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3 06:00
수정 : 2019.06.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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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감염병연구센터 연구실에서 류충민 센터장(왼쪽)이 연구원과 항생제 내성세균 배양접시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생명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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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오남용이 내성균 키위
지구상 모든 항생제 무력화하는
‘초강력 슈퍼박테리아’까지 등장
2050년 연간 1천만명 사망 경고
항생제 사용비율 최상위권 한국
한 해 3천명 이상 슈퍼균에 희생
제약사들, 수익성 없어 연구 미적
대부분 1970년대 개발된 것 사용
정부도 신약보다 감시·관리 그쳐
국가적 네트워크로 적극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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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감염병연구센터 연구실에서 류충민 센터장(왼쪽)이 연구원과 항생제 내성세균 배양접시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생명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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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국 네바다주 병원에서 숨진 한 환자는 인도에서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에 감염돼 미국으로 옮긴 뒤 26개의 항생제를 모두 동원했지만 어느 약도 듣지 않았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래 인류가 개발한 모든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초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한 것이다. 지난 4월 미국질병통제센터(CDC)는 치사율이 60%에 이르는 항생제 내성의 ‘칸디다속 진균’이 20여개 국가에서 보고됐다며 세계 확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2016년 발표된 영국의 ‘항생제내성대책위원회 보고서’는 2050년 이후 세계에서 한해 1000만명 이상이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으로 사망하고 11경원(1조원의 11만배)의 사회적 비용이 들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원장은 지난달 31일 생명연에서 열린 ‘바이오 이슈 콘퍼런스-슈퍼박테리아’에서 “병원성 세균과의 전쟁에서 항생제 개발만으로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며 “슈퍼박테리아의 현주소를 정확히 진단하고 항생제 오남용을 예방하는 한편 내성을 관리하는 전 주기적 관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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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6살 이하 어린이에게 항생제 내성을 고려해 ‘감시와 보류’하도록 권장하는 항생제를 사용하는 정도.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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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항생제 사용과 내성 발생 비율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영국 연구팀이 4월5일(현지시각)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6살 이하 어린이에게 항생제 내성을 고려해 세계보건기구(WHO)가 ‘감시와 보류’하도록 권장하는 항생제를 사용하는 비율이 우리나라와 터키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 발생률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 가운데 제1순위는 인구밀도라고 분석했다.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에서 한국의 인구밀도는 방글라데시와 대만에 이어 3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도시별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1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한해 6종의 슈퍼박테리아에 1만명 가까이 감염돼 3400~39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카바페넴 내성이 있는 환자가 1만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됐다.
슈퍼박테리아를 막을 항생제 개발은 지지부진하다. 현재 쓰이는 대부분의 항생제는 1970년대에 발견된 것이다. 이후 카바페넴, 뎁토마이신 등이 개발됐지만 항생제 내성세균의 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반재구 생명연 감염병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기업들이 항생제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비용이 현재 팔리고 있는 기름값에 반영되지 않고 있듯이 항생제도 현재 팔리는 시장가에 항생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반영되지 않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병원에서는 내성을 우려해 비싸고 새로운 항생제는 쟁여두고 싸고 약한 항생제를 먼저 쓴다. 비즈니스모델로는 제로인 셈이다. 2002년 설립한 제약벤처 아카오젠(ACHAOGEN)은 지난 5년 동안 4억5천만달러를 투자해 항생제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승인까지 받았지만 80만달러어치밖에 팔지 못하고 지난달 파산했다. 굴지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도 지난해 항생제 연구개발 포기 선언을 했다.
용동은 연세대 진단검사의학실 교수는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 공동체에 전파된다. 항생제 연구개발과 관리는 소방서처럼 공공재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영국·독일 등 정부기관과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민간재단은 공동으로 ‘카브-엑스’(CARB-X)라는 기금을 조성해 새로운 항생제 개발 지원에 나서고 있다. 2021년까지 5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한 카브-엑스는 현재 29개 연구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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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내성 검사 결과. 왼쪽 배양용기 안의 균들은 항생제(흰색 디스크)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오른쪽 균들은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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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2017년)은 의료비 4500억원, 사회적 손실 1000억원 등 5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자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정부 6개 부처가 2016년부터 항생제내성협의체를 구성해 ‘원헬스(One-Health) 항생제 내성균 다부처 공동 대응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 8개 권역 대표 병원을 선정해 4년째 11개 병원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가축농장, 식품, 반려견에 대한 항생제 및 내성균 실태 조사도 벌이고 있다. 그동안 6500균주를 분리했으며, 반려동물과 사람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내성균 유전자 타입을 확인하기도 했다. 최근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예방·치료 기술개발사업(10년 동안 6400억원 투자)에 항생제 개발 항목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손길은 항생제 개발보다는 감시와 관리에 머물고 있다. 류충민 생명연 감염병연구센터 센터장은 “슈퍼박테리아 문제가 나날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향후 항생제 개발은 내성이 생기는 항생제의 고질적인 문제를 근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항생제여야 한다. 정부 출연연구소가 중심이 돼 국가 전체의 항생제 감시·관리·개발 체계를 연결하는 교량형 연구개발의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덕연구단지/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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