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사적 465호)이 3년여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치고 언론에 공개된 28일 오후 경교장 2층에 김구 선생의 흉상이 서 있다. 뒤에 보이는 방은 집무실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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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 숨거둔 임시정부 청사
복원 마치고 내일부터 무료 개방
백범 혈의·속옷 밀서 등 전시도
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945㎡백범 서거 뒤 외국 대사관으로
1967년부터는 병원시설로 쓰여 1945년 11월23일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요인 15명을 태운 비행기는 중국 상하이 강만비행장을 이륙해 오후 4시 김포비행장에 내렸다. 이들을 반긴 건 벌판과 미군 병사들뿐이었다. 미군정이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범을 수행했던 비서 장준하 선생은 ‘나부끼는 태극기도, 환상의 환영 인파도, 목이 아프게 불러줄 만세 소리도’ 없이 ‘검푸레하고 싸늘한 김포의 하오가 우리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었다’고 저서 <돌베개>에서 술회했다. 이들이 미군 장갑차에 실려 1시간 뒤 도착한 곳이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이었다. 임정의 마지막 청사이자 임정 요인들의 숙소였던 경교장이 백범 서거 64년 만에 2일 개방된다. 서울시는 2010년부터 벌인 경교장 복원 사업을 마치고 28일 언론에 공개했다. 임시정부가 45년 12월3일 첫 국무위원회(국무회의)를 연 이래 백범이 안두희의 흉탄에 숨진 49년 6월26일까지 경교장은 격동기 해방정국에서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통일정부 수립 운동의 중심지였다. 48년 4월 백범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며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참가를 결심했다. 4월19일 경교장 2층 베란다에서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이북의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보아야겠다”고 외친 뒤 이북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48년 8·9월 남북에서 단독정부가 들어섰고, 백범은 49년 6월26일 경교장 2층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경교장은 1938년 친일파 금광업 거부 최창학이 396㎡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945㎡ 규모로 지었다. ‘죽첨장’이었던 이름은 백범이 인근 개울 다리 경교에서 따온 이름으로 바뀌었다. 경교장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귀빈식당, 선전부 사무실이 있다. 귀빈식당은 27년 동안 상하이, 항저우, 충칭 등을 떠돌며 독립을 염원했던 임정의 요인들이 조국에 돌아와 공식 만찬을 벌였던 곳이다. 선전부 사무실은 백범의 수행비서 장준하 선생이 바쁜 일과 속에 상념에 잠기곤 했던 곳이다. 부실한 고증 탓에 완공 2번 연기
요인 숙소천장은 일본문헌 오역
구리판→오동나무판으로 교체도 당시 보일러실과 부엌 등이 있던 지하공간은 전시공간으로 바뀌었다. 백범이 암살당할 때 입고 있던 ‘피 묻은 저고리’(혈의) 복제품은 목과 가슴 부위 혈흔이 선명해 당시의 격렬했던 정치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남자 속옷 바지에 빼곡히 쓰인 밀서엔 1948년 2월 당시 삼팔선 북쪽에 갔던 민족진영 조직원들이 백범과 이승만에게 보낸 북한 동향 보고가 담겼다. 1층 왼쪽엔 국무위원회 등 임정 회의가 열렸던 응접실이 있다. 첫 국무위원회엔 국무위원 20여명과 임시정부 구미위원단 단장이었던 이승만, 기록을 맡은 장준하도 참석했다. 2층엔 백범이 주요 인사들과 면담하고 국무위원회를 주관했던 집무실이 있다. 창문엔 백범 서거 당시 창을 관통했던 총탄의 자국을 재현해놓았다. 백범이 숨지고 1층 귀빈식당에 빈소가 차려졌을 때는 경교장에서 서대문까지 통곡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백범 서거 뒤 임정 인사나 가족들은 경교장을 떠나야 했다. 중화민국 대사관저, 한국전쟁 때 미군 특수부대 사무실 등으로 쓰이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시설이 됐다. 1층 중앙홀과 응접실은 의약품을 받는 곳, 선전부는 병원 사무실, 2층 백범의 방은 의사 임시숙소였다. 진입로와 정원, 연못 등이 있던 경교장 주변엔 병원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임정 환영대회가 열리고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추진됐던 건물 앞 정원은 주차장이 돼 있다. 주변 건물 탓에, 복원된 경교장은 마치 이곳만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이 언론에 공개된 28일 오후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직원이 1949년 김구 선생에게 안두희가 쏜 총탄 자국을 재현한 2층 창문 앞에서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일반인에겐 2일부터 공개된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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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머물던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이 공개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동 경교장 지하 전시실에 백범이 암살당했던 때 입었던 피묻은 저고리(복제)와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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