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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1 06:00 수정 : 2019.07.01 10:10

부산 부경대 대학산학연구단지(URP) 입주기업인 로보프렌 엔지니어들이 드론의 소프트웨어 설계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지역 주도형 과학기술 혁신 현장

부산시, 4년 전 ‘비스텝’ 독자 설립
기획서 평가까지 전과정 자체관리
학생 감소·학과 축소로 생긴 공간
산학협력 기지로 활용해 좋은 반응
실시간 출동 현장컨설팅 가능해져
‘도시형 첨단산업단지’ 모델로 부상

대전·전남도 비슷한 조직 추진중
경북선 시민·전문가들 의견 모아
맞춤형 ‘지진센서 플랫폼’ 개발키로

부산 부경대 대학산학연구단지(URP) 입주기업인 로보프렌 엔지니어들이 드론의 소프트웨어 설계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망해간다” “취업 남방한계선”(대학 졸업자들 양재·기흥라인 아래로는 안 간다는 뜻) 등은 지역의 위기를 상징하는 은유로 회자된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10대 청소년들한테 물은 “20년 뒤 어디에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72%가 대도시를 선택하고 중소도시를 선택한 응답자는 22.5%에 그쳤다. 위기는 현재 완료가 아니라 미래 진행형이다. 정부는 지난해 제5차 지방과학기술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면서 9대 중점 과제 가운데 ‘지역의 연구개발(R&D) 투자 결정권 강화’와 ‘지방정부의 연구개발 기획·평가역량 확충’을 으뜸과 버금으로 꼽았다. 한마디로 ‘지역 주도’로 요약된다. 지역이 스스로 나서 주도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는 현장 두 곳을 찾아봤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부산판

김병진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BISTEP·비스텝)은 연구개발 정책 기획에서 집행, 수행과정 점검, 평가에 이르는 과정을 전주기적 관리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기관으로 손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키스텝)의 ‘부산판’에 해당한다. 테크노파크(산업기술단지), 사이언스파크(과학연구단지), 연구개발지원단, 연구개발특구 등 지역에 설립된 과학 및 산업기술 관련 지역 조직은 여럿이지만 중앙정부 주도로 세워진 기관들이다. 비스텝은 2015년 순수하게 부산시가 투자해 만든 기관이다. 지난달 17일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사이언스파크 안 비스텝에서 만난 김병진 원장은 “중앙정부가 시그널을 줘 만든 조직이나 기관들은 중앙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해 왔다. 지역에서 스스로 미래를 생각하고 필요한 연구개발 과제를 발굴해 투자하고 모니터링해 지역발전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 비스텝을 설립한 배경은?

“노무현 정부 때 지역 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해 만든 연구개발지원단 1호가 2007년 부산 테크노파크 산하로 설립됐다. 하지만 정부가 주는 1억원짜리 사업에 그치고 비정규직 연구원이 정부 숙제만 하는 격이었다. 이후 구축된 사이언스파크도 부처가 바뀌면서 애초 정부의 법인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배경으로 비스텝 설립 필요성이 제기됐고, 마침 지방선거를 앞두고 관련 보고서가 나와 유력 후보들이 모두 공약으로 선택했다. 민선 6기인 2015년 7월 출범한 비스텝은 내용으로 보면 연구개발지원단의 확장이지만, 중앙정부와 고리 없이 지방정부 자체 내부에서 진정한 필요성에 의해 설립됐다는 의미가 있다.”

- 그동안의 성과는?

“지방정부가 지역 행정구역 단위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필요한 연구개발을 발굴해 집행과정을 점검해가며 개선해가는 선순환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그래도 행정공무원과 시민들은 연구개발 사업을 얼마나 유치했느냐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까지 만 3년여 동안 320건의 과제를 발굴해 모두 23건, 5085억원의 사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의 국비가 2488억원에 이른다. 파워반도체기반구축사업과 태양융복합소재사업 등 예타 사업도 2건 유치했다. 성적이 괜찮은 편이다.”

지난 5월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BISTEP) 회의실에서 시민정책자문단과 지역 청년이 함께 ‘지역 사회문제 해결 과제 발굴’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부산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제공
- 부산은 석·박사 등 고급인력의 유입·유출 지수가 전국 최하위권으로 꼽힌다.

“부산을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라지만, 2류 도시로 전락해가고 있다. 고교, 대학 진학 때 떠나고, 대학 졸업하면 한 번 더 떠나간다. 여기에 학령인구마저 줄어 학과를 축소하다 보니 대학에 빈공간이 생겼다. 이곳에 산학연구 공간을 만들고자 4개년 계획으로 순수하게 시비만 50억원을 투자했다. 지방정부로선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것이 교수 연구진과 입주 기업들이 공동연구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대학산학연구단지(URP) 사업이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사업인가?

“부경대는 캠퍼스가 2개였다. 하나로 합치고 남는 하나를 산학연구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동아대는 기업을 유치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대학 안에서 사업을 검토하고 산업단지로 성과를 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부산의대가 동아대, 인제대, 고신대 의대와 함께 연합해 만든 유아르피는 네트워크 중심의 산업단지 형태다. 중앙정부에서 했다면 한 가지 모델만 했을 것이다. 또 중앙에서 지역 연구개발 관리할 경우 실적만을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현장 컨설팅이 가능하다. 20분이면 대학에 갈 수 있고 점심 먹으면서 개선방안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

- 성과는?

“올해 교육부가 비스텝을 벤치마킹해 유아르피를 전국 공모사업으로 발탁했다. 여기에 부경대가 응모해 다시 선정됐다. 지역 주도의 혁신 정책이 중앙정부에 의해 채택되는 ‘역벤치마킹’ 사례이다. 국토부에서도 도시형 첨단산업 단지로 육성할 수 있겠다 하여 특별법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3년 동안 운영했는데 부산 경제는 쇠락해지고 산업구조도 열악해지니 일부에서 비스텝 무용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연구개발 목적이 산업 살리는 것이고 산업 그림도 함께 그려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돼 산업구조와 산업정책 혁신까지 기획하는 비스텝 확대안이 조례로 마련됐다. 과학기술을 현재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도 부산산업과학혁신원으로 바뀔 예정이다.”

현재 대전과 충남, 전남 등지에서 비스텝을 모델 삼아 유사한 조직을 추진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태정 대전시장은 지난달 대전에도 비스텝과 유사한 조직인 ‘디스텝’을 내년까지 설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창용 대전시 과학산업국장은 “한글 이름은 좀더 혁신적이고 시민친화적인 명칭을 찾고 있다. 대전은 대덕특구라는, 부산과는 또 다른 환경이 있어서 비스텝과는 다른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소와 공동거버넌스라는 개념으로 디스텝을 구상하려 한다”고 말했다.

시민·전문가 토론 거쳐 주제 발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17개 지방자치단체 대상으로 ‘과학기술 기반 지역 수요 맞춤형 연구개발 지원 사업’을 공모했다. 연구개발 기획·관리·평가 기능을 지역 스스로 수행하도록 하고, 사업비 자체를 지역이 직접 설계해 국비를 역매칭하는 방식이다. 경북의 ‘지진지역의 스마트센서 기반 건물안전 지능정보 플랫폼 개발’ 사업 등 5곳이 선정됐다. 지난달 18일 경북 지역수요맞춤형 연구개발 사업 기획을 주도한 경북과학기술진흥센터를 찾았다. 이날도 이곳에서는 과기정통부의 새로운 지역 사업인 ‘미래를 여는 과학기술’ 과제를 기획하기 위해 경북 지역의 금오공대, 영남대, 포항공대 교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노진수 센터장은 “수요맞춤형 사업이나 미래를 여는 과학기술 사업이나 지역에서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 취지인 것 같다. 기획 역량이 축적되면 향후 중앙정부가 내려보낼 포괄보조금 등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수 경북과학기술진흥센터 센터장
- 경북과학기술진흥센터는 어떤 기관인가?

“사이언스파크의 하나로 출발했는데, 구미시에서 지역 기업들을 지원하는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을 설립해 산하 조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가 아닌 도 차원의 일을 한다. 경북도의 과학기술 정책을 지원하고, 연구개발 과제 기획, 평가, 조사 분석 등을 한다.”

- 경북 지역수요 맞춤형 사업이 기존 정부 지원사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선 지역에서 실시간으로 검색어 분석을 통해 시민의 관심을 조사해 원전·지진 등 후보를 추출해 전문가와 도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 절차를 밟았다. 도 안에 세계적 수준의 지진 전문가가 많다는 점이 지진 지능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장점으로 떠올랐다. 안동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포항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분원이 있고 원전에도 지진 전문가들이 있다. 포항공대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고, 센서 관련 실력 있는 중소기업도 포진해 있다.

전문가들이 모여 이번 기회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술과 지식을 모아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보자는 공감이 형성됐다. 경북도에서도 다른 지역의 2배인 5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역매칭 국비와 기업 참여 등 합쳐 모두 126억원의 사업으로 커졌다.”

부산·구미/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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