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4 18:50
수정 : 2005.01.04 18:50
17대 국회 첫 해를 마무리하는 지난해 12월30일, 애초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던 본회의는 밤 12시를 넘겨서도 열리지 못했다. 원내 교섭단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대 법안’ 등 처리 안건을 놓고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한 끝에 ‘합의’가 무산된 탓이었다.
두 당은 결국 다음날인 31일 오후 늦게 4대 법안 중 하나인 신문법 등 19개 법안 처리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합의가 되자마자 법안들은 일사천리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 차원의 공식 논의는 일절 없었다. 교섭단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특히 두 당의 원내대표들이 ‘전권’을 쥐고 중대 법안들을 요리했다. 국가보안법 개폐와 같은 중대한 사안을 몇몇 사람이 밀실에서 쥐락펴락 하는 이런 현실이 ‘교섭단체 제도’의 폐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교섭단체는 ‘일정한 정당 또는 원내단체에 속한 의원들의 의사를 미리 통합·조정해 정파간 교섭창구 구실을 함으로써 국회 운영의 능률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둔 제도다. 이를 위해 국회법은 교섭단체와 그 대표들에게 엄청난 권한과 특혜를 주고 있다. 국회의장의 권한 가운데 국회 기본일정 작성과 의사일정 변경 등 무려 30여가지가 교섭단체 대표와의 ‘협의’를 조건으로 할 정도다.
그러나 효율적 국회 운영을 위한 이 제도가 오히려 교섭단체 사이의 정략적 이해관계로 국회 파행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7대 국회 출범 뒤 사사건건 충돌을 해왔고, 이는 곧바로 국회 파행으로 이어져왔다.
이 때문에 막강한 권한 이상으로 역기능을 빚고 있는 교섭단체 제도를 이번 기회에 아예 없애자는 주장이 학계와 시민사회 단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교섭단체 제도로 밀실 담합이 제도화하면서, 입법 과정의 투명성·공개성이 훼손된다는 점을 주요 이유로 꼽고 있다. 또 비교섭단체 의원들의 활동을 정치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세밑 쟁점 법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등 소수 정당들은 아무런 구실도 못하고 그저 두 교섭단체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이 제도가 비례대표 의석 할당 기준과 함께 소수를 배제하는 ‘이중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폐지 사유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정선애 정책실장은 “현행 교섭단체 제도가 원내 20석 이상으로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것은 유신체제 당시 소수파의 진출을 막기 위해 정착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라며, “국회 운영위라는 공식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그러나 ‘폐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조정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정략적 대결과 대립에 몰두하는 현재의 정당정치 행태로 볼 때 교섭단체 제도를 폐지한다 해도 합리적인 국회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도 “교섭단체를 폐지하면 다수당의 일방적 의회운영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손 교수 등은 제도의 폐지 보다는 구성요건 완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20석 이상’으로 규정한 우리의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의원 정수 대비 비율(6.7%)에서 이 제도를 두고 있는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하다(▶표 참조 ). 학계와 민주노동당 등 소수 정당에서는 “비례대표 할당 기준(5석 이상 또는 5% 이상 득표)을 넘어서면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고,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이 기준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광섭 기자
iguass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