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7 14:30
수정 : 2018.08.2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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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의 접근이 예상되자 공무원들이 통제하던 제주 서귀포 해안도로에 태풍에 쓸려온 돌멩이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다음날 말끔히 치워져 정부의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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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호의 파란하늘]
상어 같은 강한 어종은 빠르게 태풍 피하지만
빨리 못 움직이는 물고기·거북 등은 꼼짝없다
인간도 마찬가지…자연재난은 곧 사회적 재난
기상청 ‘솔릭’ 과잉예보로 공포 조성했다고?
수도권만 아니면 되는가, 안전에 ‘과잉’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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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솔릭’의 접근이 예상되자 공무원들이 통제하던 제주 서귀포 해안도로에 태풍에 쓸려온 돌멩이들이 흩어져 있었으나 다음날 말끔히 치워져 정부의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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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갈 때 바닷속에서 사는 물고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연구를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에서 했다. 빠르고 멀리 움직일 수 있는 상어 같은 물고기는 기압 변화를 미리 감지해 태풍에서 멀리 도망간다. 반면 자기 영역이 있고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물고기, 거북, 게와 굴은 강한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잘 먹지도 못한다. 더구나 여러 해류가 섞여 염분이 급격히 변하거나 산소 농도가 낮은 물이 솟아 올라와도 이들은 어려움에 부닥친다.
강한 것은 위험에서 벗어나고 약한 것만이 그 위험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게 바닷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육지 위의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태풍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그 재앙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주로 가난한 사람의 삶과 터전이 무너진다. 자연 재난은 우리 사회의 예외적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는 잠복해 있던 실존적 차원으로 드러난다. 곧 재난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재난은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적 기능을 나타내 보인다. 그 기능은 고장 나는 순간 눈에 보이게 된다. 재난은 혼돈과 피해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동안 감춰진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의 문제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재난이 가혹하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서 불만이 생긴다. 정부가 그들을 보호하고 구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고, 이러한 동요가 저항으로, 또 드물지 않게는 폭력으로도 번져 나간다.
그러므로 자연 재난은 곧 사회적 재난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일상의 토대에 대해 그 신뢰성을 의심하게 한다. 정부는 이 일상의 토대를 책임지며 재난을 통제하여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이므로 총력을 기울여 자연 재난에 대응하려 한다. 재난을 다루고 조정하는 능력은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의미 없이 일어나는 것은 없다. 태풍처럼 적도에서 극을 향한 에너지 전달이 없다면 적도 지방은 점점 뜨거워지고 극지방은 점점 추워져 생명이 살 수 없는 지구가 될 것이다. 지구가 역동적인 한, 태풍은 거기에 필요한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태풍은 엄청난 강우량, 격렬한 바람과 폭풍 해일로 큰 피해를 일으키는 데 인간에게 그 영향이 지역적이고 차별적이다. 이때 바닷속에서도 각기 다른 종에 따라 처한 위치에서 태풍 영향을 각각 다르게 받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무엇으로도 차별할 수 없는 같은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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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제주를 강타한 태풍 ‘솔릭’에 서귀포 앞바다에 집채 만한 파도가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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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태풍 솔릭 때 과잉된 예보로 공포를 조성했다고 기상청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당시 태풍이 제주도를 통과하던 이틀 동안 나는 바닷가에서 지켜보았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비바람 치던 그 날 밤에 공무원들이 서귀포 법환의 해안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보니 지난 밤 심한 파도에 해안도로까지 쓸려 들어왔던 돌멩이들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정부 기능이 온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사람이 실종되고 피해가 발생했다. 수도권이 피해가 없었다고 다 안전한가? 중심부의 안전이 전체의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부분 태풍 규모는 한반도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크다. 태풍 진로에 작은 차이가 있었다면 태풍이 수도권을 강타할 수도 있었다. 이 작은 차이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확실 영역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스스로 다가가 재난을 함께 막아 내야 한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의 재난에서도 우리의 눈길이 닿아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저력은 보이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한 곳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과학자 cch0704@gmail.com,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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