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별 질문 제안속 폐지주장도 “총리는 사과하시오!”(안택수 한나라당 의원) “차떼기당을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이해찬 국무총리) 17대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대정부질문이었다. 야당 의원과 총리가 이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뒤 정기국회는 파행을 시작했다. 국회는 14일간의 공전 뒤 대정부질문을 재개했지만, 상대 당을 자극하는 정치 공세와 말싸움은 여전했다. 대정부질문에서 비롯된 파행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되풀이된다. 지난 2003년 2월 국회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일괄 질문 뒤 일괄 답변’ 방식에서 ‘일문일답’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대정부질문의 수준이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일장연설을 한 뒤 형식적으로 일문일답 시늉만 하는 의원들도 많고, 일문일답 형식을 취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윽박지르기만 해 연설과 다를 게 없을 때가 적지 않다. 인신모독성 발언이나 원고만 줄줄 읽는 연설, 상임위나 국정감사 내용을 재탕하는 경우도 사라지지 않았다. 덩달아 행정부 쪽의 답변도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불성실한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준있는 정치토론이나 정책공방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오늘날 국회 대정부질문의 현실이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또다시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정부질문은 여야간 정책 토론이 활발한 영국 등 내각제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나라 가운데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우리 헌법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제도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어느정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군부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그 나름대로 한 몫을 했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쪽은 행정부 견제라는 이런 취지와 순기능을 살리면서,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서면질의 뒤 보충질문’이 꼽힌다. 영국의 대정부질문 모델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의원은 본회의 14일 전에 서면으로 질문을 한다. 의회에서는 “질문 1번입니다”라고만 묻는다. 장관이 이에 답변한 뒤 일문일답식 보충질문을 통해 본격적인 토론이 이뤄진다. 연설식 일괄질문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행정학)는 “질문자 한 사람당 허용되는 시간을 현재의 20분에서 10분으로 줄이고 질문자 외에 다른 의원들에게도 보충질문 기회를 주면 질문의 질과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기가 30일에 불과한 임시국회에서는 대정부질문을 아예 하지 말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질문 범위를 특정 의제로 한정하자는 ‘의제별 질문제’도 대정부질문을 내실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제기된다. 질문 주제를 지금처럼 정치, 경제, 통일·외교·국방, 사회·문화 등으로 크게 나눌 게 아니라, ‘이라크 파병’, ‘주식시장 활성화’ 등 그 시점의 특정한 현안으로 미리 정해둬야 정책 중심의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대정부질문이 정책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국회법에 상세하게 규정하고, 정책과 상관없는 질문이나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징계할 수 있는 조항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정부질문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법안 심의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대정부질문 대신 상임위 차원에서 정책 질의나 진상조사를 벌이면 된다는 것이다. 임종훈 경희대 겸임교수(법학)는 “상임위 차원의 정책질의는 기능적으론 대정부질문과 다를 게 없는데다, 상임위에서는 정쟁이 비화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당과 당이 맞붙는 본회의보다, 상임위에선 충돌과 갈등을 보다 쉽게 조정하고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상임위 차원의 입법청문회, 조사청문회, 소위 등의 활동을 활성화하면 훨씬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정부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대정부질문 제도를 없애고 상임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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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부질문…인신공격·폭로 악용 정책공방 기대 아득 |
2005 새 국회로 - ④대정부질문
독재시대 정권비리 견제에 큰몫
의제별 질문 제안속 폐지주장도 “총리는 사과하시오!”(안택수 한나라당 의원) “차떼기당을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이해찬 국무총리) 17대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대정부질문이었다. 야당 의원과 총리가 이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뒤 정기국회는 파행을 시작했다. 국회는 14일간의 공전 뒤 대정부질문을 재개했지만, 상대 당을 자극하는 정치 공세와 말싸움은 여전했다. 대정부질문에서 비롯된 파행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되풀이된다. 지난 2003년 2월 국회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일괄 질문 뒤 일괄 답변’ 방식에서 ‘일문일답’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대정부질문의 수준이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일장연설을 한 뒤 형식적으로 일문일답 시늉만 하는 의원들도 많고, 일문일답 형식을 취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윽박지르기만 해 연설과 다를 게 없을 때가 적지 않다. 인신모독성 발언이나 원고만 줄줄 읽는 연설, 상임위나 국정감사 내용을 재탕하는 경우도 사라지지 않았다. 덩달아 행정부 쪽의 답변도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불성실한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준있는 정치토론이나 정책공방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오늘날 국회 대정부질문의 현실이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또다시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정부질문은 여야간 정책 토론이 활발한 영국 등 내각제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나라 가운데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우리 헌법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제도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어느정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군부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그 나름대로 한 몫을 했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쪽은 행정부 견제라는 이런 취지와 순기능을 살리면서,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서면질의 뒤 보충질문’이 꼽힌다. 영국의 대정부질문 모델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의원은 본회의 14일 전에 서면으로 질문을 한다. 의회에서는 “질문 1번입니다”라고만 묻는다. 장관이 이에 답변한 뒤 일문일답식 보충질문을 통해 본격적인 토론이 이뤄진다. 연설식 일괄질문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행정학)는 “질문자 한 사람당 허용되는 시간을 현재의 20분에서 10분으로 줄이고 질문자 외에 다른 의원들에게도 보충질문 기회를 주면 질문의 질과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기가 30일에 불과한 임시국회에서는 대정부질문을 아예 하지 말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질문 범위를 특정 의제로 한정하자는 ‘의제별 질문제’도 대정부질문을 내실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제기된다. 질문 주제를 지금처럼 정치, 경제, 통일·외교·국방, 사회·문화 등으로 크게 나눌 게 아니라, ‘이라크 파병’, ‘주식시장 활성화’ 등 그 시점의 특정한 현안으로 미리 정해둬야 정책 중심의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대정부질문이 정책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국회법에 상세하게 규정하고, 정책과 상관없는 질문이나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징계할 수 있는 조항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정부질문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법안 심의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대정부질문 대신 상임위 차원에서 정책 질의나 진상조사를 벌이면 된다는 것이다. 임종훈 경희대 겸임교수(법학)는 “상임위 차원의 정책질의는 기능적으론 대정부질문과 다를 게 없는데다, 상임위에서는 정쟁이 비화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당과 당이 맞붙는 본회의보다, 상임위에선 충돌과 갈등을 보다 쉽게 조정하고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상임위 차원의 입법청문회, 조사청문회, 소위 등의 활동을 활성화하면 훨씬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정부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대정부질문 제도를 없애고 상임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의제별 질문 제안속 폐지주장도 “총리는 사과하시오!”(안택수 한나라당 의원) “차떼기당을 어떻게 좋은 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이해찬 국무총리) 17대 국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대정부질문이었다. 야당 의원과 총리가 이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은 뒤 정기국회는 파행을 시작했다. 국회는 14일간의 공전 뒤 대정부질문을 재개했지만, 상대 당을 자극하는 정치 공세와 말싸움은 여전했다. 대정부질문에서 비롯된 파행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되풀이된다. 지난 2003년 2월 국회법 개정을 통해 기존의 ‘일괄 질문 뒤 일괄 답변’ 방식에서 ‘일문일답’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대정부질문의 수준이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일장연설을 한 뒤 형식적으로 일문일답 시늉만 하는 의원들도 많고, 일문일답 형식을 취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윽박지르기만 해 연설과 다를 게 없을 때가 적지 않다. 인신모독성 발언이나 원고만 줄줄 읽는 연설, 상임위나 국정감사 내용을 재탕하는 경우도 사라지지 않았다. 덩달아 행정부 쪽의 답변도 ‘검토해보겠다’는 식의 불성실한 모습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준있는 정치토론이나 정책공방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오늘날 국회 대정부질문의 현실이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또다시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정부질문은 여야간 정책 토론이 활발한 영국 등 내각제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한 나라 가운데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우리 헌법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제도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어느정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군부 권위주의 시절에는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그 나름대로 한 몫을 했다. 대정부질문 제도의 개선을 주장하는 쪽은 행정부 견제라는 이런 취지와 순기능을 살리면서,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서면질의 뒤 보충질문’이 꼽힌다. 영국의 대정부질문 모델을 채택하자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의원은 본회의 14일 전에 서면으로 질문을 한다. 의회에서는 “질문 1번입니다”라고만 묻는다. 장관이 이에 답변한 뒤 일문일답식 보충질문을 통해 본격적인 토론이 이뤄진다. 연설식 일괄질문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행정학)는 “질문자 한 사람당 허용되는 시간을 현재의 20분에서 10분으로 줄이고 질문자 외에 다른 의원들에게도 보충질문 기회를 주면 질문의 질과 긴장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기가 30일에 불과한 임시국회에서는 대정부질문을 아예 하지 말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질문 범위를 특정 의제로 한정하자는 ‘의제별 질문제’도 대정부질문을 내실화하는 방안의 하나로 제기된다. 질문 주제를 지금처럼 정치, 경제, 통일·외교·국방, 사회·문화 등으로 크게 나눌 게 아니라, ‘이라크 파병’, ‘주식시장 활성화’ 등 그 시점의 특정한 현안으로 미리 정해둬야 정책 중심의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대정부질문이 정책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국회법에 상세하게 규정하고, 정책과 상관없는 질문이나 인신공격에 대해서는 의원의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징계할 수 있는 조항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정부질문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법안 심의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대정부질문 대신 상임위 차원에서 정책 질의나 진상조사를 벌이면 된다는 것이다. 임종훈 경희대 겸임교수(법학)는 “상임위 차원의 정책질의는 기능적으론 대정부질문과 다를 게 없는데다, 상임위에서는 정쟁이 비화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당과 당이 맞붙는 본회의보다, 상임위에선 충돌과 갈등을 보다 쉽게 조정하고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상임위 차원의 입법청문회, 조사청문회, 소위 등의 활동을 활성화하면 훨씬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정부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대정부질문 제도를 없애고 상임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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