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⑨ 대변이식 치료
난치성 시디프 장염 앓던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 이식해 치료
망가진 미생물 생태계 복원하는
대변이식법 새로운 치료법 부상
건강한 대변 기증자 찾는 게 중요
장염 치료 위해 딸 대변 이식 뒤
딸처럼 과체중 된 여성 보고돼
자기 대변 보관했다 활용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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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안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몸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 환자의 대장에 건강한 사람의 미생물 생태계를 넣어주는 ‘대변 이식’이 난치성 장염 치료술로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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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대학 병원의 알렉산더 코러츠 교수는 식도부터 대장에 이르는 소화기 질병을 다루는 소화기내과 전문의이다. 2008년 그는 병이 상당히 위중한 61살의 여성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이 환자는 8개월간 극심한 장염으로 15분에 한번씩 설사를 하는 바람에 체중도 27㎏이나 빠진 상태였다. 대장내시경을 통해 본 환자의 대장은 염증으로 엉망이었고 두꺼운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었다. 코러츠 교수는 환자의 질병을 위막성 대장염으로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연유로 이 환자의 장이 이렇게 망가진 것일까?
대변의 미생물을 검사한 결과 염증의 원인은 바로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Clostridioides difficile, 짧게는 ‘시디프’라고 부름)이라는 이름의 세균으로 밝혀졌다. 시디프는 사람 대장에 사는 대표적인 병원성 미생물로 독소를 만들어 장을 심하게 망가뜨릴 수 있다. 우리나라보다는 미국에 환자가 월등히 많은데, 미국에서만 한해 약 1만5000명이 사망한다고 하니 단순한 설사병이 아닌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말한 환자는 8개월 전에 장이 아닌 폐에 발생한 폐렴을 치료받은 직후부터 갑자기 설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표준치료법인 항생제 치료에 실패한 코러츠 교수는 같은 대학에서 흙이나 물 속 미생물을 연구하던 생태학자 마이클 새도스키 교수에게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대장을 진료하는 의사와 생태학자가 모여 과연 기존의 방법으로는 치료가 어려운 이 환자의 대장을 다시 정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항생제로 파괴된 대장 생태계 살리기
시디프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미생물이다. 병원균이긴 하지만 건강한 사람의 대장에서도 발견된다. 필자의 연구팀이 진행 중인 시민 과학 프로젝트에 따르면, 건강한 한국인의 5.5%에서도 소량이지만 시디프가 발견된다. 물론 시디프를 가지고 있다고 바로 장염이 생기지는 않는다. 건강한 사람의 장에는 수백종의 세균이 100조마리 가까이가 뒤섞인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이라 부르는 이 보이지 않는 생태계에서는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국립공원 같은 생태계처럼 구성원 사이의 경쟁과 협력이 이루어진다. 자연 생태계와 다른 점은 마이크로바이옴은 전적으로 숙주가 되는 사람이 생사여탈을 결정한다. 매일 먹는 음식이 가장 큰 영향을 주지만,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인 요인도 장내 미생물의 구성을 바꿀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이유로 사람마다 또 시점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은 다르다.
시디프란 세균은 다른 장내 미생물에 비해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다른 대부분의 장내 세균처럼 시디프도 산소가 전혀 없는 대장 안 환경에 잘 적응했다. 그러니 대변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오면 산소가 독이 되어 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다른 세균과 달리 시디프는 일종의 동면 상태인 ‘포자’로 변신할 수 있다. 포자가 되면 세포를 싸는 두꺼운 껍질이 만들어지고 혹독한 환경에서 길게는 수만년까지 버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주변에는 시디프의 포자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입을 통해 대장으로 들어온 시디프도 장내 생태계의 일원으로 적응해야 한다. 건강한 생태계라면 시디프가 혹시 있더라도 힘을 쓰지 못한다. 문제는 생태계가 크게 교란되었을 때 나타난다.
미네소타대학 병원에 입원한 여성 환자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시디프가 대장 안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은 8개월 전 이 환자가 폐렴 치료를 위해 두 종류의 항생제를 먹은 시기와 일치한다. 항생제는 단지 폐렴을 일으키는 세균만 죽이지 않는다. 폐렴은 치료가 됐지만 무고한 많은 장내 세균이 죽었고, 그로 인해 생태계는 크게 망가졌다. 혼란한 이때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바로 그동안 포자의 형태로 숨어 있던 시디프 같은 병원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균 잡는 항생제가 시디프의 세상을 열어준 것이다.
문제는 시디프를 잡기 위해 또다시 다른 항생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시디프가 늘어나면서 이 방법으로는 치료가 잘 안된다는 점이다. 코러츠 교수 연구팀은 치료방법이 고갈돼 사망할지도 모르는 이 환자를 위해 장내 생태계를 통째로 바꾸어줄 방법을 떠올렸다. 완전히 망가진 생태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는 수백종의 정상 생태계의 구성 세균으로 만든 혼합체를 대장에 넣어주면 될 것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 치료제의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아직 없다. 하지만 다행히 건강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대장에 이런 생태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연구팀은 환자와 의논하여, 44살인 환자 남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걸 얻기 위해 특별한 수술이 필요하지는 않다. 대변의 3분의 1이 바로 세균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간단히 처치를 통해 남편 대변 속의 세균을 모은 의료진은 결장 내시경을 통해 환자의 대장에 남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골고루 분사했다. 이식 후 과연 이 환자의 대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전에 존재하던 병원균을 몰아내고, 남편의 건강한 생태계가 의도한 대로 환자의 대장에서 자리를 잡았을까?
이식할 대변 찾기가 문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수개월 동안 15분마다 설사를 하던 환자가 불과 이틀 만에 정상적으로 대변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팀의 생태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균은 모양이 단순해서 현미경으로는 종의 구분이 안 된다. 그래서 장내 생태계의 구성을 보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아닌 유전자 분석법이 사용된다. 세균의 유전자를 해독한 연구팀은 이식 뒤에 환자 대장의 미생물 생태계가 완전히 남편의 것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썽의 주범인 시디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런 ‘대변 이식’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 환자의 설사와 복통이 기적처럼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장내 미생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중요하다 보니, 신장이나 간처럼 ‘이식’이라는 단어를 써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미네소타대학에서 일어난 기적이 10년 이상 지난 지금, 시디프 장염을 치료하기 위한 대변 이식은 전세계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도 2016년에 대변 이식을 신의료기술로 인정했고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적절한 환자에게 시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똥이 치료제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일까?
건강한 사람을 주변에서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앞의 예처럼 환자마다 새로운 대변 기증자를 찾아서 이식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이식할 대변을 전문적으로 선별하여 제공하는 ‘대변은행’도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큰 대변은행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오픈바이옴’이다. 이 비영리기관은 미국 내 1000개 이상의 병원에 이식용 대변 미생물을 제공한다. 공여자에 따라 미생물의 종류와 양이 다르므로, 의약품처럼 균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물론 이식을 받는 환자로서는 좀더 좋은 생태계를 받기 원하겠지만, 어떤 것이 좋은 마이크로바이옴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다만 많은 질병이 마이크로바이옴과 연관이 되어 있기에 공여자가 당뇨나 비만 같은 질환의 병력이 없고, 대변이나 핏속에 병원성 미생물이 없어야 한다. 오픈바이옴의 경우 약 5% 미만의 공여자만 이런 어려운 조건을 통과한다고 한다. 똥을 기부하는 것도 아주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32살의 한 여성이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병원에서 받은 대변 이식은 이 시술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 말해준다. 재발성 시디프 장염으로 고생하던 이 환자는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16살인 딸의 대변을 이식받았다. 당시에 딸의 몸무게는 63㎏으로 약간은 과체중이지만 비만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이식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다행히 장염도 말끔히 나았다. 그런데 이후 16개월 만에 환자의 몸무게가 15㎏이나 늘었다. 평생 한번도 비만이 된 적이 없는 이 환자는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변 이식 후에 체질량지수(BMI)가 33인 비만 환자가 된 것이다. 이식 당시에 과체중이었던 딸도 같은 기간에 14㎏이나 몸무게가 늘었다고 한다.
이 증례를 보고한 콜린 켈리 브라운대 교수는 이식에 사용된 딸의 마이크로바이옴이 비만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미 생쥐를 이용한 비슷한 실험을 통해 비만을 일으키는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있음이 증명된 적이 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다. 물론 이 결과는 장내 미생물을 바꿔서 비만을 치료할 가능성도 동시에 보여준다. 대변 이식은 지금까지 밝혀진 어떤 방법보다 확실히 마이크로바이옴을 바꾸어준다. 그게 좋은 결과이건 나쁜 결과이건.
슈퍼박테리아 대응용으로도 주목
다른 사람의 대변이 아무래도 불안하다면 자신의 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백혈병이나 암 등의 치료를 위해 줄기세포의 일종인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시술이 있다. 이 과정은 감염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환자는 강력한 항생제 처치를 예방 차원에서 받게 되는데, 이때 장내 생태계가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는 이런 환자 14명의 대변을 항생제 복용 전에 받아서 냉동 보관했다. 환자는 조혈모세포 이식이 끝난 뒤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받았다. 연구진이 미생물 유전자 해독을 통해 살펴본 결과 항생제 치료 뒤에 급격히 다양성이 떨어졌으나 자신의 대변을 이식한 뒤엔 예전과 거의 유사한 건강한 미생물 생태계로 복원이 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아직 미처 모르는 부작용을 피하면서도 항생제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대장을 노리는 세균이 시디프만은 아니다.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있어서 한번 걸리면 치료가 몹시 어려운 세균을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른다. 대변에서 이런 슈퍼박테리아가 발견되면 굳이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서 오랜 기간 격리 입원이 필요할 수 있다. 슈퍼박테리아가 감염된 곳이 만약 대장이라면, 시디프 치료와 같은 개념으로 대변 이식을 이용한 생태계 복원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사용할 항생제가 없는 경우에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는 이 방법은 미국,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에서 현재 임상시험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자의 연구팀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연구 중이며, 내년쯤이면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람의 대변을 약으로 사용하는 동양의 전통은 이미 천년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원리가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실제 치료에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제 20년 남짓 된 일이다. 아무리 생명이 위급하더라도 대변을 약으로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과학의 역할은 대변 이식이 아닌 개인에게 맞추어 정밀하게 생태계 균형을 맞춰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생명과학 중에서도 기초분야에 속하는 생태학이 의학에 접목돼야 이것이 가능하다. 획기적인 방법이 제시될 때까지는 조금은 원시적인 대변 이식이 한동안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당분간은 똥도 약인 시대인 것이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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