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4 19:53
수정 : 2013.09.0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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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서울시 구청장협의회가 내건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보육 약속을 지켜달라’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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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보육예산 한달 1000억
남은 예비비는 900억뿐
“지방채 발행은 땜질 처방”
정부 “엄밀히는 국회가 정한 것
줄일 수 있는 사업 있을 것” 주장
무상보육 재원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과 관련해 복지사업 확대에 따른 재정부담을 계속 지방정부로 떠넘기면 지방자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정부는 따로 쓸 돈이 없어져 결국 시민들의 삶의 질까지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5일 올해 편성한 영유아 보육비 예산을 모두 썼다. 오는 10일 보육료 지급일과 25일 양육수당 지급일에 어린이집과 해당 가정에 줄 돈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집에서 아기를 기르는 가정에 직접 현금으로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9개 구가 재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올해는 0~5살 아이를 둔 모든 계층에 무상보육을 시행한 첫해다. 2011년엔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소득하위 70% 계층과, 차상위층 이하 가정에 양육수당을 지원했다. 지난해엔 0~2살 영아를 유치원에 맡기면 보육료를 지원했다. 올해엔 3월부터 어린이집에 맡기든, 집에서 돌보든 소득과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게 무상보육을 확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추가로 무상보육을 받게 된 영유아의 40% 이상이 모여 있는 서울시부터 재원 부족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온 것이다.
전계층으로 확대된 무상보육 예산은 올해 국가 전체적으로 약 7조900억원에 달한다. 서울에서 필요한 무상보육예산은 1조656억원이다. 일부에 무상보육을 시행하던 2011년의 소요예산이 총 5474억원이었던 점에 견줘 5182억원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늘어난 5182억원 가운데 71%인 3711억원을 정부가 아닌 서울시가 부담하도록 돼 있다. 정부가 무상보육 대상을 늘렸음에도 정작 재정 부담은 서울시가 정부보다 2.5배 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울시뿐만이 아니다. 4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사회복지비 부담은 점차 지방정부 재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2007~2013년 중앙정부의 사회복지재정과 지방정부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은 각각 7.9%, 12.6%로 지방정부 쪽이 훨씬 가파르게 늘었다. 김홍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연구위원은 “사회복지 사업은 대부분 국고와 대응해 지방비를 들이는 ‘매칭 방식’으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재정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복지사업 부담이 지방정부로 떠넘겨지면 지방정부는 재정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충북 음성군 꽃동네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04년 정부는 국고보조사업 149개를 지자체에 이양했다. 하지만 그에 맞는 재원은 넘겨주지 않았다. 사회복지시설인 음성 꽃동네에 음성군이 들이는 돈은 이양 전인 2004년 3억원에서 올해 64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꽃동네에 입소한 기초생활수급자 1900여명 가운데 음성군 출신은 10%도 안 되지만, 음성군은 군 사회복지예산의 30%를 꽃동네에 투입하고 있다. 꽃동네 입소자의 절대다수인 99%가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초생활수급자인데도, 이에 대한 재정부담은 온전히 음성군 몫인 셈이다. 감사원은 2008년 “꽃동네를 포함한 노인·장애인·정신요양시설의 지방 이양이 부적절한 조처이므로 국고보조사업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총예산 대비 자율재원 비중은 수도권 등 다소 넉넉한 지자체까지 포함하면 8% 수준이지만, 이를 빼면 3~5% 수준이다. 선거로 뽑힌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사업을 위한 자율재원이 전체 예산의 5% 안팎에 불과하다. 하능식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사업에 지자체가 너무나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면, 지자체 자체 사업을 할 여지는 줄게 된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다는 지방자치의 근본 이념과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무상보육에 따른 재정 지원을 요청하지만 정부는 시가 추경예산을 편성해야만 국고지원을 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서울시는 무상보육 관련 결정을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했기에 따를 수 없다는 식이지만, 엄밀히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국회가 정한 것이다. 국민 대표 기관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위험하다. 서울시가 돈이 부족해서 못한다지만, 줄일 여지가 있는 사업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서울시도 일단 ‘하늘이 두쪽 나도 무상보육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후퇴 등으로 3년 연속 감액 추경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다른 사업의 예산을 줄여가면서 무상보육 예산을 늘리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900억원가량 남은 예비비 사용도 힘들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무상보육으로 나가는 돈이 한달에 1000억원가량이라 액수가 턱없이 모자란다. 지급일이 10일인 보육료는 정부가 신용카드사들의 협조를 얻어 최장 두달가량 지급을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금으로 주는 양육수당은 그럴 수 없다. 서울시 예산업무 관계자는 “대안 중 하나인 지방채 발행은 현재의 부담을 후세에 전가하는 것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땜질 처방이어서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기용 손준현 권은중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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