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방채 발행해 무상보육
박원순 “극단 선택은 마지막돼야” 정부·국회에 영유아법 개정 촉구 기재부 “올해 보조율은 42%”
특별교부세 등 내년엔 끊겨 전문가들 “보편복지는 정부 책임” 서울시가 5일 0~5살 무상보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2000억원어치의 지방채를 발행하기로 했지만, 이는 서울시가 가장 피하려 했던 방안이다. 지방채 발행이 현재의 부담을 후세에 떠넘기는 것인데다, 제도 정비가 없다면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될 수 있는 임시처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의 19개 자치구는 지난달에 이미 무상보육 예산이 동나, 이달부터는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닥쳐왔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 일부를 지원한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그동안 ‘추경 편성은 없다’며 근본적 개선책으로 국고 기준 보조율을 올리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요구해왔다. 서울시가 스스로 빚을 내겠다고 했으니 겉보기엔 중앙정부에 밀린 모양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날도 정부와 국회에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강하게 촉구하며 법 개정이 이뤄지도록 힘쓰겠다는 태도를 분명히했다. 박 시장은 “중앙정부가 국민 앞에 드린 약속, 서울시가 책임지겠다”고 지방채 발행 결정을 밝히면서, “지방채 발행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0~5살 무상보육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박 대통령이 일찍이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고 언명했던 점도 상기시켰다. 서울시가 지방채 발행이라는 짐을 먼저 떠안되, 제도 개선이란 공을 중앙정부에 넘김으로써 무상보육 재원 논란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기존의 국고 기준보조율을 ‘중앙정부 20%, 서울시 80%’에서 ‘중앙정부 40%, 서울시 60%’로 바꾸는 내용이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서울시가 지방채 발행으로 빚을 지겠다고 한 것은 중앙정부에 밀린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했다면 영유아보육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조차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영유아보육법 개정에 전력투구한 것은 지금의 재원 분담 구조에서 ‘지속가능한 복지’가 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지역 무상보육만 한 해 1조656억원이 드는데, 중앙정부의 증액 지원 없이는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서울시로서 견디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이날 “시민 1인당 예산 비율은 서울이 전국 최하위”라며,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시 재정자립도를 부각하는 정부 쪽을 반박했다. ‘국고 기준보조율을 40%로 올려야 한다’는 서울시 주장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이미 중앙정부는 올해 서울시 보육비의 40% 이상을 지원하기로 확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에게 “서울시에 대한 무상보육 기준보조율은 20%이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21개 자치구에는 10%포인트를 추가로 지원한다. 여기에 올해 별도로 마련한 1423억원(전국 5607억원)을 지원하면 서울시 보육예산의 42.2%를 지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올해 정부가 책정한 5607억원이 목적예비비와 특별교부세다. 올해 말 국회가 별도의 예산을 의결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지원된다는 보장이 없다. 서울시 쪽은 정부가 보육예산을 쥐락펴락하면 지방 재정난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영유아보육법을 개정해 국고 기준보조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국민에게 시행하는 복지정책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번 일은 중앙정부가 공약으로 내걸고 재정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 지방자치단체가 빚을 지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상보육이나 기초노령연금과 같은 ‘보편적 복지’는 중앙정부의 재정 책임을 확대하는 쪽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세를 피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 “복지 확충은 시대적 요구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미루는 대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태우 권은중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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