제비 떼가 찾기 전에도 새들의 주요한 이동 경로이거나 서식지였다. 먹황새가 해마다 10월이면 찾아와 긴 겨울을 지내는 국내 유일한 도래지다. 멸종위기 1급인 흰꼬리수리는 금탄강변 절벽에서 겨울을 난다. 멸종위기 2급 흰목물떼새는 환경부에서 실시하는 전국 동시조사에서 발견된 총 개체 수보다 많은 개체 수가 서식한다. 내성천의친구들은 영주댐이 완공된 뒤에도 매달 생태조사를 진행해 다음과 같은 보호종들도 확인했다.
지율 스님은 제비를 제대로 영상에 담고 싶어 중고 드론을 구입했지만 직접 찍을 자신이 없어 김경만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드론이 뜨자 제비 떼가 드론을 수리 같은 맹금류로 오인하는 듯해서 찍지 못했다. 제비 떼 대신 내성천 들녘을 항공 촬영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그곳은 습지로 완연히 되살아나 경이로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
이제 물과 모래까지 되살아나면 내성천과 주변 일대는 한반도를 대표하는 내륙 습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지율 스님은 기대하고 있다. 내성천의친구들은 몇 해 전 ‘댐보다 습지’라는 대안을 제시하며 국가와 수자원공사, 건설주체인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영주댐 철거 소송을 진행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패소했으나 수질과 누수 등으로 영주댐의 담수가 지연되자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내성천 회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대안을 찾고 있다. 물을 담지 못하는 거대한 물그릇을 자연에 돌려주면 동식물은 물론 사람도 행복해질 거라고, 때마침 찾아온 제비 떼가 일러주고 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