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취임(2005년 8월) 인사차 서울 염창동 당사를 방문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면담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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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너간 당 혁신안, 깔끔한 반박파 제압…대권가도 탄탄대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권가도의 암초를 하나씩 넘어가는가? 당권-대권 분리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뼈대로 한 당 혁신안은 지난 연찬회 이후 좌초될 위기다. 당 혁신안은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내년 7월18일 임기가 끝나는 박 대표가 조기에 사퇴하고, 지방선거 전에 관리형 지도부를 뽑자고 주장했었다. 여기에 비주류인 새정치수요모임,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힘을 보태고 있었다. 이는 당 대표로서 지방선거를 잘 치른 뒤 그 여세를 파죽지세로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가려던 박 대표 쪽의 계산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지난 연찬회 이후 “내년 지방선거도 박 대표에 맡겨야 한다”는 의원들의 지지를 등에 엎고 혁신안을 제압해나가고 있다. 당내의 ‘반박파’들은 박근혜 대세론에 밀려 숨을 죽이고 있다. 우군인 친박그룹은 연찬회를 계기로 ‘호박파’, ‘찬박파’ 등을 자칭하며 박근혜 대세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기세등등 ‘친박’의 충성 경쟁에 숨죽인 반박파 지난 연찬회는 친박 그룹의 충성 경쟁의 마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친박 의원들은 혁신안을 놓고 “(혁신안은) 박 대표 흔들기”라며 “혁신위가 조기 전대는 지엽적 문제라고 하면서 그것이 숨어 있는 혁신안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사기이고 위선”이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특히 친박 의원들은 스스로를 ‘호박’, ‘찬박’이라고 지칭하며 박 대표에 대한 충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당내 보수파를 대표하는 김용갑 의원은 “나는 친박, 반박이 아니라 박 대표를 좋아하는 ‘호박파’”라고 ‘고백’했다. 김 의원은 연정과 관련한 발언 도중 실수로 박 대표를 ‘박근혜 대통령’으로 불러 동료 의원들을 웃게 만들더니 “웃을 일이 아니라 좀 이해해주십시오. 앞으로 그렇게 부를 수 있도록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충정을 과시했다. 한선교 의원은 반박 의원들을 겨냥해 “반박이 돼야 자기 이름이 언론에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며 “반박이 아니라 ‘엇박’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박찬숙 의원은 “김용갑 의원은 호박파라고 하는데 나는 이름이 박찬숙이라서 ‘찬박’파”라고 말했다. 이계진 의원은 “‘호박’도 있고, ‘애호박’도 있고 더러는 ‘조롱박’도 있는 것 같다”며 “이 속에 잘 찾아보면 대박도 있을 것 같은데, ‘쪽박’만 차지 않으면 된다”고 화려한 말 솜씨를 뽐냈다.
친박 의원들이 기세등등한 것과 달리 반박파 의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반박 의원들은 지난 2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박 대표의 2선 퇴진론’까지 주장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연찬회에선 조기전대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보다는 박 대표의 혁신안 수용을 에둘러 촉구하는 식이었다. “박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을 총지휘하게 되면 다른 후보들이 새로 당을 만들어 (대선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혁신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안상수 의원) “박 대표가 혁신안을 받아들이고 구성원을 설득시켜야 한다.”(권철현 의원) “또 다시 혁신안의 주요 내용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화장실 다녀와서 마음이 바뀐다고 할 것이다.”(남경필 의원) 혁신안 사실상 물건너가고, 박 대표 입지만 키워 친박-반박의 대립은 친박진영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릴 듯하다. 박 대표는 조기전대론과 관련해 “(당원들에 의해 뽑힌) 대표 자리를 마음대로 던지거나 그만둔다고 할 수 없다”며 “대표직 하다가 책임질 정도로 잘못하면 물러가야 하지만 책임을 줬는데 갑자기 안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거부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연찬회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홍준표 혁신위원장도 “전당대회 시기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라며 “(연찬회 자리가) 혁신안과 관련한 마지막 공청회라고 생각하고 원내대표 의견대로 아름답게 마무리하자”고 꼬리를 내렸다.
지난달 30일 강원도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홍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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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나라당 혁신안은 지도부가 의원들을 상대로 당권-대권 분리시기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9월초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박파 의원들이 공을 들였던 조기전대론은 사실상 물건너간 분위기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1일 열린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지금 지도체제를 중간에 그만두게 하고 전당대회를 여는 것을 혁신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거듭 쐐기를 박았다. 혁신위원인 이성권 의원은 “혁신은 결단이고 선택의 문제”라며 조기 전대론을 거듭 촉구했다가, 박 대표와 김무성 사무총장, 이규택·박영선 최고위원 등에게 ‘십자포화’를 당했다. 조기 전대론과 관련해 홍 위원장마저 “지엽말단적인 문제”라며 태도를 바꾼 데다, 찬성 의원이 30여명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혁신안을 놓고 벌인 친박-반박의 대회전에서 박 대표가 승리를 거둬 대권후보로서 박 대표의 당내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다는 평가다. 확산되는 박근혜 대세론, 2002년 이회창 반면교사 삼아야 이처럼 한나라당 내에서 조기 전당대회 회의론이 확산된 것은 박 대표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현실론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 4·30 보궐선거 이후 더욱 견고해지고 있는 박근혜 대세론의 다른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박 대표 대세론은 한나라당에게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지난 2002년 대선을 돌아보자. 한때 지지율 2%의 바닥을 헤매던 노무현 후보는 지지율 50%에 육박하던 대선 재수생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으나 민주당의 국민 경선제는 노무현 당선에 1등 공신이었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2002년 봄, 대선후보를 확정하기 위해 각본없는 정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지지율 2%짜리 불안한 후보가 오히려 대역전 드라마의 발판이 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이 조기에 굳어진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당내 경선과정은 김빠진 맥주처럼 밋밋했다. 그나마 민주당의 흥행을 보고 마지못해 시늉만 한 것이었다. 홍준표 혁신위원장은 위원장직을 수락한 직후 언론 등에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안개 속에 있다가 대선을 3~4달 정도 앞두고 (국민경선을 통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2002년 대선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발언이었다. 한나라당 안에서 친박그룹이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온실의 화초처럼 곱게 박 대표를 대선 후보로 키우려 한다면 이회창 후보의 실패를 반복할 줄 수도 있다. 그들이 벌써부터 유력한 대권후보에게 충성경쟁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버림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정치의 역설을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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