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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4 18:36 수정 : 2005.01.04 18:36

당 의장과 원내대표, 상임중앙위원들이 모두 사퇴함에 따라, 매일 회의가 열리던 서울 영등포동 열린우리당 당사 회의실이 4일 텅 빈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17대 국회의 ‘원내정당화 실험’이 암초에 부닥쳤다. 천정배 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8개월만에 중도하차했고,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당내의 사퇴 압력에 직면해 있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원내대표는 정책위의장을 통제권 아래 두는 등 과거 원내총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실험적 시도인 탓에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먼저, ‘당 의장-원내대표’로 이원화된 ‘투톱 체제’는 역할의 혼선을 빚었고, 단일한 지도노선의 관철을 어렵게 만들었다. 국가보안법 처리에 대한 천 전 대표와 이부영 전 의장의 노선차이는 당내 혼선을 가중시켰다.

새로운 방식으로 형성된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원들의 완강한 태도도 원내정당화의 정착에 걸림돌이 됐다. 당내 재야파 쪽은 ‘투쟁경력’이 많지 않은 천 전 대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중진들 역시 3선의 천 전 대표를 지도자로 존중하지 않았다. 결국 천 전 대표는 재야·소장파의 원칙론과 중진들의 타협론 사이에 끼여,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제도상의 권한을 관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도 미약했다. 과거의 ‘보스’와 달리 원내대표에게는 공천권도, 나눠줄 정치자금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원 개개인의 의견 수렴을 통한 수평적·민주적 리더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신속성과 집중력의 저하가 불가피했고, 일사불란한 의사결정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원내정당화는 대통령이 당에 대한 장악을 포기할 때만 가능한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 원칙을 수없이 강조했고, 정무수석을 없애는 등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렇지만 당내에선 대통령의 한 마디를 곧바로 ‘교시’로 받아들이는 등 대통령에 기대려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했다. 이 때문에 보안법 폐지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당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는 결과적으로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뒤흔들었다.

반면, 원내정당화와 함께 추구돼온 정책정당화라는 측면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와 달리 ‘4대 법안’을 비롯한 주요 법안의 입법화 과정에서 당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양도소득세 중과세 연기, 기업의 과거분식행위 유예 문제 등 당정간 이견이 노출됐을 때도 최종적으로는 원내대표와 당의 의지가 관철됐다. 법안은 정책위원회와 상임위 간사단회의, 법안심사회의, 의원총회 등 수많은 당내 회의를 거쳐 정교하게 가다듬어졌고, 정부와도 여러 차례의 당정협의를 거쳤다.

한나라당에선 원내대표의 위상이 더욱 격심하게 흔들렸다. 박근혜 당 대표의 ‘지원’ 아래 선출된 김 원내대표는 애초부터 행동반경에 심한 제약을 받았다. 특히 국가보안법 개폐 등 4대 법안 협상의 전략을 놓고 두 사람 사이에 의견차가 생기면서 김 원내대표의 한계가 여실히 노출됐다.

지난해 말 ‘4대 법안’이 여야 4인 대표회담의 탁자로 옮겨진 것부터가 원내대표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박 대표 쪽에선 이런 ‘투톱 체제’의 불편함을 없애려고 한때 당헌·당규를 고쳐 원내대표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진민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4일 “원내정당화의 구호는 요란했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정치행태와 충돌하면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이라며 “원내대표가 원내문제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도록 인적, 물적 뒷받침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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