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7 09:12
수정 : 2019.05.27 10:25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
독일 연구팀 등 국제공동 알프스마못 연구
알프스고원에서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지만
유전적 다양성 포유류 가운데 가장 낮아
“생육·번식으로만 멸종위기 분류 재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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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고원에 사는 알프스마못은 빙하기 기후변화에 적응하느라 유전적 다양성이 어떤 포유류보다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독일 샤리테의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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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유전적 다양성에 영향을 끼쳐 생명체의 멸종을 이끌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의대 연구팀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빙하기에 살아 남아 알프스 고원에 군집을 이루고 살고 있는 다람쥐과 동물 ‘알프스마못’을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연구된 야생 포유류 가운데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작은 종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알프스마못의 현재와 과거 유전체를 해독한 뒤 비교해 알프스마못이 빙하기와 관련된 기후변화로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알프스마못의 상실된 유전적 다양성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연구 논문은 ‘셀프레스’가 발간하는 격주간 과학저널 <현대생물학>(Current Bilology) 최신호에 실렸다.
다람쥐과의 몸통이 큰 설치류인 알프스마못은 수목한계선 위 높은 산악지형에서 살고 있다. 수목한계선(교목한계선) 위도나 고도가 높아져 건조·한랭한 기후로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경계를 뜻한다. 산에서는 설선 800~900m 아래에 있다. 연구팀이 알프스마못 유전체(게놈)를 해독해보니, 이 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은 다른 어떤 야생 포유류보다도 낮았다. 프랜시스크릭연구소와 함께 연구를 주도한 샤리테생화학연구소의 소장인 마르쿠스 랄세르 교수는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낮은 유전적 다양성은 마운틴고릴라처럼 멸종위기종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알프스마못은 개체수가 수십만마리나 돼 멸종위기로 분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프스마못의 낮은 유전적 다양성은 현재의 생활 습관이나 식이 습관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아, 연구팀은 과거 마못의 유전체에 대한 컴퓨터 기반 분석작업을 벌였다. 화석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총체적인 유전체 분석을 한 결과 연구팀은 알프스마못이 지난 빙하기 때 수차례 기후 관련 적응을 하는 과정에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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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마못은 수십만마리가 서식하고 있지만 유전적 다양성이 극히 낮아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돼야 한다고 국제공동연구팀은 밝혔다. 독일 샤리테의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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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관련 적응 가운데 하나는 마지막 빙하기(11만~11만5천년 전) 초기에 플라이스토세(홍적세) 평원에서 군집을 이루고 살 때 일어났다. 두번째는 빙하기 말기(1만~1만5천년 전) 플라이스토세 평원이 사라질 무렵 일어났다. 이후 알프스 마못은 알프스 고원의 초원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기온이 플라이스토세 평원 서식지와 비슷하다. 연구팀은 마못이 플라이스토세 평원의 추운 날씨에 적응하다보니 세대시간(탄생해서 성장한 개체가 번식이 가능한 상태까지 소요되는 평균시간)이 길어지고 유전적 돌연변이 비율이 감소했다고 해석했다. 이런 과정은 동물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재건할 수 없게 한다. 결론적으로 알프스마못에게서는 유전체 진화율이 예외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랄세르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가 종의 유전적 다양성에 장기간에 걸쳐 극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종이 극히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보일 때 이것은 수만년 전에 일어난 기후변화 때문일 수 있다. 알프스마못이 낮은 유전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생존해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전적 변동성의 결핍은 자연 변화에 대한 적응력 감소를 의미하며, 생물종들이 질병이나 극지적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 변화에 취약하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연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의 유사한 경고를 알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장거리를 나는 나그네비둘기는 북반구에 사는 뭍새들 가운데 개체수가 많은 종의 하나였다. 하지만 몇년 전에 이들은 멸종했다. 낮은 유전적 다양성이 멸종에 일조했다”고 덧붙였다.
랄세르 교수는 “후속 과제는 알프스마못처럼 빙하기에 살아남은 다른 동물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 동물들도 비슷하게 유전적 다양성이 낮을 것 같다. 현재까지 멸종위기종들의 위기는 생육과 번식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멸종위기의 유일한 기준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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