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개혁 입법 판은 열렸는데… 민주노동당이 요즘 부쩍 분주해졌다. 4·30 재보선 결과, ‘여소야대’로 바뀐 정치지형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쪽 모두 원내 과반수에 미달하면서, 이제는 사안별로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 자민련, 무소속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이를 두고 “등원 이후 가장 유리한 정치 환경”이라고 표현한다.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는 5일 “축구 선수들만 그라운드를 넓게 쓰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도 이제부터 그라운드를 넓게 쓰는 전략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으로, ‘캐스팅 보트’의 효과를 최대화하겠다는 뜻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이미 효과를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등원 첫해인 지난해 모두 58건의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두 건 밖에 통과시키지 못했다. 재보선 이후에는 지난 3∼4일의 본회의에서만 벌써 3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책따라 캐스팅 보트 효과 극대화 전략
여당과의 연합 만만찮고 내부 갈등 부담 민주노동당 내부에선 특정 정책에 대해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다른 당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특히 국가보안법과 정치관계법, 사립학교법 등의 경우 열린우리당을 개혁 쪽으로 견인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은 “이제는 각 당이 자기 정체성에 맞게 색깔대로 놀 필요가 있다”며 “열린우리당의 무원칙한 타협이 개혁 후퇴로 이어져 결국 재보선 참패로 나타난 만큼, 열린우리당을 개혁 쪽으로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당장, 열린우리당을 당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민주인사 탄압법’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한 과거사법이 한나라당의 지지 속에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또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최근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연합하는 것이 한나라당과 합의할 때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연합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한나라당과 협상을 할 때는 접근이 이뤄지지만, 민주노동당은 협상할 때 원칙만 내세우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4·15 총선 직후에 견줘 급속하게 식어버린 지지 열기를 회복하는 것도 과제다. 4·15 총선 이후 당 지지도는 15∼18%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달 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선 9.7%라는 ‘한자리 수’ 지지율로 급락했다. 부유세나 무상 교육·의료 등 다른 보수정당과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정책 추진이 미흡했고, 내부 정파간 갈등이 증폭되는 등 부정적 요인이 복합된 결과다. 한 당직자는 “등원 이전부터 계속됐던 정파간 갈등이 등원 이후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현실 정치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내부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은 이런 상황을 빗대, “비판은 무성하지만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정파는 드물다”고 진단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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