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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협정 문서가 공개된 17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 100여명이 한·일 양국의 공개사과와 피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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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별보상금 사망자에만 생색
일, ‘청구권’ 대신 ‘경협자금’ 고집
유족회 “한·일정부 상대 소송할것”
[3판] 17일 40년 만에 공개된 청구권 관련 한-일 협정 문서에서 당시 정부는 개인 피해에 대해 3억6천만달러를 요구하는 등 개인의 정당한 청구권에 대해선 배상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반해 일본은 청구권 자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이를 경제협력 자금으로 표기할 것을 고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국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들이 한국 정부에 본격적인 개별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한-일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선 경협자금만을 제공했을 뿐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서는 어떤 배상도 없었다는 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개인 청구권 문제를 사실상 덮어둔 채 ‘정치적 절충’을 통해 개인의 청구권을 박탈했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일본 기업들에 대한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외교통상부가 이날 공개한 제6~7차 한일 회담 청구권 협상 관련 문서에는 청구권 협상 타결의 분수령이었던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회담’과 한일 협상 막판에 오간 정부 훈령과 관계부처 간 전문, 회의록도 포함됐다. 정부는 또 이날 공개한 문서 외에 나머지 한일 협정 관련 문서도 가능한 한 모두 8월15일 광복절 이전에 공개할 계획이어서 머잖아 한일 수교 협상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일 협정 관련 문서철은 모두 161권이며, 이날 공개된 것은 청구권 협상 관련 57권 가운데 5권(16절지 1200쪽 분량)이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는 이날 공개된 문서를 보고, “한일 협정은 한, 일 두 나라가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권력끼리 야합한 결과물임이 드러났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유해 미송환 유가족 피해배상 및 미불노임·공탁금·후생연금 반환청구 소송을,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70년대 정부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 사망자 및 부상자·생존자들의 피해 구제를 요구하는 소송과 보상금 규모의 적절성 여부를 묻는 소송 등 네 가지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한국의 대일청구권 8개 항목에 관한 양측 입장 대조표’를 보면, 당시 정부는 일제에 노동자·군인·군속 등으로 끌려갔던 한국인 생존자와 사망자 및 부상자 103만2684명에 대해 개인 보상금으로 생존자는 200달러, 사망자와 부상자는 각각 1650달러와 2000달러 등 모두 3억6400만달러를 일본에 제시했다. 이는 당시 환율 등을 감안해도 정부가 1975∼77년 사망자 8552명에 한해 보상한 25억6560만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에 앞서 64년 5월 경제기획원과 외무부 사이에 오간 질의와 답변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교섭이 민간인 청구권의 보상을 전제로 한 것인가”라는 기획원의 질의에 “개인 청구권도 포함해 해결하는 것이므로 정부는 개인 청구권 보유자에게 보상의무를 진다”고 외무부가 답변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제5∼6차 한일 회담 회의록을 보면, 정부는 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에서 합의한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 1억달러 이상’의 자금 명목을 청구권 자금으로 표현하려 한 반면, 일본은 경제협력 자금이라는 명칭을 쓰자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은 청구권 차원에서는 보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이날 문서 공개에 따라 앞으로 국내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이번주 중 국무조정실에 ‘한-일 수교회담 문서 공개 등 대책기획단’을, 외교부에 ‘문서 공개 실무기획단’을 각각 설치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유강문 길윤형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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